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뭐 볼까?' 식으로 뉴스와 스피커를 고르는 요즘 사람들
넷플릭스처럼 정치 이슈를 콘텐츠로 소비하는 사람들
한때 유권자들은 신문과 방송의 공신력 있는 분석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 지지 정당을 선택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온라인 포털 기사를 제대로 읽지도 않으며 종이신문은 시대의 유물이 된 지 오래다. 2023년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디지털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뉴스 포털 이용률은 최초로 70% 아래로 떨어졌으며, 2025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중 50%가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소비하고 있다. 이는 세계 평균 30%에 비해 크게 높은 수치다.
사람들이 포털과 텔레비전에서 벗어나는 이러한 변화는 '뉴스'가 소비되는 형태뿐 아니라 정치적 담론의 형성 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넷플릭스에서 콘텐츠를 고르듯, 자신의 성향에 맞는 유튜버와 인플루언서의 콘텐츠를 골라 그들이 말하는 대로 정치를 소비한다. 이 과정에서 인플루언서들은 단순한 정보 제공자를 넘어, 정치 이슈의 새로운 '게이트키퍼'로 부상했다.
미국의 로라 루머와 조 로건, 한국의 김어준과 전한길
미국에서는 최근 로라 루머라는 유튜버가 트럼프 측근으로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그는 지난 대선 캠페인 중 파문을 일으킨 트럼프의 '이민자 발언'을 만든 주역으로, 주류 언론과 기득권들을 비판하며 트럼프 지지층에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정부 공직 없이도 트럼프 전용기에 탑승하고 정부 인선에까지 관여하는 '실세'로 불린다. 최근 로라 루머가 트럼프를 만난 직후 그가 '충성심이 부족하다'고 지목한 백악관 고위급 참모진이 해고된 사건은 그의 영향력을 증명한다.
역시 유튜버인 조 로건은 수천만 명의 청취자를 기반으로 대선 후보들을 초대해 그들의 이미지를 좌우한다. 그의 채널 '조 로건 익스피리언스'는 정치, 스포츠, IT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일론 머스크나 버니 샌더스 같은 유명인들을 장시간 인터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정치 유튜버 로라 루머의 저서 '루머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층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는 백악관의 '실세' 로 여겨진다. (사진: 로라 루머 트위터)
한국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정신적 지주로 여겨지는 방송인 김어준은 그의 방송을 통해 당의 메시지를 결집하고, 주요 현안에 대한 지지자들의 여론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정치평론가들은 최근 치러진 민주당 전당대회를 명심(대통령)vs 털심(김어준)의 대결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역사 강사 출신 유튜버 전한길은 윤석열의 계엄을 계기로 정치 인플루언서가 된 케이스다. 그는 '윤어게인'으로 상징되는 국민의힘 극성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대표 스피커로 활동하고 있다.
우파 유튜브로 활동하는 전한길.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그가 내년 지방선거에 후보로 뛸 것을 전망하기도 한다. (사진: 전한길 유튜브)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새로운 가능성? 민주주의의 퇴행?
긍정적으로 보면 인플루언서들의 등장은 정보 전달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그들은 복잡한 정치 이슈를 일반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며,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낸다. 전통적인 언론이 권력과 자본에 좌우될 수 있다는 비판 속에서, 이는 정보의 '게이트키퍼' 역할이 소수 기득권 언론으로부터 대중에게 넘어가는 '정보의 탈중앙화' 과정으로도 볼 수 있다.
친민주당, 친이재명 스피커로 여당 지지층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김어준. (사진: 연합뉴스)
그러나 인플루언서들에게 정치적 결정이 좌우되는 현상은 민주주의의 건전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인플루언서 채널을 통해 정치 이슈를 소비하는 습관은 '필터 버블' 현상을 심화시켜 각자 다른 현실을 믿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을 더욱 벌어지게 만든다. 또한 대부분의 인플루언서들은 공인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신분이지만, 수십, 수백만의 영향력이 그들의 비전문성을 가려주고 행동의 동기가 되어준다. 로라 루머가 국가 안보 전문가의 해고에 영향을 미치거나, 전한길과 김어준 같은 인플루언서의 의견이 정당의 주요 결정에 반영되는 것은, 사안에 대한 전문성과 합리적 논의 대신 스피커가 가진 '팬덤의 규모'가 정치적 결정의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인플루언서들이 정치에 직접 영향을 주는 현상은 기술 발전이 가져온 자연스러운 변화이지만, 민주주의 사회가 당면한 도전이기도 하다. 스피커가 많아지고 최신 정보가 넘쳐나며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채널 또한 열린 것 같지만 정보를 구분해 선택하는 일은 더욱 어렵고 복잡해졌다. 인플루언서들의 영향력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스스로’ 다양한 정보를 교차 검증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김선 논설위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아직도 띵한 것이. 전직 대통령이 개딸이라는거. 그건 진영주의자도 아니고 고작 김어준 같은
정보는 넘쳐나는데 선택하는 입장에서는 그만큼 어려워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