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같은 날 대통령 직무정지가 결정됐다.
이 결정에 따라 윤석열 대통령은 거의 대부분 대통령으로서의 법률적 권한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 국군통수권와 조약체결 비준권, 법률안 거부권, 헌법개정안에 대한 발의 내지는 공포권, 예산안 제출권 등과 같은 굵직굵직한 권한 외에도 외교사절 접수권, 공무원 임면권 등과 같은 일상적인 직무에서 모두 배제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러한 직무정지는 우리가 흔히 당연시하고 있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말은 거창하지만, 탄핵소추라 함은 대통령이 헌법이나 법률상 금지돼 있는 행위에 대해 심대한 위반을 하였고, 이에 대해 국회가 헌법재판소에 기소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대통령은 지금 재판에 의한 유죄의 확정단계가 아니라, 기소에 의한 피의자의 단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의 관점에서 보자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최종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국민이 대통령에게 부여한 일체의 권한을 모두 행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대통령은 지금 유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일체의 권한으로부터 배제된 셈인데, 어느 누구도 이 원칙이 잘못되었다거나, 이상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극히 상식적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개인 윤석열에 대해서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입각한다 하더라도 대통령으로서의 윤석열에 대해서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은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재판을 받을 동안 그의 권한을 일시적으로나마 정지시켜놓지 않는다면, 그가 최종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그 권한을 어떻게 사용할지 알 수 없다. 아주 극단적으로는 제 2의 계엄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설사 그가, 그러한 권한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래서 극히 평범한 일상의 권한만을 사용해 정국을 운영한다 하더라도, 만약 그가 최종적으로 유죄의 판결을 받는다면, 그리하여 그가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운영할 자격이 없음이 밝혀진다면, 그가 그동안 행사했던 모든 일상의 권한조차도 무자격자가 행사한 것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국정을 일시적으로나마 무자격자가 운영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치인에게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다. 게다가 직접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일반 국민들의 정서와도 부합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범죄의 가능성이 있는자가 정치적 의사결정권을 갖는다면, 그가 그 결정권을 남용할 가능성이 높을 뿐더러,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의사결정권이 없는 자에게 의사결정권을 부여하는 결과가 발생한다. 게다가 그 결정권이라는 것을 자신의 범죄사실을 감추거나 지우는데 사용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자칫 법률적 질서의 파괴까지도 사회 전체가 감수해야 하는 위험성이 커질 수 밖에 없다.
한 때 민주당은 기소단계에 있는 당원에 대해 일체의 당직으로부터 배제한 바가 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 대해서는 아예 기소이전의 단계에서 jtbc의 보도만으로 그를 출당시킨 사례가 있다. 이는 당시 민주당이 ‘정치인에 대한 유죄추정의 원칙’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엄격히 실행한 것이라 판단할 수 있다. 정치적 의사결정이든, 당내의 의사결정 권한이든 일체의 권한에 대해 ‘무죄추정의 원칙’이 가져올 잠재적 위험성을 확실하게 배제한 셈이다.
정치인 이재명이 당대표가 되는 과정에서 이 원칙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심지어는 기소단계가 아닌,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난 당대표에 대해서조차 ‘유죄추정의 원칙’은 적용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이재명 대표는 최근 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언급했다. 조기대선이 있게 되면 2심에서 최종판결이 나더라도 대선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셈이다.
기소 이후 지금까지 줄곧 이재명 대표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면서, 민주당이 방탄정당이 되었다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재판중에 선거법 자체를 건드리고자 하는 민주당의 움직임 단 한가지만 예로 들더라도, 이러한 목소리들이 매우 타당한 근거를 갖고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요컨대, 민주당은 이미 유죄가능성이 있는 정치인에 대해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고, 그에게 당대표라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그가 그 권한을 자신의 범죄적 혐의와 관련된 영역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고, 이것이 최근 민주당의 종잡을 수 없는 횡보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주는 피해는 당원과 국민 모두의 몫이 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무죄임을 입증하지 못하고, 재판을 다 마치치 않은 상태에서 유죄의 가능성을 가진 상태로 대선에 출마하고 혹여 당선이 된다 가정한다면, 그 결과는 참담하지 않을 수 없다. 다 해결되지 않는 그의 범죄 혐의에 대해 그가 가진 권한을 어떻게 사용하게 될 지,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법률적 시스템이 어떻게 무너지게 될 지 가늠조차 쉽지 않다.
백걸음을 양보하여, 그가 그러한 행위를 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추후에라도 그가 유죄의 상태이었음이 밝혀졌을 때, 우리는 자격없는 정치인에게 국정운영을 맡긴 셈이 될 것이고, 아마 우리 헌정사상 씻을 수 없는 흑역사를 남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 점에서 정치인에 대한 유죄추정의 원칙은 개인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과 서로 배치되는 원칙도 아닐 뿐더러, 우리 사회를 맑고 건강하게 유지해나가기 위한 초 헌법적인 대원칙이라 말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든, 이재명 당대표이든, 누구나 이 원칙에서 열외일 수 없다.
<조광태 / 칼럼니스트>
이 기사에 6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상식과 원칙이 무너진 여의도의 말들은
자기네는 맞고 상대는 틀리다는 것이 전부인 듯 보입니다.
계엄시기부터 국힘은 내란힘이 되었고
이제명은 1심 유죄 실형에도 무죄추정을 힘주어 말합니다.
조광테 칼럼니스트님의 맺는 말씀이 너무나 맞고 옳으며 당연하게
모두에게 수용이 되고,
모두에게 적용되는 세상을 바랍니다.
머리에 쏙 유익한 기사 감사합니다
조폭당 입에 안맞으면 유죄추정 조폭당필요할땐 무조추정의 원칙. 개들은 그냥 이현령비현령
시스템이 무너지는 일이 제발 일어나지 않길 바랄뿐입니다ㅜㅜ
좋은 기사 잘 봤습니다.
세세히 알려주신 말씀, 감사히 읽었습니다.
공감합니다. 너무도 상식적인 말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