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중 시위대 명동 진입 막는 경찰 (서울=연합뉴스)
공식석상에서 중국과 파키스탄 정부는 서로를 ‘철의 형제(鐵哥們)’라 부르며 굳건한 우정을 과시하는 것과는 달리, 현실의 파키스탄은 중국인들에게 결코 안전한 땅이 아니다. 카라치 공항 근처에서는 중국인 기술자와 투자자들을 노린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하고, 과다르 항구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는 엔지니어 호송대가 무장 괴한들의 습격을 받는다. 발루치스탄해방군(BLA)과 같은 분리주의 무장 단체는 중국의 투자를 ‘현대판 식민주의’이자 ‘자원 약탈’로 규정하고, 중국인을 향한 유혈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처럼 정부 차원의 화려한 수사가 현장의 폭력적인 저항과 공존하는 기이한 현실이야말로, 반중 정서가 단순한 혐오나 차별이 아님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같은 시간, APEC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반중 집회’를 거론하는 풍경은 이 복잡한 현실을 얼마나 안일하게 보고 있는지 드러낸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번지는 반중 정서는 특정 민족이나 국가에 대한 비이성적인 반감이 아니다. 그것은 파키스탄의 총성, 아프리카의 신음, 동남아의 절규 속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중국의 특정 행동 방식에 대한 합리적인 ‘반작용’이다. 우리가 마주한 위협의 실체는 ‘국가’라는 익숙한 간판 뒤에 숨어 움직이는 ‘거대 범죄 신디케이트’의 섬뜩한 그림자이기 때문이다.
그 범죄의 청사진은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있다. 한때 아름다운 휴양지였던 곳은 중국의 ‘일대일로’ 자본이 휩쓴 뒤, 회색빛 감옥 같은 건물들이 늘어선 범죄 도시로 전락했다. 2019년 온라인 도박이 금지되자 카지노 단지는 순식간에 삼합회가 운영하는 ‘스캠 공장’으로 탈바꿈했다. 이곳에서 전 세계 젊은이들은 ‘디지털 노예’가 되어 감금과 폭행 속에 사기 범죄를 강요당한다. 최근 한국 청년의 비극은, 그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벌어진 수많은 죽음 중 일부가 우리 눈앞에 드러난 것일 뿐이다.
이 ‘범죄 산업’의 배후에는 현지 독재 권력과 결탁한 중국계 네트워크가 있다. 미국 FBI는 삼합회 ‘14K’의 전 두목을 지목했는데, 그는 일대일로를 등에 업고 캄보디아 총리의 고문 자리까지 올랐던 인물과 연결되어 있다. 국가 프로젝트가 범죄 조직의 활동 무대를 전 세계로 넓혀주는 고속도로가 된 것이다.
우리에겐 멀게만 느껴지는 아프리카의 비극은 동남아 사태의 단순한 복사본이 아니다. 두 개의 비극은 각기 다른 경로로 진행되다, 최악의 형태로 합쳐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문제는 동남아의 ‘스캠 공장’보다 훨씬 이전인 2000년대 초, 중국의 ‘저우추취(走出去)’ 정책과 함께 시작됐다. 중국은 도로, 항만 같은 인프라를 지어주는 대가로 석유, 코발트, 목재 같은 천연자원을 확보했다. 이 수십 년에 걸친 ‘자원 약탈’의 과정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법치 시스템을 내부에서부터 좀먹으며, 범죄가 자라날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냈다.
이 비극적인 논리의 종착역이 바로 인신매매와 장기적출이라는 핏빛 비즈니스다. 이 범죄는 워낙 은밀하여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드러난 조각들은 거대한 악의 실체를 짐작하게 한다. 나이지리아에서는 "이탈리아에서 고임금 일자리를 주겠다"는 말에 속아 넘어간 젊은 여성들이 유럽으로 팔려가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일이 빈번하다. 최근에는 그 목적지가 중국으로 바뀌고 있다. 신부나 공장 노동자로 팔려간 이들 중 상당수는 연락이 두절된다. 현지 인권 단체들은 이들 중 일부가 장기 적출의 희생양이 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한적한 주택가에서는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불법 병원이 여러 차례 적발되었다. 정식 면허도 없는 이 병원들은 낙태 시술 따위를 하는 것으로 위장했지만, 내부에서는 고가의 의료 장비들이 발견되었다. 인터폴은 이런 비밀 클리닉이 국제 장기 밀매 네트워크의 아프리카 거점이라 경고한다.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가난한 아프리카인들은 단돈 몇백 달러에 신장을 팔라는 유혹에 노출되고, 거부할 경우 납치와 강제 적출의 표적이 된다.
2017년과 2019년, 말라위에서는 ‘흡혈귀(Vampire)’ 공포가 전역을 휩쓸었다. 정체불명의 외부인들이 아이들을 납치해 피를 뽑아간다는 소문이 돌자, 분노한 군중이 용의자들을 린치해 살해하는 비극까지 벌어졌다. 이는 단순한 미신이 아니다. 외부 세력에 의한 자원 착취와 인신매매에 대한 현지인들의 뿌리 깊은 공포가 괴담의 형태로 폭발한 것이다. 결국 ‘일대일로’는 한 국가의 자원뿐만 아니라, 그 국민의 몸까지 ‘살아있는 부품’으로 취급하는 악마의 주문서가 되고 있다.
이런 전 세계적인 현실 앞에서 민주당의 행태는 기이함을 넘어 오만하기까지 하다. 최근에는 한술 더 떠, APEC을 앞두고 국민의 힘이 나서 ‘반중 집회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을 대체 무엇으로 보고 있는가. 지금의 분노와 우려는 파키스탄과 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실, 친중 국가들이 겪는 혼란과 고통을 두 눈으로 목격한 국민들의 자발적인 판단이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수도꼭지를 틀듯 켜고 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인 ‘초국가적 범죄’에는 눈감은 채, 오직 ‘반중’이라는 현상만 놓고 정치적 공방의 도구로 삼으려는 그 기만적인 의도를 똑똑히 꿰뚫어 보고 있다.
APEC에서 ‘책임 있는 강대국’의 자리를 원하는 중국에게 물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당신들의 국가 프로젝트인 '일대일로'가 어쩌다 전 세계적인 ‘범죄의 고속도로’가 되었는가. 진정한 국제적 위상은 마천루의 높이가 아니라, 자국에서 파생된 범죄가 망가뜨린 타국민의 삶을 복원하려는 책임감에서 나온다는 사실말이다.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7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랫분 민주당이 apec을 앞두고 국민의 힘이 나서서 반중집회 막으라고 얘기했다는 겁니다.
반중집회가 열리는 여러 이유는 간과한채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도 문제죠
국민의 힘이 나서가 아니라 정부가 나서서 집회를 막는다로 고치셔야 할듯요
자국민이 피해를 입고 있는데 혐오하지 말라고 하면 누가 받아들이겠냐고요.
질적으로 별 차이도 없는 무슬림들한테까지 미움 받는 쭝꿔들이란
일상을 위협받고 있는데 이걸 혐오라고 단순 몰고가는게 지나친 자기검열 어떤 면에서는 자기혐오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