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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 칼럼] 진영은 달라도 비슷한 행태의 평행이론
  • 박주현 기자
  • 등록 2025-03-28 15: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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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운명은 때론 놀이동산의 거울의 방처럼 반복된다. 좌우를 가르는 이념의 강은 표류하는 자들의 모습을 비추지만, 그 물속에 비친 그림자는 놀랍도록 닮아있다. 이명박과 이재명—한 명은 강남 개발의 콘크리트를 밟았고, 다른 한 명은 성남시 옹벽 위에 섰다. 그러나 두 사람의 발자국은 법원 문턱에서 교차한다.  



제1막: 미디어 신화와 권력의 알리바이
2004~5년, 이명박은 ‘영웅시대’라는 드라마로 ‘능력주의 신화’를 각인시켰다. 현대건설의 전설적 경영자가 청계천 복원의 ‘국가적 리더’로 재탄생하는 서사는 대중을 사로잡았다. 반면 2018년 이재명은 ‘동상이몽’이라는 리얼리티 쇼에서 ‘현장형 정치인’의 이미지를 연출했다. 시장실의 단칸방과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일 잘하는 관료’의 스토리를 입체화했다.  
이들은 미디어를 통해 ‘비정치적 정치인’이라는 패러독스를 완성했다. 카메라 앞에선 겸손한 문제 해결사로, 현실 정치에선 ‘불도저 리더십’을 내세웠다. 이렇게 진영의 논리와 미디어로 각인된 지지자들은 놀라울만큼 비슷한 주장을 한다. 둘다 전과와 범죄논란에 휩싸였지만 지지자들은 이 모순을 알고도 묵인했다. '더러운 줄 알지만 일은 잘하잖아' 라는 합리화는, 능력주의 신화가 도덕적 결함을 상쇄할 수 있다는 집단적 망상을 드러냈다. 
또한 회자되는 공통점은 많은 부를 가지고 있음에도 투철한 절약정신으로도 유명하다.
이명박은 "그게 니돈이야?"라는 말과 함께 같이 일하는 직원의 음식값마저 아끼는 모습으로 '꼼꼼한 가카새끼'라는 조롱을 받았다. 
반면 이재명은 자신의 샴푸와 심지어 조상의 제수용품까지 경기도 법인카드로 해결했다. 얼핏 비슷해보이는 행동이라도 후자는 엄연히 범법행위인데 그의 경우 온라인상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지 못했다. 심지어 이명박은 그저 자신의 지출을 아낀 것만으로 조롱당한 것은 보수 진영의 온라인 동원력 부족, 혹은 진보 진영의 관대함 때문일까?


제2막: 사법의 카멜레온 연극
이명박의 BBK 주가 조작 의혹은 한국 사법사에 ‘주어 없음' 수사라는 신조어를 남겼다. 2007년, 검찰은 BBK 동영상에서 “BBK 실소유주”라는 명백한 증거를 두고도 “문장에 주어가 없다”는 나경원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당시 수사관이 명동 한 설렁탕집에서 이명박을 만난 장면은, 권력의 그림자가 법의 프리즘을 왜곡하는 순간을 상징적으로 포착했다. 수사는 라면 끓이는 시간만큼이나 가볍게 마무리됐다.  
이재명의 재판은 더욱 정밀한 언어 해체 게임이었다. ‘위증교사’ 혐의는 입자 물리학의 양자 분리처럼 둘로 쪼개졌다. 위증으로 500만원의 벌금에 처한 김진성이 무색하게, 교사는 ‘의도 불명’의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다고 해주면 되지”라는 녹취록은 재판장을 떠도는 유령이 되었다, 선거법 위반의 2심을 맡은 판사들도 비슷했다. 어느새 국어 시간의 문법 교사로 변신해 “마치 제가 골프를 친 것처럼”이라는 말을 골프를 안쳤다는 말이 아니라는 재해석을 했다. 이 기막힌 언어 유희는, 일반국민에 엄격하기만 사법의 잣대가 권력앞에서는 꼬리를 흔드는 반려견으로 변신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제3막: 업적의 아이러니
둘 사이의 평행이론이 유일하게 갈리는 부분이 바로 이 업적의 부분이다.
이명박의 청계천 복원과 버스 중앙차로제는 2000년대 초반 진보 진영의 맹공을 받았다. “역사 파괴” “교통 대란”이라는 비난은 거센 폭풍이었으나, 20년 후 이 명칭들은 서울시 홍보물에 ‘도시 혁신’의 상징으로 등재됐다. 
반면 이재명의 업적이란건 모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리는 중이다. 원작자 논란에 휩싸였던 계곡 정비 사업은 ‘도로아미 타불’이 되버렸고, 자신이 직접 설계한 단군이래 최대 업적이라던 대장동은 어느새 윤석열이 몸통이 되었다가 지금은 자신은 잘 모르는 사업이라는 옹색한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자신의 전과를 비호하기 위해 소환되던 성남 의료원의 실상은 연간 650억의 적자로, 경기도 지역화폐는 앞으로 10년동안 무려 1조 5천억의 부채를 경기도에 남겼다.  
성공과 실패의 역설은 정치적 시간의 유한성을 증명한다. 이명박의 업적이 ‘역사의 승인’을 받은 것은 그가 권력의 청사진에서 물러난 뒤였다. 이재명의 경우 업적은 사라지고 재판만 남아 그의 목을 겨누는 칼날이 되고 있다.  


제4막: 법정 드라마의 속구조—시스템은 배우를 배출한다
한국 사법 시스템은 권력에 따라 색온도를 조절하는 특수 필터를 장착한 듯하다. 이명박 시대엔 검찰이 ‘의혹 블러 처리’ 기술로 BBK를 흐렸고, 이재명 시대엔 법원이 ‘언어 해체’라는 신개념 변호를 창조했다. “**김문기를 몰랐다**”는 말이 20회 이상 재생되며 의미를 잃어가는 과정은,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법정에 현현한 순간이었다.  
두 사례는 시대별로 주연 배우가 바뀐 리메이크 영화 같다. 2000년대는 검찰이, 2020년대는 법원이 ‘권력 편향’의 의혹을 씹었다. 관객은 박수를 치며 “역시 뻔한 결말”을 중얼거렸다. 법정 막간의 이 합의된 연기는, 시스템이 생산한 필연임을 모두가 알면서도 모른 체한다. 
 
피날레: 관객의 각성—무대 뒤로 가는 길
이명박과 이재명의 평행선은 대한민국 정치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보여준다. 청계천 물길과 대장동 공사장, 4대강과 옹벽 아파트—이 모든 것들은 권력의 유전자가 발현된 풍경이다.  
역사의 냉소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선택한 영웅은 다음 악당이 될 뿐”이라고. 이 드라마의 진정한 희생양은 사법 시스템이 아니라, 매번 새로운 배우를 열광적으로 환영하다가 배신감에 휩싸이는 관객 자신이다. 법정 막이 내릴 때마다 우리는 작은 양심을 희생시키며 시스템의 부패를 승인해왔다.  
다음 주인공이 무대에 오를 때, 우리가 선택할 것은 단순한 지지나 비난이 아니다. 카메라 앵글을 뒤로 시선을 돌려 무대 뒤의 전선과 조명 장치를 응시하는 일—그것이 이 반복극을 멈추는 유일한 해법이다. 법정 드라마의 진정한 클라이맥스는 재판 결과가 아니라, 관객이 무대의 조작을 간파하는 순간에 올 것이다.


전설의 짤... 'MB가 다 해주실거야" (사진=박주현 페이스북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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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6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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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ZLAND2025-03-30 18:32:50

    https://www.m-i.kr/news/articleView.html?idxno=1177643 경기도 지역화폐 1조 5천억 부채가 싸구려 선동이라... 본인이야 말로 선동 안당하려면 최소한 모르고 의문이 생기면 뉴스검색이라도 좀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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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3-30 03:21:26

    경기도 지역화폐는 앞으로 10년동안 무려 1조 5천억의 부채를 경기도에 남겼다.
    앞으로의 일을 예상이 아닌 남겼다로 끝맷는거 보니 싸구려 선동 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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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3-28 23:27:20

    권선징악을 기대하는 내가
    순진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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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3-28 20:20:31

    유능하고 도덕성 있는 정치인들이 라이벌이 되는 정치판이 되어야 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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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yooj2025-03-28 19:05:07

    강남개발파 vs 옹벽 본질은 같다
    기사내용과 사진이 한편의 작품같아요
    감사합니다 일련의 사태 멘탈회복에 큰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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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3-28 18:17:23

    글 잘 보고 있어요. 논점이 분명하고 근거를 들어 조목조목 설명해주니 이해가 잘 되네요. 이 글들이 널리널리 퍼져서 마노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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