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완장은 사회적 계급의 직설적 상징 중 하나다. 이와 관련된 유명한 실험이 있다.
1971년 스탠퍼드대학교의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는 이른바 ‘감옥 실험’이라는 심리학 실험을 진행했다. 24명의 대학생을 무작위로 교도관과 수감자로 나누어 모의 감옥에서 생활하게 했다. 교도관 역할의 참가자들은 권위적 태도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수감자 역할자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학대까지 가했다. 반면 수감자 역할의 참가자들은 처음에는 대항했으나 점차 순응하거나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며 중도 이탈하였다. 결국 이 실험은 그 위험성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이를 소재로 영화(엑스페리먼트, 스탠포드 프리즌)가 만들어질 정도로 시사하는 바가 큰 실험이었다. 완장이 주는 묘한 착시, 마치 원래 자신이 큰 능력자였던 것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그 위험한 마력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결합해 문제를 일으킨다.
영화 '엑스페리먼트' 포스터
완장 차고 큰소리치는 것은 지적 능력이 크게 필요 없는 낮은 수준의 행태에 속한다. 진정한 능력은 조건이 동등할 때 드러나고, 인품은 완장 여부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의 수준을 알아보려면 그에게 완장을 채워 보면 된다. 경험상, 완장에 기대어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은 거리를 두는 것이 좋다. 이런 사람은 더 큰 완장에 조아리는 반면, 완장 없는 사람을 겁주고 무시하는 저렴한 습성이 있다. 그런 사람에게 굳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슬프게도, 최근 우리나라는 완장의 공해로 가득 차 피할 곳이 없는 환경이 되었다. 대통령 완장을 찬 사람이 온 나라에 소란을 피우는 중이다. 세상이 자기 발아래 놓인 것 같은 착시를 주는 완장의 매력에 푹 빠진 듯하다.
민심 듣겠다고 타운홀 미팅을 열더니 가는 곳마다 훈계와 핀잔이다. 질문하는 사람에게 여기가 청문회 자리냐고 면박을 주고, 질문을 하지 말고 건설적 의견을 달라며 듣고 싶은 말을 요구한다. 전에는 뭐라도 해줄 것처럼 고개를 숙이더니 완장을 차고 나니 턱을 올려 거만한 표정을 짓는다. 완장은 무거운 머리를 들어 올릴 정도로 중력을 무시한다.
완장. 그래픽 - 가피우스
나라 빚으로 현금 뿌리며 온갖 생색은 다 내더니 완장질할 돈이 부족하다며 세금을 더 내란다. 왜 세금을 올리냐니까 정색하며 ‘올린다’가 아니라 ‘정상화한다’라고 표현을 바꾸란다. 기업들 군기 잡는 일에도 분주하다. 사고가 발생한 회사에 득달같이 달려가 원인과 책임 여부 불문, 일단 ‘이놈!’ 하며 호되게 꾸짖는다. 장관에게 완장 걸고 해결하라며 자기 완장의 서열을 과시하는 꼼꼼함도 보인다. 사장을 야단쳐서 업무 시간을 바꾸게 하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실직자가 생기거나 말거나 아예 회사 문을 닫으란다. 심지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행위라며 사법적 단죄까지 한다.
라면값이 비싸다고 잔소리하다가 어느새 계곡에 가서 백숙 팔면 안 된다며 피서지 단속까지 나선다. 주식으로 장난치면 패가망신 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니, 정작 자기는 내용 없는 말로 주식시장을 들쑤시고 다닌다.
마치 자기가 완장을 달기 전에는 이 나라가 법과 제도가 없는 미개한 국가였던 것처럼 거들먹거린다. 일상의 평온함에 방해가 될 정도로 신경에 거슬린다. 이것도 모자란 것인지, 이젠 자기가 완장 찬 기념으로 거대한 ‘셀프 대관식’까지 하겠단다.
약 2천 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나 보다. 노자의 사상을 담은 도덕경에 ‘훌륭한 통치자’의 덕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太上,下知有之. 其次,親而譽之. 其次,畏之. 其次,侮之
가장 훌륭한 군주는 백성들이 그 존재만을 아는 군주이고,
그다음은 백성들이 그를 친밀하게 여기고 칭찬하는 군주이며,
그다음은 백성들이 그를 두려워하는 군주이고,
가장 못한 군주는 백성들이 그를 업신여기는 군주이다.
가장 훌륭한 통치자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다. 있는 듯 없는 듯 백성들의 일상을 침해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덕목이라 한다. 작금의 현실에 비추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 없다.
국가의 운영은 시스템(법과 제도)에 의하고, 사람의 간섭과 영향은 최소화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국가 운영에 예측 가능성과 안정성이 확보되고, 이를 동력으로 국가가 지속될 수 있다. 백성들이 그 존재만을 아는 군주란 결국 개인기 남발이 아닌 국가 시스템 관리에 충실한 것을 말한다. 특정 사람과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는 국가는 문명화가 덜 된 것이다. 미개한 국가라는 의미이다.
우리나라는 엄연히 법과 제도가 있으며, 역사적으로 축적된 사회적 자산과 집단적 지성이 작동하는 국가다. 국민이 불행한 것은 이런 나라를 사적 영향력 아래 두려는 삐뚤어진 욕망의 정치꾼들 때문이다. 이런 자들에 의해 국가 시스템은 교란되고 국민의 평온한 일상이 방해받는 것이다. 완장질로 국민에게 겁을 주고, 그 유치함이 대중의 입에 오르내리는 현재 우리나라 통치자의 꼴은, 도덕경의 기준에 따르면 낙제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출직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다(국가공무원법 제1조). 이에 대해 이재명은 ‘머슴’이라는 표현을 썼고 적극 동의한다. 머슴에게 완장을 채워준 것은 일을 잘하라는 것이지 주인을 귀찮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일을 핑계로 주인의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되며 매사에 행동을 절제해야 한다. 있는 듯 없는 듯 주인의 시선과 동선을 살피면서도 주인이 시킨 일의 완성도를 높여야 쫓겨나지 않는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거창하게 완장 착용식을 하겠다면서 주인이 ‘나의 머슴님’ 하는 장면을 연출한단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그런 기괴한 발상이 어느 근본 없는 머슴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찾아내서 멍석말이를 한 다음에 마을 어귀에 내다 버리고 싶다(#1754).
이 기사에 7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옳소. 멍석말이해서 내다버립시다. 회사에서도 일 못하는 인간이 완장절로 지랑떨고 높은 사람한테 샤바샤바 지 보다 밑에 있다고 생각들면 찍어 누를려고 하고 그 성향은 똑같음
예전 베스트셀러극장에 ‘완장’이라는 에피소드가 있었죠.
상무지렁이 동네 양아치가 저수지관리 완장을 차면서부터 벌어지는 스토리였죠.
완장하나에 하늘 무서운줄 모르고 깝치다가 동네 사람들에게 줘터져 쫓겨나는 결말이었던 것 같은데...누구의 미래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정말요. 내다버리고 싶습니다.
정돈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국가의 시스템을 망가뜨리면서 용어로 말장난하고 있는 걸 보면 웃음도 안 나오네요.
맨 아랫 줄에 동감합니다.
완장질 하는 놈과 부역하는 머슴놈들 소나기 홀딱 맞아
우왕좌왕 하는 꼴을 보고 싶네요 ㅎ
그러네요 완장 재수없고 짜증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