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위 고하를 막론한 성역 없는 수사"와 "종교단체 해산 검토"를 지시하며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게이트'가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특검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로 이첩된 이번 사건은 김건희 여사 특검에서 시작되었으나,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의 진술로 인해 민주당 심장부로 불길이 옮겨붙은 모양새다.
흥미로운 점은 의혹의 중심에 선 민주당 전·현직 핵심 인사 3인(전재수, 정동영, 임종성)이 보여주는 대응 방식이다. 모두 혐의를 부인하고 있지만, 그들이 선택한 방패의 모양은 제각각이다. 방대한 수사 자료와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이들의 엇갈린 전략 뒤에 숨겨진 정치적·법적 셈법을 해부했다.
통일교 늪에 빠진 전재수, 임종성, 정동영 (AI 생성 이미지)
전재수 장관의 '배수진': "사실이면 내 정치생명을 끊어라"
가장 강경하고 드라마틱한 대응을 택한 것은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그는 의혹이 불거지자마자 "해수부와 정부에 부담을 줄 수 없다"며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① '장관직 사퇴'라는 충격요법
전 장관의 사퇴 카드는 고도의 정치적 승부수다. 이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을 만큼 결백하다"는 메시지를 대중에게 던지는 동시에, 이재명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는 '충성 경쟁'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현직 장관 신분으로 수사를 받을 경우 발생할 국정 리스크를 선제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친명계'로서의 입지를 다지려는 포석이다.
② "600명 앞 축사? 사실무근"... 위험한 베팅
그러나 전 장관의 대응에는 치명적인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다. 윤영호 전 본부장은 2018년 9월 10일 전 장관이 가평 천정궁을 방문한 뒤, 부산으로 내려가 600여 명이 모인 '부산 5지구' 행사에서 축사를 했다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전 장관은 이를 "명백한 허위"라며 행사 참석 자체를 부인했다. 만약 당시 행사의 사진이나 영상이 한 장이라도 나온다면, 전 장관의 해명은 순식간에 거짓말로 판명되어 재기가 불가능해진다. 통일교가 행사를 꼼꼼히 기록하는 조직임을 감안할 때, 전 장관은 '부존재의 증명'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셈이다.
③ '정책적 알리바이'로 대가성 차단
그는 법적으로는 '한일 해저터널 반대'라는 명확한 증거를 쥐고 있다. 윤영호는 해저터널 추진을 위해 돈을 줬다고 했지만, 정작 전 장관은 2021년 야당의 해저터널 공약에 대해 "누구를 위한 터널이냐"며 공개 반대한 바 있다. 이는 "돈을 받고 청탁을 들어주지 않았다"는 방어 논리를 넘어, "반대했으므로 돈을 받았을 리 없다"는 강력한 정황 증거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반대했으니 뇌물이 필요했다는 반론도 가능한 취약한 주장이다.
"서른살 이후로 시계를 찬 적이 없다"는 빈약한 해명은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대응은 노련하다. 무조건적인 부인이 가져올 역풍을 경계하며, '팩트'와 '의혹'을 정교하게 분리했다.
① 육하원칙에 입각한 '자백 같은 해명'
정 장관은 윤영호와의 만남 자체를 인정했다. 그는 "2021년 9월 30일 오후 3시, 가평 천정궁 커피숍에서 고교 동창 등 친구 7~8명과 함께 10분간 차를 마셨다"고 밝혔다. 이토록 구체적인 해명은 '숨길 것이 없다'는 투명성을 과시하는 전략이다. 동시에 만남의 성격을 '밀실 로비'가 아닌, 친구들과 여행 중 우연히 들른 '공개된 장소에서의 티타임'으로 격하시켰다. 10분이라는 짧은 시간은 거액의 검은돈이 오가거나 깊은 청탁을 하기엔 물리적으로 부족한 시간임을 암시한다. 그러나 '친구들과의 만남'이나 '10분간의 티타임'이 물증으로 반박 당하면 이 구체성이 독이 될 수 있다. 한편 '통일에 대한 대화'가 10분에 된다는 것 보다는 깔끔하게 금품만 수수하고 나온 시간에 가깝지 않느냐는 의문도 자아낸다.
② '야인(野人)' 방패로 법적 책임 회피
그는 만남 시점이 자신이 공직(국회의원)에 있지 않던 '야인 시절'임을 강조했다. 이는 설사 금품 수수가 사실로 밝혀지더라도, 공무원 범죄인 뇌물죄의 구성 요건인 '직무 관련성'을 원천 차단하려는 법적 포석이다.
임종성 전 의원은 가장 고전적이지만 위험한 '모르쇠' 전략을 택했다.
① 관계의 전면 부정
임 전 의원은 윤영호에 대해 "일대일로 만난 적도 없고 모르는 사람"이라며 "러시아 통역관인 줄 알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연결고리 자체를 끊어내려는 시도다.
② 디지털 증거 앞의 취약성
하지만 이는 디지털 포렌식 앞에서 가장 취약한 전략이다. 특검은 이미 윤영호의 휴대폰 녹취록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 기록이나 문자 메시지가 단 하나라도 나올 경우, 임 전 의원의 "모른다"는 주장은 즉각 탄핵당하며 신빙성이 무너질 수 있다. 특히 그가 이미 별건의 뇌물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는 점은 검찰이 그를 약한 고리로 삼아 압박할 가능성을 높인다.
민주당 3인의 대응이 이토록 갈린 배경에는 이재명 대통령의 '무관용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종교단체 해산"까지 거론하며 퇴로를 차단한 상황에서, 당 차원의 조직적 방어는 불가능해졌다.
결국 이들은 각자가 가진 '약점(Evidence Risk)'에 맞춰 최적의 생존 전략을 짰다.
전재수는 사진이 없다는 확신 하에 '판돈(직)'을 걸었고,
정동영은 만남을 선제적으로 상세히 기술하며 '동기'를 희석시켰으며,
임종성은 기록이 없을 것이라 믿으며 '관계'를 지웠다.
경찰 수사가 본격화되고 윤영호의 '입'과 숨겨진 '물증'이 드러나는 순간, 이 세 가지 전략 중 어느 것이 유효했는지 판가름 날 것이다. 부산시장 선거와 남부권 정치 지형까지 뒤흔들고 있는 이번 게이트의 결말은 이제 수사기관의 손에 넘어갔다.
윤갑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5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정독
혓바닥이 긴걸 보니...
누가 제일 교활한가요? 정동영?
각자도생하려고 복잡하게 머리들 굴리네요. 하지만 증거와 증인들이 있는데 무모한 자신감만 넘치네요.
여의도와 용산은 지구인이 사는 곳이 아닌 듯 합니다.
각자도생 전략이 아니라 모두 다 외계 언어 같이 들리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