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박주현 '우리의 전략적 장점을 입으로 다 주워삼킨 대통령'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口禍之門)이라 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셰셰’ 한마디는, 그 낡은 경구가 21세기 국제 외교의 한복판에서 얼마나 서늘한 진실인지를 4,500억 달러짜리 청구서로 증명하고 있다. 말은 입을 떠나는 순간 생명력을 얻고, 발화자의 의도를 훌쩍 뛰어넘어 거대한 현실을 빚어낸다.
협상 테이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손에 쥔 패다. 우리의 패는 대륙과 해양이 충돌하는 지정학적 단층, 바로 그 자체였다. 미중이라는 두 거인이 맞서는 최전선이라는 사실,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쥔 유일무이한 에이스 카드였다. 미국에게 한국은 단순한 동맹을 넘어, 태평양 전략의 포기할 수 없는 ‘항공모함’이다. 우리는 이 지리적 운명을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활용할 기회를 손에 쥐고 있었다.
트럼프와 같은 노련한 장사꾼 앞에서, 우리가 했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인식시키는 것이었다. 굳이 말로 할 필요도 없었다. 굳건한 한미동맹의 행동, 대중국 의존도를 줄이려는 의지만 보여줬어도 미국의 계산기는 빠르게 돌아갔을 것이다. 낡은 FTA를 수정해 얻는 푼돈과, 돈으로 살 수 없는 태평양 전초기지의 안정. 그 저울질의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그 모든 판을 스스로 엎었다. "셰셰(謝謝)"라는 말로. 대만을 향해 위협비행을 하는 중국의 군용기를 보면서도, 홍콩의 자유가 질식하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그는 굳이 중국어로 감사를 표했다. 과거, 우리가 대중국 무역에서 막대한 흑자를 기록하던 시절이라면 또 모르겠다. 그때는 '경제'라는 이름의, 구차하더라도 최소한의 핑곗거리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대중 무역수지는 적자로 돌아선 지 오래고, 그 적자 폭은 날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경제적으로도, 군사안보적으로도 우리는 더 이상 중국의 눈치를 볼 실리도, 명분도 완벽히 상실한 것이다.
그런 최악의 타이밍에 나온 '셰셰' 발언은, 그가 말하는 '실용 외교'가 아니라 현실을 외면한 '망상 외교'에 가깝다. 그 발언은 미국에게 이렇게 들렸을 것이다. "우리의 심장은 베이징을 향해 있소." 신뢰가 증발한 자리에 남는 것은 냉혹한 계산뿐이다. 미국은 더 이상 우리를 '파트너'로 대접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저 길들이고 관리해야 할 '변수'로 취급했을 뿐이다.
결과는 참담하다. 4,500억 달러. 대통령실은 이 천문학적 숫자를 앞에 두고 ‘선방했다’는 말을 유령처럼 흘린다. 선방이라니. 그 단어는 패배를 인정할 용기조차 없는 자들의 마지막 자기기만이다. 강도에게 집문서를 넘겨주고 ‘목숨은 건졌으니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노예의 언어와 무엇이 다른가. 국민을 상대로 언어의 마술을 부릴 시간에, 협상장에서 잃어버린 국익의 숫자들이나 다시 세어보라.
물론 누군가는 '전초기지'라는 말 자체에 자존심이 상할지도 모른다. 허나 우리가 스스로 그 전략적 가치를 걷어차고 이미 무릎을 꿇은 이상, 미국은 더 이상 우리에게 그 역할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우리의 세금을 투입하여, 우리 스스로 완벽한 전초기지가 되라는 선택을 압박해올 것이다. 그리고 감히 예언하건대, 거대한 이변이 없는 한 우리는 결국 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4,500억 달러의 청구서는 그 굴욕적인 여정의 입장권일 뿐, 이 모든 비극은 ‘셰셰’라는, 재앙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그 주문(呪文)에서 시작되었다.
이 기사에 13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관료들 중에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관료는 있을까? 언론도 미쳐돌아가네
놀랍네요. 모두들 잘했다 잘한편이다 하고 있는 현실이 걱정됩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국가가 아니라 미중 사이에서 지혜롭게 해쳐 나가는 돌고래 국가가 됐어야 하는데, 동네 이장도 못 할 인간이 대권 쥐었으니 나라 망하는 건 한순간이네.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기사 잘 봤습니다☺️
협상 잘했다는 댓글에 오늘 폭발해서 와... 진짜 15% 얘기만 알고 다른 건 아무것도 모르는데. 열 불나는데 입 꾹 닫는 언론보니 참담함을 넘어 절망스럽다
전 진짜 정알못 경알못이라 이런 문제는 함부로 잘했다 잘못했다 말하지 않는데 이 정부 하는짓을 보면 말을 안할수가 없네요 그런데도 아직도 태평하게 잘했나보다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가질 않네요
더 미친 짓을 안한걸 칭찬해야 하는 걸까요?
오늘 너무 열받아서 회사에 이재명 찍은 과장놈한테 관세협상관련 상세히 얘기해주고 너희가 무책임하게 찍은 저딴 놈이 나라 절단냈다며 이재명 찍은 너희가 다 책임지라고 열을 좀 냈습니다.
도저히 화가 가라앉질 않는군요.
그리고 책방뇐네한테 한 번 물어보고 싶어요.
만족하냐고...
언론들은 또 잘했다고 꽹과리 치겠죠 ㅠ
좋은 글 응원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타결 됐다고 튀어나와 공치사 하는 꼴이라니 한심합니다 ㅡㅡ^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타결 됐다고 튀어나와 공치사 하는 꼴이라니 한심합니다 ㅡㅡ^
이제 중국이 또 뜯어가겠죠?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