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종자씨까지 팔아먹고 밭까지 저당 잡히고 또 빚낸다는 대통령
  • 윤갑희 기자
  • 등록 2025-08-13 14:35:40

이 농부에게 농사를 어찌 맡기랴 - 그래픽 : 가피우스 

[칼럼] 종자까지 털어먹은 농부가 또다시 빚을 내겠다는 적반하장


이재명 대통령이 13일 국가 재정 운용 방향을 논하며 농사 비유를 들고나왔다. "씨를 한 됫박 뿌려서 가을에 한 가마를 수확할 수 있다면 당연히 빌려서라도 씨를 뿌려야 한다"는 것이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다. 미래를 위한 투자를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이 대통령의 주장은 현재 대한민국의 재정 상황과 그간의 지출 내역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궤변에 불과하다.


이 대통령의 비유가 성립하려면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빌려온 씨앗이 생산적인 곳에 뿌려져야 하고, 둘째, 그동안 농부가 종자를 낭비하지 않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 정부가 보여준 행태는 정반대였다. 그들은 농사를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창고에 있던 종자마저 곶감 빼먹듯 탕진했고, 이제 와서 또 빚을 내자고 한다. 이는 투자가 아니라 만성적인 '추경 중독'의 재발이다.


이미 뿌린 '열 번'의 씨앗 - 151조 원

이 대통령은 마치 이번이 첫 번째 씨앗을 뿌리는 기회인 양 말하지만, 이 정부의 재정 기조를 계승한 문재인 정부 시절 우리는 숱한 추경을 경험했다. 5년간 무려 10차례, 총 151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됐다. 이는 직전 3개 정부(노무현, 이명박, 박근혜)의 추경 총액(약 90조 원)을 합친 것의 1.7배에 달하는 수치다.

임기 내내 매년 평균 두 번씩 빚을 낸 것이다. 특히 2020년에는 한 해에만 4차례의 추경이 있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재정의 역할은 분명 필요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가이다. 과연 그 151조 원은 가을에 몇 가마의 수확으로 돌아왔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수확 대신 증발해버린 26조 원

이 대통령이 말하는 '씨앗'의 실체는 결국 전국민 소비쿠폰이나 재난지원금과 같은 현금성 지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거 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혹은 여론이 악화될 때마다 어김없이 '전국민' 카드를 꺼내 들었고, 이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이를 강력히 주창해왔다.


2020년 5월 1차 전국민 재난지원금에 14조 3천억 원이 투입됐다. 2021년에는 이른바 '상생국민지원금'(전국민의 88% 지급)과 소비지원금(카드 캐시백 등) 명목으로 약 11조 7천억 원가량이 더 쓰였다. 이 두 차례의 대표적인 현금 살포에만 최소 26조 원의 혈세가 투입된 것이다.


이 26조 원이 바로 농부가 미래를 위해 남겨뒀어야 할 종자였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R&D 투자나 산업구조 개혁이 아닌, 당장의 소비 진작이라는 명분으로 길바닥에 뿌려버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 따르면, 1차 재난지원금의 소비 증대 효과는 투입 예산 대비 약 26~36%에 불과했다. 한국은행 등 주요 기관들은 단순 현금 이전지출의 재정 승수 효과가 0.2~0.3 수준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100원을 뿌리면 겨우 20~30원의 경제 효과만 남고 나머지는 증발하거나 기존 소비를 대체하는 데 그쳤다는 의미다. 이는 씨앗을 뿌려 수확을 거둔 것이 아니라, 씨앗을 쪄서 잔치를 벌인 꼴이다.


밭을 묵히는 것이 아니라 밭문서를 저당 잡히는 것

이러한 무분별한 재정 확장과 현금 살포의 결과는 참담하다. 2017년 660조 원 수준이던 국가채무는 5년 만에 400조 원 이상 폭증하며 1000조 원을 돌파했고, 현재도 급증하고 있다.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재정 건전성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40% 선이 무너진 지 오래고, 이미 50%를 넘어섰다.


이 대통령은 "봄에 뿌릴 씨앗이 없어 밭을 묵힐 생각을 하니 답답하다"고 토로하며, 재정 건전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향해 "왜 빌려오느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타박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밭을 묵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종자까지 탕진한 농부가 또다시 빚을 내기 위해 밭문서까지 저당 잡히려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미래 세대에게 풍성한 수확이 아닌,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를 물려주는 행위이다.


정말로 국가 경제를 살리고 싶다면, 빚을 내서 소비쿠폰을 뿌릴 생각을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뼈를 깎는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고, 그 돈을 미래 성장 동력에 투자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 대통령 스스로도 간담회 말미에 지출 구조조정을 당부했다고 한다. 추경을 요구하며 재정 절약을 말하는 이 모순적 태도야말로 현 정부의 재정 인식이 얼마나 안이한지를 보여주는 방증이다. 


더 이상 국민을 현혹하는 농사 비유는 그만두어야 한다. 숫자에 기반한 합리로 논해야 할 추경을 '그 당' 지지자들에게 친숙한 '정서'로 현혹시키는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농사 비유를 사용한 것은 '비유의 편의성'에 중독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관련기사

프로필이미지

윤갑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이 기사에 1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4 13:54:36

    이젠 겁이 날 지경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rain7772025-08-14 10:28:52

    공감가는 뉴스 감사합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4 09:26:13

    좋은기사 항상 잘보고있습니다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won6er2025-08-14 01:01:08

    이재명 보고 있으면 정부 초기가 아니라 말기 같습니다 마치 임기 끝나기 전에 얼른 털어가야 한다는 듯이 급해요. 갚을게 없으면 혼자 이리 초조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죠. 이재명 밪때문애 너라가 거덜나게 생겼습니다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3 18:57:24

    성남시와 경기도 곳간을 털어먹던 기술로 나라의 곳간을 털어먹을 생각만 하는구나.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ddongong2025-08-13 17:30:27

    빚내서 효과도 없는 돈 풀기를 했으니..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3 16:02:07

    그러하군요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3 15:45:55

    추경해서 광복절 빚 축제를 매달 열게. 임명식을 ㅘㅇ복절에만 할 수 있나. 제헌절에도 하고 개천절에도 하고. 대통령실 두 베로 늘리고 니가 뿌린 어음 결제도 해야지. 미국 가서 어떻게 트럼프랑 사진 한 방 찍으려면 돈 뿌려야지. 찍으면 성공적 외교로 잔치하고. 냐년 지방 선거를 위해 돈 좀 가지고 있어야지 아이고 그 정도 추경으로 되겠냐. 내일부터 비트코인으로 기축 통화 만들면 되겠네. 니가 뭔 짓거리를 해도 멍 때리는 개딸만 보고 가.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minte2025-08-13 15:40:11

    도대체 생각이라는게 있는 사람일까요?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3 15:03:54

    비기축통화국 에서 부채비율 50% 오버는 위험 신호등!!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3 15:02:53

    아바이가카~ 허언장담 처럼 기축통화국 먼저 만들어 보시지요 ㅎ

    더보기
    • 삭제
  • 프로필이미지
    guest2025-08-13 14:51:41

    애초에 빚씨를 뿌렸는데, 거둬지는 것은 빚 뿐이죠...

    더보기
    • 삭제
아페리레
웰컴퓨터
많이 본 뉴스더보기
  1. [분석] 론스타 4천억 승소 역겨운 광팔이 민주당... 3년 전에는? 2025년 11월 19일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태도가 13년을 끌어온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승소 국면에서도 여지없이 반복되고 있다. 3년 전, 법무부가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할 당시 "이길 확률이 전무하다"며 결사반대했던 정치 세력이, 막상 '전부 승소'라는 극적인 결과가 나오자 정.
  2. 썩어가는 것과 익어가는 것의 차이 가을 숲을 걷다 보면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 사이로 오묘한 냄새가 난다. 개중에는 잘 마르고 발효되어 흙으로 돌아가는 그윽한 향기가 있는가 하면, 물기를 머금은 채 질척하게 썩어가는 쿰쿰한 악취도 있다. 인간의 나이 듦도 이와 다르지 않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간이 인간이라는 그릇에 담길 때는 전혀 다른 화학 작용을 일.
  3. 대통령의 '무지(無知)'가 국가 안보의 최대 위협이다 국가 지도자의 말은 그 자체로 전략이자 메시지다. 적대국과 총구를 맞대고 있는 분단국가의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내뱉는 안보 관련 발언은 천금의 무게를 지녀야 한다. 그러나 지난 24일 해외 기자 간담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보여준 인식은 가벼움을 넘어 참담한 수준이었다. 그는 50년간 대북 심리전의 핵심이었던 대북 방송을 "바보짓...
  4. 민주당 '유동규 녹취록 속 대통령은 '윤석열'? 백광현 되치기 기자회견 17일 오전 백광현 씨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유동규와 남욱의 녹취록을 추가로 공개했다. 해당 녹취록에는 '이재명' 이름이 언급되어 있어 후폭풍이 예고된다. 이번 기자회견은 지난 12일 진행한 기자회견의 후속편으로,  (2023년 봄 녹음)된 것으로, 대장동 사건을 두고 두 피고인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 담겼다. 이 녹취록에서 ...
  5. 민주당을 향한 외통수 "대장동 환수법" 국가가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의 범죄 수익 환수를 공식적으로 포기한 상황에서 논란의 항소포기를 중심에서 처리한 박철우 검사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했다. 박철우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힌 인사는 이 사태의 본질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것은 실패에 대한 문책이 아니라, 성공적인 임무 완수에 대한 포상에 가깝다. 검찰 조직을...
  6. 탱크만 없는 계엄령, 그 거대한 수용소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교민들에게 "또 계엄하는 거 아닌가 걱정되실 텐데, 그런 일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좌중에서는 웃음이 터졌다고 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이 소식을 접한 국민들은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그 한가한 농담은,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
  7.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 이낙연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가 주도 범죄... 전체주의 망령 어른거려"대장동 항소 포기와 사법 시스템 붕괴 비판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전 국무총리)이 19일 유튜브 채널 '류병수의 강펀치'에 출연해 검찰의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항소 포기를 "국가가 나서서 범죄자를 도와준 국가 주도 범죄"라고 규정하며 강하게 비판...
  8. YTN의 ‘자발적 복종’ 더불어민주당이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중대한 국기문란 행위’라는 좌표를 찍자, YTN은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의 풍자 영상을 다룬 보도를 삭제하고 한 발더 나아가 ‘정치인 SNS 영상 사용 금지’라는 사실상의 백기를 들었다. 모든 일은 순식간에, 그리고 질서 정연하게 일어났다.'국기문란(國基紊亂)'. 유신 시대의 낡은 ...
  9. 프랑켄코리아 (Franken-Korea) 정치라는 무대 위에는 때때로 기이한 혼종(混種)이 등장한다.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아니라, 이미 사라졌다고 믿었던 과거의 망령들을 덕지덕지 기워 붙여 만든 프랑켄슈타인의 괴물 같은 것.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정권의 모습이 그러하다. 이들은 놀라울 만큼 창의성 없는 방식으로, 역대 정권들이 저질렀던 최악의 실수와 가장 추악했던 .
  10. 국민연금 손대려는 정권, 그래놓고 청년더러 "속았다" 하는가 아침 출근길 지하철 풍경을 유심히 본 적이 있는가. 붐비는 객차 안, 이어폰을 꽂고 스마트폰 화면에 몰입해 고개를 끄덕이는 4050 중년들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들의 작은 화면 속에서는 어김없이 '그'가 등장한다. 더부룩한 수염에 특유의 건들거리는 말투, 김어준 씨다.그 화면 속에서 김어준 씨와 패널들은 혀를 차며 말...
후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