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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집에서 ‘감동 시’를 공모하는 정부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8-03 09:30:58
  • 수정 2025-08-05 03:58:09

  • 경제 위기 현실은 외면한 채, 세금으로 ‘행복 서사’ 사 모으는 이재명 정부의 기이한 공모전
  • 남미 포퓰리즘 국가를 제대로 분석해 적용해가는 정부.

사진 :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연 공모전 갈무리

코스피 지수가 하루 만에 4% 가까이 폭락해 3,119선으로 주저앉고,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를 돌파하며 시장이 검은 비명을 지르는 지금, 이 나라의 대통령은 "큰 고비를 넘었다."라며 자화자찬한 뒤 홀가분하게 휴가를 떠났다. 엉터리 관세 협상과 같은 날 발표 된 세제개편안의 여파로 외국인과 기관의 1조 7천억 원대 '매도 폭탄'이라는 날아들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동시에 진행된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사연 공모전'. 세금으로 푼돈을 쥐여준 뒤, 그 돈으로 삼겹살 사 먹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신파를 써서 제출하라는 것이다. 불타는 집에서 집주인은 휴가를 가고, 남은 가족들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보며 아름다운 시를 짓는 꼴이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공모전이라도 여론의 눈치를 보고 취소했어야 마땅한 기획이다.


이것은 무능을 넘어선다. 현실을 해결할 능력이 없으니, 현실에 대한 '인식'을 조작하겠다는 것인가?. 그들은 지금 경제라는 실체와 싸우는 대신, 경제가 괜찮다는 ‘인식’을, 정부 덕에 살만하다는 ‘감성’을 만들려 한다. 공모전은 그 인식을 제조하기 위한 공장이고, 상금은 그럴듯한 서사를 납품할 작가들을 고용하는 대가다.


이 기괴한 발상이 우리만의 창작품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미의 포퓰리스트들이 이미 닳고 닳도록 써먹은 각본의 한국어 번역판일 뿐이다.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은 ‘#LealesAChavez(충성은 차베스에게)’ 같은 해시태그를 국영 매체와 지지층을 통해 확산시키며 충성심을 다졌다다. 한술 더 떠, 국가가 보상하는 ‘디지털 병력(Digital Trooper)’을 동원해 매일같이 관제 해시태그를 살포하며 반대 여론을 질식시켰다.


브라질의 보우소나루는 ‘#BolsonaroNossoPresidente(볼소나루 우리 대통령)’ 해시태그가 전 세계 트렌드 1위에 오르자 직접 SNS에 등장해 이를 자축하는 쇼를 벌였었다. 선진국들에게 훌륭한 정책들 배우고 참고할 게 참 많을 텐데, 기껏 남미산 포퓰리즘과 여론 몰이만 열심히 배운 것 같은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해시태그든 공모전이든, 본질은 같다. 시끄러운 찬양의 소음으로 조용한 고통의 신음을 덮어버리겠다는 것. 이것이 바로 ‘배급문학’의 본질이다. 국가가 제공한 푼돈으로 연출된 행복을 고백하게 하고, 그 고백들을 모아 현실의 고통을 덮어버리는 얇은 벽지를 만드는 것. ‘수령님 덕에 이밥에 고깃국을 먹었다’는 체제 선전과, ‘대통령님 덕에 소고기 사 먹고 가족애를 느꼈다’는 사연 사이에 무슨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가.


정책을 포기하고 홍보에만 매달리는 정부의 민낯이 처참하다. 정부가 외면하는 진짜 '민생 회복 사연'은 공모전 게시판에 올라오는 감상문이 아니다. 그것은 가게 월세를 걱정하는 자영업자의 잠 못 드는 밤에 있고, 취업을 포기하는 청년의 텅 빈 눈동자에 있으며,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든 냉소와 분노 속에 있다. 하지만 정부는 그 모든 진짜 사연들에는 귀를 막은 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감동만을 골라 듣겠다며 판을 벌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억지 감동을 쥐어짜는 글짓기 대회가 아니라, 환율을 방어하고 시장을 안정시킬 냉철한 정책이다. 정부는 이제 시 짓기를 멈추고, 당장 집안에 붙은 불부터 꺼야 한다.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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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neycat2025-08-04 09:56:34

    언제 또 이런 짓거리를...따라가기 바쁘네요. 한심하다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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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t4m2025-08-04 02:41:38

    헛웃음이 저절로 나오는데 실소 끝에 공포심이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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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3 23:17:18

    검은 비명,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감동 시 쓰기. 현 대한민국의 상황을 육중하고도 날카롭게 지적해주시는 표현입니다. 늘 올바른 진단과 방향의 칼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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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3 22:37:54

    또 어떤 홍위병이 나와서 용비어천가를
    부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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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3 22:30:27

    북조선에서도 저런 짓은 이제 안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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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3 20:24:28

    상금도 소비쿠폰으로 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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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3 19:00:11

    옛날 반공 글짓기 대회 생각나요 ㅋㅋㅋㅋ
    진짜 미쳤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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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n6er2025-08-03 15:58:25

    실패한 관세협상도 주식도 등돌리는 여론도 다 일부의 트집으로 돌리고 사람들 기억속엔 민생쿠폰만 남기고 싶은가보죠 아직도 그게 또 통할까 무섭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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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dongong2025-08-03 13:40:13

    SNS에서 떠도는 웃긴 이야기들이 저기서 나오면..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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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3 13:14:09

    지랄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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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8-03 13:00:05

    악취를 덮기 위해 향수만 뿌려대는 게으르고 무능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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