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12월의 행복, 이 무례한 세상에 던지는 가장 우아한 복수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12-01 07:51:49

  • 나를 괴롭히는 소음과 작별하고, 기어이 나만의 고요를 찾아내는 법

12월의 햇살은 비스듬히 눕는다. 여름날 정수리를 뜨겁게 달구던 그 꼿꼿한 직사광선은 사라지고, 힘을 잃은 볕이 거실 바닥으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기어 들어온다. 그 낮은 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들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덜컥 겁이 난다. 나의 일 년도 저 먼지처럼 그저 허공을 떠돌기만 했던 것은 아닐까. 맹렬하게 살았다고 믿었는데, 손에 쥐어지는 것은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시간뿐인 것 같아서다.



TV를 켜면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다. 화면 속의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하고, 듣기 싫은 소음들이 거실의 정적을 깬다. 이상한 일이다. 부끄러움을 잊은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저들은 저토록 당당한데, 왜 성실하게 하루를 버텨낸 우리는 밤마다 이불 속에서 "내가 뭘 잘못 살았나" 하며 스스로를 검열해야 하는가.


우리는 분명 괴로움을 느끼려 세상에 온 게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자. 당신이라는 사람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간절한 눈빛과 따뜻한 손길이 있었는지를. 걷지도 못하던 시절 누군가는 당신을 품에 안고 밤새 흔들었고, 당신의 첫걸음마에 온 세상이 떠나갈 듯 환호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뿐인가.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밥벌이를 해내겠다고,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겠다고 당신은 스스로를 얼마나 모질게 채찍질하며 여기까지 왔는가.


그 수많은 사람의 정성과 당신이 흘린 식은땀의 목적지가 고작 이 연말의 초라한 자책감일 리 없다. 우리가 행복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기분이 좋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을 키워낸 그 모든 사랑과, 치열하게 버텨온 당신의 지난 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엄중한 의무다.


창밖의 가로수를 본다. 지난 계절, 그토록 화려했던 초록을 다 떨구고 검은 가지를 드러낸 채 서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나무를 보며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무 자신도 "올해 더 무성하지 못했다"며 자책하지 않는다. 그저 군더더기를 버리고, 가장 단단한 본질만 남긴 채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TV를 끄자. 저 바깥의 무례하고 시끄러운 세상이 내 마음의 평화까지 갉아먹게 두지 말자. 대신 따뜻한 차 한 잔을 끓여 낡은 식탁 앞에 앉자.


행복하겠다 다짐하고 마음먹는 것. 그것은 저 무례하고 소란스러운 시대에 대항하는 가장 우아하고 강력한 응전이다. 당신은 시간을 허비한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당신이라는 나무의 나이테를 한 줄 더 그렸을 뿐이다. 그거면 됐다. 충분하다.


차도 준비가 되셨다면, 12월의 첫 날을 노라존스의 'December'로 시작해 보시길 추천한다.




관련기사
TAG

프로필이미지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에 1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lrrp04712025-12-05 16:46:24

    미약하나마 원고료 보냅니다.

  • 프로필이미지
    lrrp04712025-12-05 16:45:55

    예리하지만 따스한 글, 감사합니다.
    포근한 음악까지..
    촌철살인에 능하신지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
    이런 능력까지 탁월하시군요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2-02 13:24:25

    또 한 해가 지나가면서 나이만 많아지는 것에 슬픔을 느꼈는데 이 칼럼 읽고 조금은 안심이 되는 기분이 들어요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2-02 09:43:15

    님 덕분에 위로와 힘을 많이 받은 한해였습니다. 내년에도 함께 해 주실거지요? 아자!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2-01 22:14:56

    그동안 버텨온 시간과 저를 아껴준 분들을 생각해서도 행복해보려고 애써보겠습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2-01 17:59:33

    따듯하고 정성스런 위로 감사드립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2-01 16:30:55

    차 한잔 마시며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ddongong2025-12-01 14:00:30

    좋은 글 감사합니다.

  • 프로필이미지
    atom07242025-12-01 10:53:15

    이 칼럼으로 이미 행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2-01 10:30:41

    콧날이 시큰해지는, 온기 넘치는 멋진 칼럼입니다.
    치열했던  지난 삶에 위로와 격려
    그리고 휴식의 명분과 희망을 얻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끓여 낡은 식탁 앞에 앉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2-01 09:26:35

    감사합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2-01 08:56:25

    요즘의 저 자신과 오늘과 너무 잘 맞는 글과 음악선물 정말 감사합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2-01 08:53:32

    좋은 글, 좋은 노래 고맙습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12-01 08:08:44

    행복하겠다고 다짐하고 맘믹는
    그런 12월을 시작합니다.
    노래가 넘 멋집니다.

    더보기
    • 삭제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트럼프 "관세 25% 폭탄" 선언... 巨與 민주당의 '선거용 눈치보기'가 경제 뇌관 터뜨렸다 트럼프 "관세 25% 폭탄" 선언... 巨與 민주당의 '선거용 눈치보기'가 경제 뇌관 터뜨렸다트럼프 "한국 국회 약속 불이행... 즉각 보복"이재명 대통령은 '굴욕 합의', 민주당은 '비준 뭉개기'170석 가진 與, 야당 눈치 보며 제 밥그릇 챙기다 '화(禍)'6월 지방선거 역풍 우려한 '입법 태업'에 기업만 '곡소리''이.
  2. [칼럼] 150만 소비자를 볼모 잡은 '노란봉투'의 역설 전국 150만 명의 한국GM 차주들은 지금 황당한 상황에 처했다. 차가 고장 나도 고칠 부품이 없다. 세종시 부품 물류센터가 한 달 가까이 하청 노조에 점거당해 멈춰 섰기 때문이다. 서비스센터 재고는 바닥났고, 애프터서비스(AS)는 사실상 마비됐다. 소비자의 권리가 특정 노조의 실력 행사 앞에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이 사태의 원인을 들여다...
  3. [칼럼] 미국서 큰 소리 쳤던 총리, 미국은 관세로 뺨을 때렸다 외교는 말이 아니라 결과로 증명된다. 며칠 전 김민석 국무총리는 미국 워싱턴에서 꽤나 위풍당당했다. 그는 쿠팡을 겨냥해 “법과 상식에 미달한다”, “미국 정부에 호소해 진실을 왜곡하는 건 반미국적이다”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은 기업의 불만 따위에 흔들릴 만큼 허약하지 않다”고 자신했다. 지지...
  4. [칼럼] 미국이 보낸 '독촉장'을 깔고 앉은 청와대 외교에서 ‘서한’은 무게가 다르다. 특히 동맹국 대사대리가 보낸, ‘합의 이행을 촉구’하는 서한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편지가 아니다. ‘최후통첩’이자 ‘청구서 독촉장’이다.지난 1월 13일, 주한미국대사대리가 한국 외교부에 이 독촉장을 보냈다. 다음 날인 14일, 이 사실은 청와대와 총리실에 보고됐다. 정상.
  5. [칼럼] 국가는 '평론'하는 곳이 아니라 '조율'하는 곳이다 어제 29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현대차 노조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생산 현장 투입을 막아선 사태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그는 기술의 파도를 "거대한 수레"에 비유하며 "피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19세기 영국 노동자들의 기계 파괴 운동인 '러다이트'까지 소환해 "어차피 올 세상이니 적응하...
  6. [PWS 스노우 스톰] '진개성' 전격 복귀... 포이즌 로즈, 역사적인 초대 위민스 챔피언 등극 [PWS 스노우 스톰] '진개성' 전격 복귀... 포이즌 로즈, 역사적인 초대 위민스 챔피언 등극2026년 1월 24일 서울 중구 구민회관에서 열린 PWS(Pro Wrestling Society)의 흥행 '스노우 스톰'이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이번 대회는 다수의 타이틀 매치와 충격적인 복귀, 그리고 새로운 역사의 시작으로 팬들을 열광시켰다.■ 포이즌 로즈, PWS 역사.
  7. 전병헌, 경찰 왜 김병기 0.5톤 괴물 금고 못 찾나 의문제기 김병기 의원 부부 대형 금고 소재 파악 실패와 부실 수사 의혹새미래민주당 전병헌 대표는 경찰이 김병기 의원 부부의 대형 비밀금고를 압수수색 2주가 지나도록 확보하지 못한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전 대표에 따르면 해당 금고는 무게 300~500kg에 달하는 대형 내화금고 혹은 강력금고로 추정되며, 성인 남성 다수와 전문 장비가 동원되어야...
  8. 쿠팡 사태, 벤스 부통령이 김민석 총리에게 경고 미국 행정부의 치밀한 개입, 대사관 참관부터 부통령 경고까지쿠팡 사태를 둘러싼 미국 정부의 대응이 단순한 우려 표명을 넘어 조직적이고 전방위적인 압박으로 확대되고 있다. 주한 미국대사관 관계자가 지난 12월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쿠팡 청문회에 방청객으로 직접 참석해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본국에 상세히 보..
  9. 관세 25% 롤백에 입 닫고 유튜브 출연한 김민석 총리 관세 롤백으로 무색해진 '핫라인', 검증 피해 유튜브로 숨은 총리미국 정부가 25% 관세 조치를 롤백하면서, 김민석 국무총리가 외교적 성과로 과시했던 미 부통령과의 ‘핫라인’ 구축이 허울뿐인 구호였음이 드러났다. 외교적 실익을 챙기지 못한 상황에서 김 총리는 예정된 신년 기자간담회를 취소하고 유튜브 방송 출연을 선..
  10. [이슈] 한덕수 '징역 23년' 공포… 박성재, '행정'인가 '내란'인가 법리 전쟁 시작 [이슈] 한덕수 '징역 23년' 공포… 박성재, '행정'인가 '내란'인가 법리 전쟁 시작- 12·3 사태 관련 박성재 前 법무·이완규 前 법제처장 첫 공판 - 한덕수 '친위 쿠데타' 규정하며 중형 선고한 재판부 배정… 변호인단 긴장 - 朴 측 "장관으로서 실무 챙긴 것일 뿐" vs 특검 "내란 가담" - 李 측 "국회 위증은 .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