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 지난 6월 해상사격훈련 (연합뉴스)
보통 무능한 조직은 게으르다. 아무것도 안 해서 망한다. 그런데 2025년의 대한민국 정부는 기이하다. 무능한데 부지런하다. 그것도 나라의 안전핀을 뽑아내는 일에만 유독 성실하다. 이번에는 휴전선 철책이다.
최근 국방부 고위 관계자가 합참 지휘통제실을 찾아갔다고 한다. 전시도 아닌데 상급 부처 인사가 작전 통제실까지 내려간 것부터가 이례적이다. 가서 한 말은 귀를 의심할만 하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와도 “기계적으로 경고사격 하지 말고 상황을 면밀히 평가하라”는 것이다. 장관도 거들었다. “기계적으로 대응하지 마라.”
군대에서 ‘기계적 대응’이란 욕이 아니라 찬사다. 적이 도발하면 생각할 틈 없이 조건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기도록 훈련받는 게 군인이다. 기계적 대응이 존재 이유인 군에게 코앞에 적이 나타났는데 “저들이 실수로 넘은 건지, 의도가 있는 건지, 쏘면 남북 관계가 어찌 될지” 철학적 고민을 하라는 소리다.
이 지시의 본질은 ‘책임 전가’다. 만약 병사가 매뉴얼대로 쐈다가 북한이 반발하면 “왜 상황 파악도 없이 쐈냐”고 징계할 것이고, 안 쏘고 있다가 뚫리면 “왜 경계에 실패했냐”고 징계할 것이다. 결국 일선 지휘관들은 “최대한 쏘지 말고 말로 타일러 보내라”는 소극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총 든 군인을 ‘주차 관리 요원’으로 만든 셈이다.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하고 수시로 선을 넘으며 간을 보고 있다. 상대는 칼을 갈고 덤비는데, 우리는 스스로 방패를 내려놓고 “상황 좀 보자”며 뒷짐을 진다. 안보를 걱정해서가 아니다. 그저 북한 심기를 건드려 그들이 공들인 ‘평화 쇼’에 금이 갈까 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차라리 게을러서 신경을 안 썼으면 기존 매뉴얼대로라도 돌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너무나 부지런해서, 굳이 합참 벙커까지 찾아가 “쏘지 마라”고 잔소리를 한다. 잘못된 신념을 가진 자가 성실하기까지 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군인은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다. 판단은 정치인이 책임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정치적 판단의 책임을 최전방 소초장에게 떠넘기고 있다. ‘성실한 자해(自害)’가 나라를 어떻게 만드는지, 우리는 지금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
음원서비스에서 낙원전파사를 만나보세요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가슴이 너무 답답하네요
우리나라 국민들은 이제 각자도생해야함
자국민 보호는 안중에도 없군요
휴전선 불쌍한 군인들 철수 시키고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이나 주르륵 세워놓으면 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