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포적부심 인용률은 1%미만으로 알려져있다 (그래픽=가피우스)
체포적부심? 처음 보는 제도인데?
필자는 공수처의 윤석열에 대한 영장체포가 정치쇼라는 점을 지적해 왔다. 영장체포는 48시간짜리 망신을 주려는 의도 이외에 수사상 실익이 없다. 신속한 단죄를 위해서는 체포영장 진행할 시간과 노력으로 구속영장을 청구 했어야 한다. 체포와 구속의 간극에서 오는 착시를 이용해 정치쇼를 해야 하는 공수처의 현실이 안타깝다.
이유야 어떻든 이미 체포영장은 집행 되었고 공수처는 48시간의 숙제를 떠안았다. 구속을 하지 못하면 즉시 석방해야 한다. 그런데 이 시점에 윤석열측은 체포적부심을 신청하였다.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라 그 배경에 대한 여러 분석이 나온다.
일반인의 입장에서 구속적부심은 익숙할 것이다. 한번 구속이 되면 재판이 진행되는 장기간 구금되어 있으므로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기 위해 흔히 구속적부심을 신청한다. 그러나 체포의 경우 48시간 시한이 있고, 조사불응으로 영장체포가 된 경우는 조서만 작성하고 귀가 시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체포적부심을 신청하는 경우는 없다. 48시간 이내 사후구속영장이 청구되면 어차피 구속적부심을 청구하면 되므로 역시 체포적부심을 청구할 이유가 없다. 체포적부심을 청구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48시간의 카운트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체포적부심 결정 시까지 체포시간이 진행되지 않는다. 그 시간만큼 체포시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48시간이 70시간, 90시간이 될 수도 있다. 실익 보다는 불이익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실무상 체포적부심은 보기 어렵다.
그런데 왜 윤석열은 이러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체포적부심을 청구 했을까?
쫓기듯 영장체포를 했던 공수처는 오히려 시간적 여유를 갖게 된 듯 표정관리를 하는 입장이다. 공수처 입장에서는 긴급체포가 아닌 영장체포를 했기 때문에, 체포적부심은 공수처의 체포에 대한 판단이 아닌 법원의 영장발부의 적법성이 쟁점이 된다. 그 결과가 어떻든 면피의 여지가 많다. 체포적부심은 영장 없는 현행범체포나 긴급체포(긴급체포는 구속영장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의 경우에는 쟁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영장체포는 상대적으로 그 인용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법원 스스로 자기 모순된 판단을 하는 것이 불가능은 아니더라도 곤란한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윤석열 측이 이것을 모를 리가 없다. 체포시한이 늘어나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내비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윤석열의 전략
윤석열측의 입장에는 일관성이 있다.
공수처의 수사권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해 왔다. 절차적 하자가 있는 수사와 재판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반복해 밝혔다. 그 연속선에서 체포영장을 고집하는 공수처에게 구속영장을 받아 오면 응하겠다고 반박한 것이다. 수사 초기 법원도 수사관할을 정리해 오라며 압색영장을 기각한 적이 있을 정도로 수사기관들의 급발진은 우려스러운 상황이었다. 그 중 가장 앞서 치고 나간 것이 공수처다. 창설 이후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던 공수처가 이번 기회에 만회하려는 욕망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조기대선에 온 관심이 집중된 민주당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고 할까, 공수처장은 국회에서 수사하명을 받고 그 결과를 보고하는 듯한 태도를 지속적으로 보였다. 그 결과가 현재의 상황이며 윤석열에게 숨쉴 공간을 내 준 원인이 되고 있다.
필자는 앞서 공수처의 이러한 태도에 우려를 나타냈다. 왜냐하면, 절차적 정당성이 생명인 형사절차에서 자칫 공수처의 이러한 행보는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쌓여가는 절차적 약점 중 어느 하나가 무너지면 윤석열을 영웅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공수처의 이러한 행보의 뒷배는 민주당이다. 민주당의 조급증이 공수처의 현실적 목적과 공진하여 절차적 무리수가 누적되는 모양새다. 계엄 초기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면 모를까 시간이 지날수록 가랑비에 옷 젖듯 누적된 절차상 흠결은 치명적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윤석열의 체포적부심 신청은 이를 정면으로 향한 전략이다.
윤석열은 공수처의 수사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체포영장의 요건이 된 수사거부는 수사권 없는 공수처의 수사에 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응하는 순간 수사관할의 하자를 추인(덮어 주는)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사권 없는 기관의 수사에 불응하는 것은 권리이다. 절차상 하자는 후속 절차를 모두 오염시킨다. 권리를 행사했기 때문에 조사거부로 인한 체포는 위법하다. 비록 체포시한 48시간을 손해 보는 한이 있더라도 절차상 하자를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실익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마치 추인한 것과 같이 오인될 여지를 모두 제거하는 것이다. 만약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이에 대해서도 적부심을 청구할 것이다. 구속이 되더라도 보석신청도 할 것이다. 절차상 하자를 집요하게 주장하면서 수사내용에 대해서는 묵비하는 것이 윤석열의 전략인 것이다. 당장 체포적부심이 기각 되더라도 이렇게 일관적으로 절차적 하자를 주장해 누적해 가는 것은 향후 절차에 있어 명분과 실리가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 사건은 이미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이 되었다. 윤석열이 공수처의 수사에 대해 갖고 있는 입장은 명백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련한 장기 전략은 일관적이다.
당장 큰 위법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공수처의 절차 하나하나는 흠결의 정도에 이르지 않고 다소 무리한 정도로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하자는 누적되는 습성이 있다. 형사절차에서 요구되는 절차적 정합성은 매우 엄격하다. 심지어 중범죄를 저지른다 하더라도 절차상 하자로 인해 무죄가 선고되는 예는 적지 않다. 이미 온 세상이 유죄로 단정해 더 잃을 것도 없는 윤석열의 입장에서, 공수처의 무리수에 대해 절차상 하자를 공격 포인트로 잡은 것은 현명한 전략이다. 그 여지를 준 것은 공수처이고, 공수처에게 칼춤을 추게 한 것은 민주당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의 냉정함
필자는 우원식 국회의장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가졌었다. 심지어 조롱하는 표현을 쓴 적도 있다. 그러나 그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계엄해제 표결 당시, 이럴수록 절차를 지켜야 한다고 언급한 장면이다. 그가 절차를 잘 지킨다고 칭찬하려는 것이 아니다. 목적을 위해 철저히 절차적 냉정함을 지키는 모습이 서늘했다. 급하고 신경질적이며 과격한 사람은 오히려 만만하다. 약점을 스스로 줄이는 상대가 싸우기 더 힘들다. 그를 쉽게 보지 않아야겠다 생각한 계기가 되었다. 그만큼 절차적 정당성이 무거운 것이 현실이다.
한 놈만 팬다.
공수처는 윤석열에게 약점을 보였다. 몸에 상처가 나고 화살을 맞더라도 그 약점을 물고 놓지 않을 의지를 보이고 있다. 독에 쏘여 기절하는 한이 있어도 뱀의 몸통을 물고 놓지 않을 태세다. 아까운 체포시한 48시간을 손해 보더라도 절차상 하자를 문제 삼는 이유다. 그깟 시간 손해 쯤 감수할 수 있다. 공수처 수사에 대해 갖는 윤석열 측의 일관적 입장의 발로이다.
수사주체를 정리하고 상호 협의하여 일관성 있는 전략과 역할분담을 해왔다면, 조급증을 버리고 절차적 위험요소를 줄이면서 윤석열을 압박 하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국회에 있는 정치꾼들이 뭐라고 하든 좌고우면 하지 말고 형사기관의 본분과 형사절차의 원칙에 집중해 왔다면 지금보다 요란하고 낭비적인 상황은 피하지 않았을까? 그 내면을 알든 모르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는다. 공권력의 가벼움은 직접 그 대상이 일반 국민일 수도 있다. 공권력의 현명함과 절제,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이유이며, 그렇지 못한 현실이 불편한 이유이다.
이 기사에 8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절차적 정당성,
형사절차에서 요구되는 절차적 정합성은 매우 엄격하다'
공수처가 저리 망둥이 뛰듯 쇼질을 한 것이 매우 불편했던 이유였네요.
공수처는 그 후과를 어떻게 감수하려는지, 두렵지도 않나?
명쾌한 설명 감사합니다. ^^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명확한 글 발 봤습니다.
결국 윤석렬 이재명당이 함께 무너져내리고 대청소를 같이 하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고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 시대의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네요.
진짜 민주당의 조급증과 단짝이 된 공수처의 쇼에 질력이 나면서도 저러다 정말 윤석열을 영웅 만들까봐 겁이 납니다
설령 그런 일은 없다 해도 윤석열이 결백하고 오히려 정의라 믿는 지지자들은 숙제로 남을텐데 지금 오히려 그들에게 명분만 쌓아주니 답답하네요
아하.. 이해가 갑니다..
우원식 관련, 한덕수 대행에 대해서는 절처적 정당성을 무시하고 탄핵 시켜버렸는데, 이유는 뭘까, 궁금합니다.
역시 김변! 귀(아니 눈인가?)에 쏙쏙 들어오는 설명 감사합니다!
윤석렬의 입장과 전략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