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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이 앞서는 G7참관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6-17 06:30:57
  • 수정 2025-08-05 04:20:46

  •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교훈

<그래픽 : 박주현>


외교는 윤리학 교실이 아니다. 칠판에 적힌 선악의 공식을 달달 외워서는 풀 수 없는 복잡한 연립방정식이다. 이번 중동 사태를 지켜보며 든 생각은 이것이다. 우리는 지금 무대 위에서 대사를 까먹고 헤매는 배우를 보고 있는 중이다. 


1979년, 이란에서는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호메이니의 이슬람 공화국이 등장했다. 그때부터 중동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란은 단순히 지역 강국이 아니라 이스라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이데올로기적 적대국이 됐다. 핵무기 개발은 그 적대감을 실현하는 수단이다.


트럼프는 61일간 기다렸다. 협상 테이블을 차렸지만 이란은 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이스라엘의 공격을 허용했다. 이것은 메시지였다.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심지어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까지 "불안정의 근원은 이란"이라고 못 박았다. 좌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유럽 정치인도 상황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다른 연극을 하고 있었다. 외교부는 지난 13일"이스라엘의 이란에 대한 공격으로 중동 지역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며 "상황을 악화시키는 모든 행동을 규탄한다"라고 발표했다. 자유진영에서 유일한 반응이었다. 애초에 미국과 자유진영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용인하지 못하는 확고한 이유와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도, 전달받지도 못했던 게 확실해 보인다. 목숨과 생존을 담보로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는 한 복판에 샤랄라 공주가 나타나 "폭력은 안 돼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엉뚱함 마저 느낀다.


사실 이 발언이 참사라고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있다.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걸 알면서도 전쟁이 무서워 핵무기를 머리에 이고 사는 모양새를 수십 년째 계속하고 있다. 결국 정부마저 레드팀으로 기우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 지금의 한국이 미국과 이스라엘에게는 좋은 반면교사가 됐을 것이다. "저렇게 두면 안 되겠구나" 하는.


이스라엘은 우리와 달리 결단을 내렸다. 이란의 핵무기가 완성되기 전에 선제타격을 감행했다. 한국이 북한 핵에 대해 30년간 미적거리며 결국 핵보유국을 만들어낸 것과는 정반대의 선택이었다.


G7이라는 이름의 아이러니


더 기가 막힌 것은 타이밍이다. 이런 외교적 참사 직후에 이재명이 G7 정상회의에 참관을 위해 출발했고 약 한 시간쯤전에 도착했다. 캐나다의 초청을 받았다지만, 그 지위는 옵저버다. 구경꾼이라는 뜻이다. 윤석열 정부 시절 캐나다가 적극적으로 한국을 초청하려 했던 것과는 온도차가 확연하다.


2022년 독일 기민당 관련 단체에서 만든 풍자 만화 하나가 모든 걸 보여준다. 윤석열 취임 3개월 후 제작된 그 만화에서 한국은 자유진영 편에 확고히 서 있었다. 지금은 일본의 한 트위터 계정이 그 만화를 패러디해서 한국을 중국 편으로 옮겨놓은 합성 이미지가 떠돌고 있다. 이것이 현재 국제사회가 보는 한국의 자화상이다.


문제의 뿌리는 가치관의 미궁이다. 이재명은 대만 문제에 대해 "왜 우리가 중국에게 찝적거리냐"고 했다.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때 한국이 어느 편에 설 것인지는 아무도 판단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외교는 인식의 게임이기도 하다. 실제로 무엇을 했느냐보다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때로는 더 중요하다. 지금 우리는 "어느 편인지 모르겠는 나라"로 인식되고 있다. 이것은 재앙이다.


피해자 비난 논리의 참담함


이재명의 우크라이나 전쟁 인식은 더 심각하다. 2022년 2월 25일 대선 토론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초보 정치인 대통령이 돼서 나토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결국은 충돌했다. 외교의 실패다." 이것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네가 그런 옷을 입고 그런 곳에 가서 그런 일이 생긴 거야"라고 말하는 논리와 정확히 같다. 침략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탓하는 것이다. 젤렌스키가 나토 가입을 언급했다고 해서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된다는 말인가?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발언을 한 인물이 지금 G7 회의에 참석한다는 사실이다. G7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 지원에서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각국 정보기관들은 이미 이재명의 이런 발언들을 정확히 분석해서 자국 정상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그들이 이재명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지는 뻔하다.


북한이라는 숨겨진 변수


이번 사태에는 또 다른 층위가 있다. 이란이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아이언돔 관통 미사일이 실제로 고체연료를 사용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이라면, 이는 북한 문제와 직결된다. 이란과 북한은 오랫동안 미사일과 핵 기술을 교류해왔다. 북한의 핵개발 연구원이 이란에서 암살당한 사례도 있다.


트럼프가 "최고 지도자 제거 계획을 거부했다"고 밝힌 것은 의미심장하다. 다른 군사적 옵션은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북한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국은 뭐가 문제인지도 인지도 못하고, 이 이 상황에서 이스라엘을 규탄한다는 것은 사실상 "우리는 다른 팀"이라고 선언하는 것과 다름없다. 


외교무대의 데뷔를 지켜보는 게 두렵다. 차라리 말 그대로 관전만 하고 돌아오길 바라는 마음도 크다.


당장 트럼프가 이재명에게 면박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 속에서 누적되는 불신과 소외는 결정적 순간에 "중요한 일이 있는데 너희는 빼고 간다"는 결과로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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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0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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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6-17 10:26:16

    예상을 했고 그래서 반대했지만 결국 그는 통이 되었고 실제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더 크게 대한민국이 추락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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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6-17 08:35:42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네요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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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6-17 08:33:10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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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6-17 08:27:29

    집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철철 걱정입니다. 정말 좋는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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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6-17 08:26:41

    기사 잘읽었습니다. 정말 외교무대에서의 대한민국의 위치가 걱정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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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6-17 08:15:54

    좋은기사네요 잘봤습니다.앞으로 이나라가 어찌될지 정말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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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6-17 08:07:07

    기사 잘 읽었습니다
    정말 앞으로가 걱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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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6-17 08:02:07

    어딜가도 국민이 걱정하는게 정상인가요? 심히 걱정되는 지금입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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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vemartin2025-06-17 07:45:12

    정말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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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6-17 07:02:45

    고맙습니다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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