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토위 출석한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 (연합뉴스)
직장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어떤 분야든 고수(高手)는 질문의 수준만 봐도 상대의 내공을 단번에 간파한다. 진짜 전문가는 정답을 묻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핵심을 찌른다. 반면, 하수는 곁가지나 지엽적인 절차에 집착한다. 질문의 질(質)이 곧 그 사람의 그릇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인천공항 사장의 공방전, 자칭 넷플릭스보다 재미있다는 민망한 자화자찬을 보며, 나는 그 자리에 있던 항공 전문가들의 속마음을 상상해 보았다. 대통령은 물었다. “보안 검색 책임이 공사냐 관세청이냐.”
만약 당신이 평생을 공항 운영과 항공 전략에 바친 전문가라면, 이 질문을 듣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들까. 겉으로는 대통령의 위세에 눌려 고개를 주억거렸겠지만, 속으로는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지금 인천공항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공포는 그런 게 아니다. 중국의 베이징·상하이 공항이 국운을 걸고 덤벼들고, 일본의 하네다·나리타가 무섭게 부활하고 있다. 동북아 허브 공항이라는 인천의 지위가 뿌리째 흔들린다. 저가항공(LCC)이 늘어나며 환승 장사도 예전 같지 않다.
그들은 이런 거대한 생존 전략을 묻고 싶었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협공 속에서 인천공항의 자구책과 국가 차원의 지원 전략은 무엇인가.” 그런데 돌아온 건 보안팀 조장급 회의에서나 나올 법한 “가방 검사 누가 하냐”는 타령이었다. 전략 회의를 소집해놓고 화장실 청소 상태만 지적하고 간 꼴이다. 그 허탈함과 민망함은 온전히 실무자들의 몫이다.
동북아역사재단도 마찬가지다. 그곳의 설립배경은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응이다. 그 앞에서 대통령은 “환빠 몰라요?”라고 했다.
천문학자에게 “점성술 몰라요?”고 묻는 것과 같다. 학자들은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행정은 상명하복”이라며 눈을 부라리니, 속으로만 삼켰을 것이다. “이게 대한민국 대통령의 역사 인식 수준이구나.”
이 재단의 진짜 문제는 ‘낙하산 인사’였다. 정권 바뀔 때마다 전문성 없는 폴리페서들이 이사장 자리를 꿰차고 진영 싸움만 했다. 대통령이 정말 개혁하고 싶었다면 “내 사람 안 심을 테니, 실력 있는 학자 뽑아서 동북공정 박살 내라”고 지시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환단고기 타령으로 본질을 희석시키고, 본인의 얕은 잡학 상식만 과시했다.
예컨데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아젠다는 “어떻게 굶주림을 해결할 것인가”였다. 그 절박한 질문이 통일벼를 만들었다. 그런데 2025년 이재명 대통령은 쌀독이 비어가는 위기 앞에서 “간장 어디꺼 서요?”라고 주방장을 족친다. 본질에 대한 고민은 없고, 지엽말단만 가지고 호통을 친다.
지금 창밖을 보라. 환율 1500원 시대가 코앞이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다. 국가 경제의 펀더멘털이 흔들리지만 지지자들은 대통령이 관료들을 혼내는 모습에 ‘사이다’라며 환호한다. 그 모습을 보며 당황스럽고 절망한다. 리더가 엉뚱한 질문을 던지면, 조직 전체가 엉뚱한 답을 찾느라 마비되기 때문이다. 지금 인천공항은 허브 전략 대신 보안 매뉴얼을 고민 할테고, 역사재단은 중국 대응 논리 대신 환단고기를 들고 망연자실 할 것이다. 국가적 낭비다.
질문이 빈곤하면 답도 빈곤해진다. 대통령의 질문 수준이 그 나라 국정의 높이(高)다. 전문가들을 병풍처럼 세워두고 1차원적인 질문만 쏟아내는 대통령. 그 앞에서 침묵하는 관료들의 표정이 존경일까?
솔직한 감상평을 말하자면, 넷플릭스는 커녕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체념, 처참한 수준에 대한 냉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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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