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발의한 '중국인 심기 경호법'
더불어민주당 양부남 의원 등이 발의한 형법 개정안이 눈길을 끈다. 표면적으로는 '특정 국가나 인종에 대한 혐오 규제'라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운다. 그러나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주인공은 끊임없이 과거의 문장과 단어들을 교정한다. 사상의 타락을 막기 위해서다. 이 법안은 '비판(Criticism)'을 교묘하게 '혐오(Hate)'라는 단어로 바꿔치기한다.
법안 제안 이유서는 유일한 예시로 '개천절 혐중집회'를 든다. 이 노골적인 표적성에서 우리는 이 법안이 '반일(反日)'이나 '반미(反美)'가 아닌, 오직 '반중(反中)'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맞춤형 족쇄'임을 간파하게 된다.
중국이 서해에 설치한 불법 시설물 (사진=연합뉴스)
만약 이 잣대를 공정하게 들이댄다면 어떻게 될까?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시위에서 민주당과 진보들이 '일본'을 향해 쏟아냈던 격한 발언들 역시 처벌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인류에 대한 범죄", "제2의 태평양 전쟁", "방사능 테러”,“핵폐수” 등등. 이 법안의 발의자들이야말로 가장 먼저 이 법의 심판대에 서게 될지 모른다. 물론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 갑자기 핵폐수는 안전한 처리수가 되어버렸다. 더이상의 소금 사재기도 없고 횟집엔 방어회를 먹겠다는 이들로 붐비고 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를 배제한 조항이다. 이는 피해 당사자인 중국 정부나 중국인의 고소 없이도, 제3자(특정 시민단체나 정치 세력)의 고발만으로 우리 수사기관이 자국민을 수사하고 기소할 수 있게 길을 터주는 것이다. 대한민국 사법기관이 '중국 정부의 명예'를 수호하는 법적 대리인으로 전락시키는 이 조항은, 입법적 자해행위에 가깝다.
"모든 지구인에게 적용된다."
이 문장은 공상과학 소설의 서문이 아니다. 2020년 만들어진 홍콩 국가보안법 제38조는 홍콩 영주권자가 아닌 사람이라도 해외에서 홍콩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는 행위를 할 경우, 홍콩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콩 내에 있지 않은 외부 인사에게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법은 이론상 지구상의 모든 인간이 중국 공산당을 비판할 경우, 그가 어디에 있든 중국법의 처벌 대상이 된다고 선언한다.
이것이 양부남 의원안과 만났을 때, 비로소 '완벽한 덫'이 완성된다.
이 법안이 통과된 후의 시나리오를 그려보자. 어느 대한민국 국민이 광화문에서 서해의 불법 강철 구조물을 비판하는 1인 시위를 한다. 그는 중국정부나 중국인도 아닌 진보촛불단체에 의해서 고발된다. '특정 국가 모욕죄'라는 신설된 한국 형법에 따라 대한민국 그 어떤 수사기관-검찰은 해체되니 중수청,기소청 또는 그 어떤 무언가-에 의해 기소되고, 대한민국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다. 그는 이제 '범죄자'가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것은 '1차 처벌'에 불과하다.
그가 사업이나 여행을 위해 홍콩이나 베이징을 방문하는 순간, '2차 처벌'이 발동한다. 중국 공안은 그를 공항에서 체포할 수 있다. 죄목은 무엇인가? 바로 홍콩 국가보안법 제38조 위반이다. 중국 당국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서울에서 한 그 비판 행위는 당신들 나라의 법원조차 '범죄'라고 인정한 행위다. 우리는 우리 법에 따라, 당신들 스스로 '범죄자'라고 낙인찍은 인물을 처벌할 뿐이다."
이 개정안은 대한민국 국회가 자국민의 비판 행위가 '범죄'임을 공식적으로 인증해 주는, 중국을 위한 '사법적 확인서'가 된다.
링 위의 언어, 그리고 기울어진 시합
이 기괴한 불균형, 이 입법적 자해 행위는 나로 하여금 세상을 내가 가장 잘 아는 렌즈, 즉 사각의 링으로 다시 보게 만든다. 나는 링 위에서 반평생을 보냈다. 땀 냄새와 가죽이 마찰하는 소리, 둔탁하게 몸에 와 닿는 충격. 킥복싱, 복싱, 그리고 프로레슬링. 이 육체의 언어는 지독히도 정직하다. 그러나 나는 또한 마이크 앞에서 그 링을 해설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UFC의 처절한 현실과 WWE의 화려한 각본, 그 사이의 경계를 탐색하는 일이었다.그때 깨달은 것이 있다. 세상은 종종 거대한 프로레슬링 링이라는 사실이다. 특히 외교 무대가 그렇다.
우리는 외교에서 '아그레망(agrément)'이니 '초치(招致)'니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 같은 지극히 연극적인 용어들을 사용한다. 대사를 소환해 항의의 뜻을 전하고, 기피 인물로 지정해 추방한다. 이것은 실제 전쟁이나 주먹다짐이 아니다. 그것은 '보여주기 위한' 행위, 즉 '워크(work)'다. 이 모든 장엄한 퍼포먼스는 결국 자국민, 즉 '내치(內治)'를 위한 거대한 각본이다.
프로레슬링에서 좋은 시합(work)이 성립되려면 두 가지가 필수적이다. 첫째는 체급이다. 둘때는 상호신뢰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일방적인 폭력이나 난투극이 되어버린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이 '시합'은, 상호주의라는 기본 전제가 처참하게 무너진 '스쿼시 매치'다.
바다의 강철을 보지 못하는 눈
이 법안을 지지하는 이들, 스스로 '진보'라 칭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들은 지금 서해에 떠 있는 거대한 실체를 정말 보지 못하는 것인가.가로 100미터, 세로 80미터, 높이 70미터. 우리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부근에 중국이 무단으로 설치한 강철 구조물이다. 헬기 착륙장까지 갖춘 이 거대한 인공 섬을, 그들은 정말 '어업 시설물'이나 '양식장'이라 믿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는 진영과 이념의 문제를 넘어선다. 그것은 '지적 수준'의 문제, 혹은 현실을 인지하는 감각기관의 근본적인 마비 상태를 의심해야 할 영역이다.그 강철 구조물은 중국의 오만함과 우리의 주권이 침해당하는 현실을 상징하는 묵직한 물증이다.
싱하이밍 대사의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면 후회할 것"이라는, 주재국을 향한 오만한 협박성 발언. 외국인 범죄 통계에서 차지하는 절대적인 수치, 양국 내 투표권 불평등, 한국 부동산 매매 불평등 등등. 이 모든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국민적 분노와 정당한 비판을, 이 법안은 '혐오 범죄'라는 이름으로 형사처벌하겠다고 협박한다. 가해자의 행위는 묵인하고, 피해자의 목소리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이 기울어진 시합은 이미 법적, 정치적 영역에서 일방적으로 진행 중이다. 상호주의는 실종된 지 오래다.이 법안은 프로레슬러가 시합이 시작되기도 전에 스스로 링 위에 엎드려 상대에게 핀 폴(Pin Fall)을 내주는 꼴이다. 심지어 상대의 발을 들어 자신의 가슴 위에 올려놓기까지 한다.
국가가 형법이라는 칼을 들어 '건전한 시위'를 재단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전체주의적이다. 이 법안은 '혐오 규제법'이 아니다. 이것은 자국민의 입을 틀어막아 타국의 심기를 경호하겠다는 '자국민 탄압법'이며, 홍콩 국가보안법의 글로벌 집행을 돕는 '이중 처벌 연동법'이다. 국가의 척추를 스스로 부러뜨리는 '입법적 조아림'이다.
한국이 원래부터 이랬었나? 갑자기 이렇게 중국 앞에 바짝 엎드릴 어떤 '필요'가 생긴 것인가? 그렇다면 그 필요는 무엇인지 최소한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 궁금증에 답하라는 국민들에게 두 장짜리 처벌법안을 들이미는 것이 국회의원이 해야할 일인가?
김남훈@팩트파인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