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싸인 권력의 핵심, 김현지의 진실
권력이란 묘한 것이다. 때로는 화려한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춤추지만, 더 자주는 무대 뒤 어둠 속에서 조용히 줄을 당긴다. 그 줄이 당겨지면 무대 위의 인형들이 움직인다. 춤추고, 노래하고, 때로는 쓰러진다.
이재명 정부의 권력 지형도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바로 이 '줄을 당기는 사람'이다. 김현지.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이라는 공식 직함보다 '만사현통'이라는 신조어로 더 유명한 이 인물. 그는 매일 아침 9시에 대통령실에 출근해서 무엇을 하는가. 서류를 검토하고, 전화를 받고,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운명이 결정된다.
'만사현통'은 '만사형통'의 2025년 버전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이상득을 일컫던 그 말. 모든 일이 김현지를 통해야 한다는 뜻에서 나온 이 표현을 처음 듣는 사람은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웃음은 곧 식는다. 이것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역사는 반복되되 진보하지 않는다. 오히려 퇴보한다. 적어도 이상득은 대통령의 형이라는 혈연적 정당성이라도 있었다. 김현지에겐 그것마저 없다. 오직 27년간의 충성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충성이 지금 대한민국을 움직이고 있다.
얼굴 없는 권력자의 초상
김현지를 둘러싼 첫 번째 의문은 그의 정체성 자체다. 1974년생으로 추정되는 그의 나이조차 언론 보도를 통해 역산해야 알 수 있다. 마치 추리소설 속 용의자처럼, 그의 기본 정보는 조각조각 흩어져 있다.
출신 대학은 어디인가. 전공은 무엇인가. 이런 사소한 것들조차 베일에 싸여 있다.
이는 단순한 개인정보 보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그가 '시민사회 출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아이러니하다. 시민사회란 본래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시민사회 출신이 권력의 핵심에서 베일을 두르고 있다.
'얼굴 없는 최측근', '그림자 비서관'이라는 별명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얼굴을 가져야 한다. 그 얼굴이 못생겼든 잘생겼든, 국민들에게 보여져야 한다. 그래야 책임을 물을 수 있고, 평가할 수 있다.
문자 3만 건의 의미
2013년 여름, 성남시 곳곳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새누리당 소속 성남시의원들을 비방하는 문자였다. 총 3만3000여 건. 발신자는 김현지였다. 명예훼손 혐의로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벌금 150만원. 김현지에게는 큰 돈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150만원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정면승부가 아닌 음성적 공격. 그것도 대량 살포를 통한 물량 공세. 이것이 그의 정치 스타일이다.
문자를 받은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갑작스럽게 울리는 알림음. 모르는 번호에서 온 비방 문자. 그리고 그것이 계속 반복되는 상황. 시의원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가족들도 불안했을 것이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공격을 넘어선 일상의 침범이다. 사람들의 평온한 일상 속으로 거침없이 침입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 이것이 김현지의 첫 번째 얼굴이다.
시민단체라는 이름의 특혜
성남의제21. 김현지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사무국장을 맡았던 이 단체는 같은 기간 성남시로부터 17억8800만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특히 김현지가 사무국장으로 발탁된 2011년, 지원금이 7500만원에서 1억2000만원으로 1.6배 급증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1억2000만원이라는 금액이 그냥 생긴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결정이 있었고, 그 결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 중 하나가 김현지라는 이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더 흥미로운 것은 사무실 위치다. 성남시청 2층, 시장 집무실 바로 옆.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장과 마주보고 있었다. 시민단체가 시청 내부에 사무실을 둔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하물며 시장실 옆이라니.
아침에 출근하면 시장과 마주쳤을 것이다. "안녕하세요, 시장님." "수고하세요, 김 국장님." 이런 일상적인 인사가 오가는 사이에서 시민단체의 독립성은 어디로 갔을까.
환경주의자의 침묵
2016년, 성남시 백현동에서 아파트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문제는 '옹벽 아파트'였다. 절벽 같은 옹벽 위에 아파트를 짓는 것. 환경 파괴는 물론이고 안전성도 문제였다.
이때 김현지는 성남의제21 사무국장 자격으로 환경영향평가 의견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정작 핵심 쟁점이었던 '옹벽 아파트' 문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환경단체 사무국장이 환경 문제에 대해 침묵한 것이다.
침묵은 때로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드러낸다. 김현지의 침묵이 그랬다. 그에게 환경은 중요하지 않았다. 시민의 안전도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이재명이라는 한 사람에 대한 충성만이 존재했다.
나무들이 베어지고, 흙이 깎여나가고, 콘크리트가 부어지는 동안 김현지는 무엇을 했을까. 사무실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전화를 받고, 회의에 참석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일상 속에서 환경은 조용히 파괴되어 갔다.
승정원의 부활
"김현지 비서관을 통하지 않으면 수석이나 비서관도 행정관 한 명 사무실에 들이기가 쉽지 않다." 대통령실 관계자의 이 증언은 현재 상황을 정확히 보여준다.
매일 아침, 대통령실에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수석비서관들, 비서관들, 행정관들. 이들 모두가 김현지라는 한 사람을 거쳐야 한다. 그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조선시대 승정원이 이런 곳이었다. 왕의 명령을 전달하고, 신하들의 상소를 받아들이고, 인사를 관리하던 곳. 그리고 그 승정원을 통하지 않으면 왕을 만날 수 없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승정원이 부활했다. 대통령실 총무비서관실이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그 승정원의 수장이 바로 도승지 김현지다.
충성의 함정
27년. 이재명과 김현지가 함께한 시간이다. 1998년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성남시민모임에 합류한 이후, 그는 줄곧 이재명의 곁을 지켰다. 성남시장 시절에도, 도지사 시절에도, 그리고 지금 대통령이 된 후에도.
27년간의 충성. 이는 분명 값진 덕목이다. 하지만 충성심만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는 없다. 특히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정치인 주변에서는 '끝까지 남는 사람은 충성뿐'이라는 논리가 작동하기 쉽다.
전문가들이 하나둘 떠나고, 오직 충성심만 남은 사람들이 권력을 독점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 답은 역사가 보여준다. 침몰하는 배에서 선장에게 충성하는 선원들만 남는 것과 같다. 배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충성심이 아니라 전문적 항해술이다.
김현지는 매일 아침 이재명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 만남에서 오늘 하루 대한민국의 운명이 결정된다. 누가 승진하고, 누가 좌천되고, 어떤 정책이 추진되고, 어떤 계획이 폐기될지. 그래서 우린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더더욱 묻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