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유발자" 이재명 대통령의 '직진 본능'... 의료계, 특사경·난임·탈모 '3대 뇌관'에 폭발
"필요한 만큼 (특사경을) 지정해 줘라. 사무장병원을 확실하게 많이 잡아달라."
지난 16일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나온 이재명 대통령의 이 한 마디가 의료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대통령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이하 건보공단)에 특별사법경찰권(특사경) 부여를 직접 지시하고, 난임 치료와 탈모 급여화 등 민감한 이슈를 잇달아 건드리면서 의료계가 전례 없는 격랑 속으로 빠져들었다. 의사 단체와 한의사 단체는 업무보고 하루 만에 각각 격앙된 성명을 내며 '전면전' 태세에 돌입했다.
각 구성원의 타협보다는 최고 통치자의 신속한 결단을 중시하는 이재명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도둑에게 칼 쥐여주나" vs "재정 누수 차단"... 특사경 도입 정면충돌
가장 뜨거운 감자는 단연 '건보공단 특사경' 도입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업무보고 자리에서 정기석 건보공단 이사장에게 특사경 필요 인력을 묻고, "40~50명 정도"라는 답변이 나오자 즉석에서 도입을 지시했다. 대통령은 "금융감독원도 민간기관이지만 특사경 권한이 있다"며 형평성을 강조하고, 사무장병원 등 불법 개설 기관을 근절해 건보 재정 누수를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건보공단은 즉각 환영의 뜻을 비쳤다. 공단 측은 현재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경우 평균 11개월이 소요되지만, 공단이 직접 수사권(특사경)을 갖게 되면 이를 3개월 이내로 단축해 연간 약 2,000억 원의 재정 누수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의협)의 반발은 거세다. 의협은 즉각 성명을 내고 "공단과 의료기관은 대등한 계약 관계인데, 한쪽에 수사권이라는 칼자루를 쥐여주는 것은 대등성을 파괴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의협은 최근 건보공단 직원들이 인건비를 과다 편성해 나눠 가진 비위 사실을 거론하며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공단에 수사권을 주는 것은 도둑에게 칼을 쥐여주는 격"이라고 맹비난했다. 의협은 좌훈정 부회장을 필두로 국회 앞 릴레이 1인 시위에 돌입하며 실력 행사에 나선 상태다.
"과학적 근거 없다" 장관 발언에 한의계 '부글'... 의-한 갈등 재점화
업무보고의 불똥은 '한방 난임 치료' 논란으로도 튀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통령의 질문에 답변하며 "한의학은 객관적,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쉽지 않다"고 발언한 것이 도화선이 됐다.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는 즉각 성명을 내고 "복지부가 발표한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에서도 한약 치료의 근거 수준을 '중등도(B)' 이상으로 평가했다"며 정 장관의 사과를 요구했다. 한의협은 난임 부부의 96.8%가 한방 치료 지원을 원한다는 통계를 앞세워 중앙정부 차원의 제도화를 촉구하고 있다.
반면 의협은 정 장관의 발언을 옹호하며 한의계를 공격하고 나섰다. 의협은 "한방 난임 치료는 대규모 임상시험(RCT) 등 과학적 검증이 부족하다"며 "효과가 불분명한 치료에 혈세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맞서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주의적 접근이 의사(과학적 검증 중시)와 한의사(제도권 진입 희망) 사이의 해묵은 갈등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소확행'인가 '포퓰리즘'인가... 탈모 건보 적용 논란
이재명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인 '탈모 치료 건강보험 적용'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대통령은 이를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으로 추진 중이지만, 의료계는 "포퓰리즘의 전형"이라며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생명과 직결된 중증 질환 치료제도 재정이 없어 급여화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용 성격이 강한 탈모 치료에 건보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우선순위 왜곡이라는 지적이다. 정은경 장관조차 "재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우려를 표한 바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해관계자 간의 조율보다는 최고통치권자의 '결단'과 '속도전'을 선호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대통령이 말 한마디를 할 때마다 관련된 모든 이들이 생존권과 직업적 자율성을 두고 다투는 형국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의료 직역 간의 갈등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양상으로 치달을 것으로 전망된다.
김남훈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