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주운 돈을 그냥 쓰는 방법
타고난 관찰력 탓일까. 아니면 해설위원으로 일하면서 생긴 능력일까. 링과 옥타곤 구석에서 벌어지는 선수의 미세한 근육 떨림을 놓치지 않으려 눈을 부릅뜨던 버릇이 아스팔트 위에서도 작동하는 모양이다. 내 시야에는 유독 주인 잃은 사물들이 자주 걸려든다. 그중에서도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단연 지갑이다. 타인의 지갑을 줍는 일은, 타인의 가장 내밀한 세계를 잠시 훔쳐보는 일과 같다. 가죽의 마모된 정도, 엉켜 있는 영수증, 신분증 속 증명사진의 표정. 그 작은 직사각형의 물건 속에는 한 인간의 서사가 압축되어 있다.
언젠가 택시에서 내리던 길이었다. 뒷좌석 시트 구석에 검은 물체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다. 낡은 반지갑이었다. 묵직함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깃털처럼 가벼운 부피감.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건 가난의 무게다.

내용물을 확인하려 지갑을 열었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청년의 신분증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앳된 얼굴에는 사회 초년생 특유의 긴장과 설렘이 묘하게 섞여 있었다. 현찰은 없고, 그곳에는 꼬깃꼬깃한 영수증들만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CU 편의점 도시락, 메가 커피, 다이소 영수증들. 그 목록들 사이에서 작은 메모지 한 장이 툭 떨어졌다.
"자기야 힘내. 우리 열심히 살자. 사랑해.“
여자친구의 필체일 것이다. 순간, 코끝이 시큰해졌다. 링 위에서 박스원 태건 코치의 펀치를 허용했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타격감이었다. 누군가 빼간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비어 있었던 것인지 알 길은 없었지만, 텅 빈 지갑은 마치 배고픈 짐승의 입처럼 벌려져 있었다.
나는 내 지갑을 꺼냈다. 만 원짜리 두 장을 꺼내 그 청년의 지갑 깊숙한 곳에 찔러 넣었다. 지갑을 잃어버리고 당황했을 청년이, 파출소에서 이것을 되찾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치킨에 생맥주라도 한 잔 할 수 있기를, 혹은 여자친구와 햄버거라도 한 입씩 나누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오지랖'이었고, 선배로서 후배에게 건네는 보이지 않는 응원이었다.
파출소에 지갑을 맡기고 돌아서는데 며칠 뒤 연락이 왔다. 주인을 찾았다고 했다. 연락처를 묻는 경찰관의 말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됐습니다."
또 한 번은 신촌에서 술을 마시고 일산 집으로 향하던 밤이었다. 택시에서 내려 비틀거리며 걷는데, 이번에도 길바닥에 지갑이 떨어져 있었다. 이번엔 묵직했다. 열어보니 5만 원권과 1만 원권이 섞여 60만 원이 넘는 돈이 들어 있었다. 꽤 큰돈이었다.
신분증을 확인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주름이 깊게 패인 할머니였다. 사진 위로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아 있었다. 순간 술이 확 깼다. 누군가에게 60만 원은 하룻밤 술값일 수도 있지만, 이 할머니에게는 한 달 생활비, 혹은 손주들에게 줄 용돈, 아니면 병원비일 수도 있었다. 그 돈이 가진 '가치'의 무게가 내 손바닥을 짓누르는 듯했다.
나는 주저 없이 다시 택시를 잡았다. "기사님, 일산 동부경찰서로 갑시다." 택시비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 지갑을 잃어버리고 발을 동동 구를 할머니의 표정이, 내 어머니의 얼굴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경찰서 접수대에 지갑을 올려놓았다. 며칠 뒤, 역시나 연락이 왔다. 할머니가 고맙다며 사례를 하고 싶어 하신다고 했다. 경찰관이 거들었다. "선생님, 한번 오시죠. 제가 커피라도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나는 웃으며 답했다. "그 말씀이면 충분합니다. 커피는 제가 사 마시겠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라고 왜 돈 욕심이 없겠는가. 길에서 주운 돈은 세법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애매한 경계에 있다. '견물생심'이라고, 눈앞의 현찰을 보고 침이 고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주운 돈을 쓰는 순간, 그 돈에 묻어 있는 타인의 절망과 한숨까지 내가 삼켜야 한다는 것을. 링 위에서 흘린 땀의 대가로 받는 파이트머니와 달리, 길에서 주운 돈은 불길한 인과율을 품고 있다. 당장 넷플릭스에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라. 규모는 다르지만 ‘남의 돈’에 손을 대어서 좋을 일은 0에 수렴한다.
그렇다면 내가 길에서 주운 돈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인 마이 포켓' 할 수 있는 조건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아주 구체적이고 낭만적인 가정을 해본다.
우선, 장소는 매우 한적한 시골 국도여야 한다. CCTV도 없고, 오가는 차량도 드문 곳. 시간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늦은 오후, 세상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시간이 적당하다.
나는 내 애마인 바이크를 타고 달리는 중이다. 헬멧 속 블루투스 스피커에서는 미소라 히바리의 '흐르는 강물처럼(川の流れのように)'이 흘러나오고 있어야 한다. 그녀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가 "아~ 아~" 하며 클라이맥스로 치달을 때, 헬멧의 턱 끈이 헐거워짐을 느끼고 갓길에 바이크를 세운다.
엔진의 열기가 식어가는 동안, 나는 장갑을 벗고 턱 끈을 다시 조인다. 바로 그때, 시선이 머무는 곳에 꼬깃꼬깃한 1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떡하니 떨어져 있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신분증도, 명함도, 그 어떤 증빙도 없는, 완벽하게 고립된 지폐 한 장. 옳거니 바로 이거다.
금액은 딱 1만 원에서 500원 사이여야 한다. 5만 원은 너무 무겁고, 100원은 너무 가볍다. 1만 원이라면, 누군가 흘렸더라도 "에이, 액땜했다 치자" 하며 쿨하게 털어버릴 수 있는 상한선이다.
그런 완벽한 조건이 갖춰진다면, 나는 주저 없이 그 돈을 주워 주머니에 찔러 넣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시동을 걸고, 가장 가까운 스타벅스로 향할 것이다. 그 공돈으로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과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해 창가에 앉으리라. 창밖으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 가사처럼 인생도 저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라며, 1만 원짜리 횡재가 주는 소소한 행복을 음미할 것이다.
자 그러니 이 포스팅을 읽은 여러분들께서는 서울에서 강원도로 가는 국도 주변에서 적극적으로 500원에서 1만원 사이의 돈을 분실해주시기 바란다.
김남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