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가도 지고, 안 가도 지는 나토 딜레마
  • 박주현 칼럼니스트
  • 등록 2025-06-20 16:31:13
  • 수정 2025-08-05 04:19:18

  • "10일째 '검토 중', 시간은 없고 답은 더 없다"

<그래픽 : 박주현>


진퇴양난의 미학


6월 20일 오후까지도 청와대 관계자는 여전히 나토회의 참석에 대해선 묵묵부답이다. 나토 정상회의 참석 여부를 두고 벌써 열흘째 같은 "검토중"이다. 24일이면 정말 코앞아닌가? 이상하다. 평소라면 진작 결정이 났을 텐데.


사실 답은 뻔하다. 트럼프와의 양자회담이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축소된 회의 일정 속에서 대통령 간 만남을 잡지 못했을 것이다. 참석하면 왕따가 되고, 불참하면 더 큰 손해다. 외교의 룰렛이 모두 빨간색을 가리키고 있다.


미국은 이미 우리를 '친중 국가' 목록에 올려놓았다. 증거는 차고 넘친다. 반도체 동맹에서의 미적지근한 태도, 중국과의 무역 확대, 그리고 무엇보다 이재명의 '셰셰' 발언이다. 중국어로 감사하다고 인사한 그 순간, 워싱턴의 한국 데스크는 집에서 소주를 마셨을 지 모른다.


김민석 총리 후보자의 이력서를 보라. 칭화대학교 출신에 하버드 케네디스쿨까지. 완벽한 중미 교차점에 서 있는 인물이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중 스파이' 같은 느낌일 것이다. 누구 편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을 총리로 앉혀놓고, 나토 회의는 빠지겠다? 이것은 외교가 아니라 코미디다.


계산기를 두드려보자. 이번 회의까지 트럼프와의 양자회담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모양새도 심히 빠지지만, 이건 정말 국민들 사이에 미국이 보내는 일종의 '경고'로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다. 다행히 양자회담이 성사된다해도 냉랭한 분위기에서 인사정도로 끝나면 다행이겠지만, 자칫하면 트럼프에게 공개적인 약속을 해야 한다. 중국과의 거리두기, 방위비 분담 재협상, 우크라이다 무기지원에 아마도 사드 추가 배치까지. 그렇다고 대놓고 불참하면 '무정부 취급' 당할 각오를 해야한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구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둘 다 손해인데, 어느 쪽이 덜 손해인지 계산하는 것도 우울하다.


하지만 결론은 당연한 이야기다. 이럴 때일수록 가야 한다. 안 가면 정말 대놓고 찍힌다. 관세로 신음하는 중소기업을 생각하면 피할 수 없는 무대다. 하지만 간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다. 트럼프를 못 만나도 망신이지만, 만난다해도 공개 석상에서 한국의 입장을 압박할 것이다. 마이크 앞에서 "중국과 거리를 두겠다"고 말해야 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상상하면 위가 아프다.


정치는 타이밍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좋은 타이밍이 없다. 가도 지고, 안 가도 진다. 그래서 계속 "검토 중"이라고 하는 것이다. 시간을 끌면서 기적을 기다리고 있다. 스크래치 복권을 긁는 심정이다.


기적은 오지 않는다. 외교에서 미루기는 답이 아니다. 차라리 가서 당당하게 우리 입장을 말하는 게 낫다. 


어차피 친중 낙인은 이미 찍혔다. 이제는 그 낙인을 어떻게 써먹을 것인가의 문제다. 손해를 보더라도 멋있게 보자.


6월 20일 밤, 대통령실 불빛이 유독 밝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지금도 회의 중일 것이다. "검토 중"이라는 단어 대신 다른 답을 찾기 위해서. 하지만 정답은 없다. 덜 나쁜 선택만 있을 뿐이다.


TAG

프로필이미지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6-22 11:41:20

    G7에서의 홀대가 엄청났던게 맞나봐요. 대통되서 저런데 가서 광파는게 꿈이었을 색히가 가고싶어하지 않다니... 이제야 지색히의 글로벌입지가 어떤지 깨달을라나요? 이 나라의 불행중 불행입니다 ㅠㅠ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alsquf242025-06-20 20:59:25

    에구~ 외교가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쉽지 않을 줄은 알았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무게를 아는지 모르는지.
    진퇴양난 상황에까지 오게 됐다니, 답답하군요.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분석] 론스타 4천억 승소 역겨운 광팔이 민주당... 3년 전에는? 2025년 11월 19일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태도가 13년을 끌어온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승소 국면에서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다. 3년 전, 법무부가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할 당시 "이길 확률이 전무하다"며 결사반대했던 정치 세력이, 막상 '전부 승소'라는 극적인 결과가 나오자 정.
  2. 썩어가는 것과 익어가는 것의 차이 가을 숲을 걷다 보면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 사이로 오묘한 냄새가 난다. 개중에는 잘 마르고 발효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그윽한 향기가 있는가 하면, 물기를 머금은 채 질척하게 썩어가는 쿰쿰한 악취도 있다. 인간의 나이 듦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간이 인간이라는 그릇에 담길 때는 전혀 다른 화학 작용을 일.
  3. 민주당 '유동규 녹취록 속 대통령은 '윤석열'? 백광현 되치기 기자회견 17일 오전 백광현 씨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유동규와 남욱의 녹취록을 추가로 공개했다. 해당 녹취록에는 '이재명' 이름이 언급되어 있어 후폭풍이 예고된다.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 12일 진행한 기자회견의 후속편으로,  (2023년 봄 녹음)된 것으로, 대장동 사건을 두고 두 피고인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담겼다. 이 녹취록에서 ...
  4. 민주당을 향한 외통수 "대장동 환수법" 국가가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의 범죄 수익 환수를 공식적으로 포기한 상황에서 논란의 항소포기를 중심에서 처리한 박철우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했다. 박철우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힌 인사는 이 사태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것은 실패에 대한 문책이 아니라, 성공적인 임무 완수에 대한 포상에 가깝다. 검찰 조직을...
  5. 대통령의 '무지(無知)'가 국가 안보의 최대 위협이다 국가 지도자의 말은 그 자체로 전략이자 메시지다. 적대국과 총구를 맞대고 있는 분단국가의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내뱉는 안보 관련 발언은 천금의 무게를 지녀야 한다. 그러나 지난 24일 해외 기자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보여준 인식은 가벼움을 넘어 참담한 수준이었다. 그는 50년간 대북 심리전의 핵심이었던 대북 방송을 "바보짓...
  6.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대장동 항소 포기와 사법 시스템 붕괴 비판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전 국무총리)이 19일 유튜브 채널 '류병수의 강펀치'에 출연해 검찰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항소 포기를 "국가가 나서서 범죄자를 도와준 국가 주도 범죄"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
  7. 탱크만 없는 계엄령, 그 거대한 수용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민들에게 "또 계엄하는 거 아닌가 걱정되실 텐데,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좌중에서는 웃음이 터졌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그 한가한 농담은,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
  8. YTN의 ‘자발적 복종’ 더불어민주당이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라는 좌표를 찍자, YTN은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풍자 영상을 다룬 보도를 삭제하고 한 발더 나아가 ‘정치인 SNS 영상 사용 금지’라는 사실상의 백기를 들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그리고 질서 정연하게 일어났다.'국기문란(國基紊亂)'. 유신 시대의 낡은 ...
  9. 프랑켄코리아 (Franken-Korea) 정치라는 무대 위에는 때때로 기이한 혼종(混種)이 등장한다.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아니라, 이미 사라졌다고 믿었던 과거의 망령들을 덕지덕지 기워 붙여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것.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정권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들은 놀라울 만큼 창의성 없는 방식으로, 역대 정권들이 저질렀던 최악의 실수와 가장 추악했던 .
  10. 국민연금 손대려는 정권, 그래놓고 청년더러 "속았다" 하는가 아침 출근길 지하철 풍경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붐비는 객차 안,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 화면에 몰입해 고개를 끄덕이는 4050 중년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들의 작은 화면 속에서는 어김없이 '그'가 등장한다. 더부룩한 수염에 특유의 건들거리는 말투, 김어준 씨다.그 화면 속에서 김어준 씨와 패널들은 혀를 차며 말...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