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2016년 당시 Jtbc 보도 화면 캡쳐>
황교안이 2016년 KTX 플랫폼에 관용차를 타고 들어갔을 때, 그것은 '황제 의전'이었다. 이재명이 2025년 똑같은 일을 했을 때, 그것은 '당연한 경호'가 되었다.
아인슈타인이 들으면 기절할 노릇이다. 시공간이 휘어지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도덕까지 상대적이 되었으니 말이다.
당시 한겨레는 "권위주의 시대에나 볼 수 있었던 모습"이라며 혀를 찼고, 프레시안은 "황제 의전 논란"이라는 제목을 뽑았다. 진보 진영은 더욱 격렬했다. "쓰레기 같은 권력", "갑질이나 다름없다"는 말들이 쏟아졌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과거 황교안을 질타했던 그 입들이 조용하다. 오히려 "대통령 신분이면 들어갈 만하다"며 황교안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같은 플랫폼, 같은 차, 같은 행위. 달라진 건 차에 탄 사람의 정치적 소속뿐이다.
사실 경호 프로토콜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대통령경호처에는 정해진 절차가 있고, 고위 공직자에게는 그에 맞는 의전이 필요하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스스로 신분제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재명을 '왕'으로 여기는 개딸들의 모습은 이들이 얼마나 깊이 계급적 사고에 빠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김대중이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이라고 정의했던 민주당은 어디로 갔을까. 노동자의 정당이 부자들의 정당이 되는 순간, 그들에게 남은 건 허위의식뿐이다.
결국 이들이 만든 것은 '새로운 신분제의 나라'다. 이재명의 특별한 신분을 인정하고 그와의 거리가 계급을 결정하는 카스트 제도. 그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들이 하는 것은 무엇이든 정의라고 여긴다.
2019년 조국 사태에서 이미 드러났던 모습이다. 도덕성과 공정성을 강조하면서도 자신과 가족에게는 예외를 두는 위선적 집단의 민낯 말이다.
<사진 = 민주당 지지자의 댓글 반응 캡쳐>
황교안에게는 '황제 의전'이고, 이재명에게는 '당연한 경호'인 세상. 이것이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내로남불의 물리학이다.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상대성 이론보다 더 완벽한 상대성이 여기 있다. 관찰자에 따라 시공간뿐만 아니라 도덕과 정의까지 휘어지는 세상.
이제 우리는 뉴턴의 절대 공간도, 칸트의 절대 도덕도 믿을 수 없게 되었다. 남은 건 오직 상대성뿐이다. 그것도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른 상대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