기사 메일전송
사법부에 내민 민주당의 경고장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5-16 22:30:49
  • 수정 2025-08-05 04:29:18

  • 법정 밖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재판
  • '당신의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신의 사생활이 다음 표적이 된다'

▲< 그래픽 : 박주현 >


소파에 기대앉아 리모컨을 손가락으로 돌리며 뉴스를 보고 있었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거실에 울려 퍼졌다. 지귀연 판사의 '룸살롱 의혹'이 흘러나왔다.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생각했다. 우리는 진실을 원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자신의 믿음을 확인받고 싶은 걸까. 우리는 그가 정말로 술접대를 받았는지 알 수 없다.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아직은.


그런데 사람들은 이미 판단을 내리고 있다. SNS 타임라인을 스크롤하면서 보았다. 누군가는 그를 '파렴치한 판사'라고 비난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정치적 희생양'이라며 옹호한다. 각자의 댓글에는 분노와 확신이 묻어있다. 증거보다 선입견이 앞서는 세상이다. 마치 열차가 선로를 달리듯, 우리의 생각도 이미 깔린 레일 위에서만 움직인다.


작년 계엄 이후 '민주파출소'라는 이름의 조직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민주주의와 파출소. 이 두 단어의 조합이 주는 아이러니가 씁쓸했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자유와 다양성을 상징하고, 파출소는 통제와 감시의 공간이다. 마치 '따뜻한 얼음'이나 '손으로 뽑는 기계냉면' 같은 모순된 표현이다. 차라리 '재명흥신소'라고 부르는 편이 솔직할 것이다. 최소한 그들이 하는 일, 상대방의 약점을 캐내고 사생활을 들춰내는 그 본질에 더 가깝다.


정치의 본질은 언제부터 이렇게 변했을까. 이제는 적으로 규정되는 상대방의 업무 능력이나 비전을 비판하는 대신, 그의 사생활을 들춰내는 것이 정치의 주요 전략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며 채널을 바꿨다. 한 채널에서는 정책 토론이, 다른 채널에서는 스캔들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갑자기 막장 드라마로 채널이 바뀐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시청률은 항상 후자가 높다. 사람들은 그 드라마에 몰입한다. 진실이든 거짓이든 상관없이.


생각해보면 지귀연 판사 의혹의 본질은 단순한 스캔들이 아니다. 이는 다른 판사들에게 보내는 경고장이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민주당이나 이재명의 심기를 거스르는 판결을 내리면, 당신의 사생활도 이렇게 파헤쳐질 수 있다.' 법정에서 정의가 아니라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결하라는 무언의 압력이다. 지난밤 뉴스를 보며 내 머릿속에는 중세 시대 광장에 매달린 죄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현대적 형태의 공개 처형이다. 다만 육체가 아닌 명예와 신뢰를 처형하는 방식으로.


몇 년 전 어느 작가의 책에서 읽었다. "유리집에 사는 사람은 남의 집에 돌을 던지지 말라." 이런 교훈들의 공통된 특징은 이런 가르침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제일 무시한다는 점이다. 대법원에서 이미 유죄취지 파기환송을 당하고 12개의 형사 혐의로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을 기어이 대선후보로 만든 당이 남의 술자리를 문제 삼는다. 신문을 뒤적이다 한동훈에게 제기됐던 첼리스트 술자리의혹과 이낙연 대표의 삼부토건 연루설, 신천지 연루설 같은 근거 없는 소문들이 퍼졌던 때가 떠올랐다. 결국 허위로 밝혀져도 이미 인격에 치명타를 입힌 후였다. 이것은 코미디가 아니라 현실이다.


정말 코미디는 룸살롱이란 단어와 정치를 결합하면 일어나는 연상작용인 NHK 룸살롱사건이나 친명계 대표의원으로 회자되는 현직 모의원의 룸살롱 앞 사진이 떠오르는 게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 정말 그들은 부끄러움도 사라진걸까?


한때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그는 적어도 자신의 행동을 숨기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타인의 사생활을 파헤친다. 마치 그것이 정당한 정치 활동인 양.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행태를 정치라고 부르게 되었을까.


그라시안은 말했다. “타인의 약점을 비방하는 사람은 자신의 몸에서도 악취가 풍긴다는 사실을 모른다." 또한 키케로 “어리석은 자의 특징은 타인의 결점을 드러내고, 자신의 약점은 잊어버리는 것이다.” 라 말했다.


정치가 인신공격의 장이 되면, 우리 모두가 패자가 된다. 시민들은 저급한 드라마를 보게 되고, -그게 민주당의 목적일지는 몰라도- 결국 정치에 대한 환멸만 커진다. 그 끝에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있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 위기는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창밖을 보니 비가 내린다. 그 빗방울처럼 사람들의 관심도 이슈에서 이슈로 흘러간다. 오늘의 스캔들은 내일이면 잊힐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새로운 스캔들이 자리 잡을 뿐. 빗방울은 바뀌어도 비는 계속된다.

나는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는 언제쯤 진짜 정치를 다시 볼 수 있을까.


TAG

프로필이미지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내란범' 몰렸던 조희대, 훈장이라도 줘야 할 판 한 편의 블랙코미디가 막을 내렸다. 조은석 특검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내란 가담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단순히 증거가 없어서가 아니다. 수사 결과를 뜯어보니, 그는 내란범이 아니라 오히려 ‘내란을 막아낸 사람’에 가까웠다.특검 불기소 결정서에 따르면, 12·3 비상계엄 당일 조 대법원장은 명확하게 ..
  2. 이재명 대통령 국정 지지도 50% 벽 붕괴, 중도·진보 이탈 가속화 이재명 대통령 국정 지지도 50% 벽 붕괴, 중도·진보 이탈 가속화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50%대 밑으로 추락하며 국정 동력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주)에브리리서치가 지난 19~20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 긍정 평가는 49.1%로 집계되어 과반 유지에 실패했다. 이는 직전 조사 대비 2.9%..
  3. 성남시, '대장동 일당' 5173억 가압류 성공 대장동 부당이득 5173억 동결 조치 및 검찰 항소 포기에 대한 법적 대응 가속화신상진 성남시장은 23일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장동 개발 비리 관련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가압류 및 가처분 신청 14건 중 12건이 법원에서 인용됐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으로 김만배, 남욱, 정영학, 유동규 등 핵심 관계자 4명의 재산 총 5173억 원이 동결됐다. ...
  4. 빈손으로 끝난 특검, 대통령실의 기이한 '대리 사과' 어제 대통령실 전성환 수석이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찾아갔다. 이영훈 목사를 만나 위로를 건네며 “특검은 독자적인 기구라 우리는 관여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고 한다. 모양새는 ‘문병(問病)’이지만, 본질은 ‘투항(投降)’에 가깝다.이재명 정부는 줄곧 ‘정교분리’를 강조해 왔다. 그런 정부가 제 발로 교회...
  5. 피로 지킨 선(線)을 펜으로 지운 국방부 휴전선 155마일, 군사분계선(MDL)은 잉크로 그은 선이 아니다. 1953년 정전협정 직전까지, 국군 장병 수만 명이 고지 하나, 능선 하나를 더 확보하기 위해 피를 쏟아부어 그은 ‘생명의 선’이다. 그런데 2025년 12월, 대한민국 합참은 이 선을 스스로 지우고 뒤로 물러서기로 했다.합참이 전방 부대에 내린 지침은 충격적이다. 우리 군 지도..
  6. 사실상 '북한이 도발해도 경고사격 자제하라'지시한 국방부 보통 무능한 조직은 게으르다. 아무것도 안 해서 망한다. 그런데 2025년의 대한민국 정부는 기이하다. 무능한데 부지런하다. 그것도 나라의 안전핀을 뽑아내는 일에만 유독 성실하다. 이번에는 휴전선 철책이다.최근 국방부 고위 관계자가 합참 지휘통제실을 찾아갔다고 한다. 전시도 아닌데 상급 부처 인사가 작전 통제실까지 내려간 것부터...
  7. 1987년에 이 정통망법이 있었다면, 박종철은 그냥 '쇼크사'였다 민주당이 기어이 선을 넘었다. 24일 국회에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름은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이라 붙였지만, 내용은 ‘정권 비판 입틀막법’이다. 허위나 조작으로 판단되면 인터넷에서 뉴스를 삭제하고,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겠다고 한다.문제는 그 ‘허위’를 누가 판정하..
  8. 새민주당의 파격민생행보 “변호사 살 돈 없어 3년 앓던 속, 오늘 뚫렸다” “먹고살기 바빠 법률사무소 문턱 넘기가 겁났는데, 집 앞까지 찾아와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이념 싸움에 함몰된 여의도를 벗어나, 정당이 직접 서민의 삶터로 들어갔다. 새미래민주당 청년공감위원회(위원장 황인수)는 지난 27일 경기도 광주시 신현동에서 ‘제1회 찾아가는 청년 119센터 현장 고충 상담’을 개최했...
  9. [백광현칼럼] 곡소리 듣기 싫어 상주 입을 틀어막는 민주당 참사 유가족의 곡소리와 권력을 향한 국민들의 아우성은 본질적으로 같다. ‘슬픔과 억울함 그리고 분노…’ 즉 권력을 향한 국민의 목소리는 초상집 곡소리와 같은 것이다. 민주당은 그 곡소리를 참으로 알차게도 써먹었었다. ‘이게 나라냐!’ 감히 민주당 최고의 아웃풋이라 하겠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은 3류 영화 속 기...
  10. 호텔 숙박권에서 비밀 대화방까지, 김병기의 '점입가경'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그의 전직 보좌진 사이의 갈등이 크리스마스의 온기 대신 법정의 차가운 공방으로 번졌다. 한때 ‘동지애’와 ‘형제애’를 강조하며 권력의 핵심을 공유하던 이들이 서로의 치부를 무기로 휘두르며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모습은 한국 정치의 비정한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다.전직 보좌관 A 씨..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