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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언어를 조작할 때
  • 김선 논설위원
  • 등록 2025-11-09 22:13:42
  • 수정 2025-11-09 22:37:09

  • 대량해고가 '구조조정' 이 되고 감세가 '세금 완화' 가 되듯
  • 항소'포기'가 항소'자제'가 되는 2025년의 한국 정치
  • 언어가 망가지면 사람들의 의식이 재편된다, 그 끝은 어딜까?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국회 법사위 업무보고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그는 검찰의 대장동 재판 항소포기는 타당하며 본인이 책임지고 결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한나 아렌트는 1967년 발표한 에세이 「진실과 정치(Truth and Politics)」에서 정치인들에게 진실을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냉소하며 이렇게 말했다.


“사실의 진실을 거짓으로 완전히 대체하려는 시도가 지속될 때,
인간이 세계 속에서 방향을 잡는 감각 자체가 파괴된다.”


그가 말한 ‘사실의 진실(factual truth)’은 독재적 권력이 가장 먼저 공격하는 영역이다. 현대사회에서 전체주의는 총칼보다 언어를 통해 먼저 다가온다. 권력은 현실을 직접 바꾸기보다, 사람들이 현실을 어떻게 말할지를 새롭게 규정해주고 사람들의 인식을 재편하려 든다. 


정치는 말과 글의 예술이며 언어는 권력의 가장 정교한 도구다. 정치와 행정, 대기업의 영역에서 ’대량해고’는 ‘구조조정’으로 바뀌고, ‘임금 삭감’은 ‘경영 합리화’로, ‘감시’는 ‘보안 강화’로 바뀐다. 단어 하나가 바뀌면 실체가 달라진다. 강압과 폭력의 감각은 사라지고, 책임의 주체는 흐려진다. 애매모호한 언어가 냉정한 현실을 덮는 순간, 불의는 정책이 되고 고통은 ‘필요한 조치’로 포장된다.


미국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여러 저서에서 일관되게 '언어가 사고의 구조를 형성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언어는 단순히 세상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규정한다”고 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정치 언어라는 것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보다, 언젠가부터 한국 정치에서 아무 때나 지겹게 언급됐던 '프레임' 을 만드는 도구인 것이다. 


1981년 미국으로 가 보자. 배우 출신으로 미디어를 적극 활용했던 레이건 대통령이 오벌 오피스에서, 전국에 방송되는 국정연설을 통해 당당하고 진지한 어조로 ‘tax relief(세금 완화)’라는 말을 한 순간부터, 세금은 공공 서비스를 위한 당연한 기여가 아니라 불필요한 고통이 되었다. 감세 정책은 해방과 구원 그 자체가 됐고 감세를 추친한 레이건은 영웅이 됐다. 재정적자와 빈부격차 증가, 불평등의 심화 같이 무분별한 감세가 불러올 역효과는 간단하게 무시되었다. ‘완화’ 라는 단어 하나가 대중을 현혹시키고 그들의 사고방식을 재편했기 때문이다. 


1981년 7월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자신의 '세금 완화' 정책을 발표하는 레이건 미국 대통령. (사진: 로널드 레이건 도서관)현실의 추악함을 가리고 권력의 운용을 편리하게 하는 이런 식의 완곡어법은 세계 어디에서나 통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전쟁’이라 부르지 않고 ‘특수군사작전’이라 부르고 있다. 그 단어 하나가 침략을 ‘필요한 방어’로 바꾸어 놓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국 국민의 무의미한 죽음을 정당화하고 있다. 푸틴이 '길어야 몇 주 만에 끝날 것' 이라던 ‘군사작전’은 추정 100만 명의 사상자를 내며 3년 8개월째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국 정치에서도 기이한 최신용어가 등장했다. “항소 포기” 가 아니라 “항소 자제” 다. 두 단어의 차이는 단순한 어감의 문제가 아니다. “포기”는 법적 절차의 중단을 뜻하고 부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자제”는 어떤 주체가 기꺼이, 자발적으로 절제한 것처럼 들린다. 자발적인 행동은 편안하고, 긍정적인 동기의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권력의 압박이 개입된 ‘자제’라면 어떨까? 


언어는 민주주의의 거울이다. 권력이 공표하는 슬로건,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이 그 사회의 현주소다. 언어가 왜곡되면 사람들의 판단 또한 흐려진다. 권력이 언어를 점유하면, 시민의 사고는 권력의 손아귀에 갇히게 된다. 아렌트가 말한 것 처럼, 정치인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뻔뻔하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정책의 이름, 법안과 정치슬로건에서 언어가 망가지면 대중은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방향을 잡는 감각을 잃어버리게 된다. 민주주의가 그렇게 속절없이 망가지고, 또 멀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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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11-11 13:14:49

    말 장난에 놀아나는 국민수준이 .. 학벌만 높고 공부는 재대로 안된 모순이 말장나의 핵심을 파악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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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11-10 15:55:34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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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nte2025-11-10 14:19:05

    국민들을 얼마나 우매하게 보면 저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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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dongong2025-11-10 13:50:00

    말장난으로 버티는 정부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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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11-10 10:38:30

    좋은기사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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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11-10 09:51:41

    하… 답답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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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11-10 07:45:46

    이상황이 한숨만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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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11-10 03:30:28

    언어부터 오염시키는 더러운 독재집단.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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