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정권이 독재의 토대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공식이 있다. 사법부 등 독립적인 국가기관을 무력화하여 권력 견제 시스템을 파괴하는 동시에, 경제적 호황의 환상을 연출하여 대중의 불만을 잠재우는 것이다. 현 정권은 이 공식을 따르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대장동 사건’에 대한 검찰의 상고 포기에서 나타나듯 사법 절차에 개입하고, 대법관 증원 등 사법부 구조 자체를 변경하려 시도한다. 동시에, 국민연금을 동원한 인위적 증시 부양으로 ‘코스피 5000’이라는 경제적 성공의 서사를 만들고자 했다.
그래프 : 박주현 차베스 정권의 첫 7개월 증시도 끊임없는 우상향이였다.
이 모델의 원형은 우고 차베스 정권 시절의 베네수엘라다. 차베스는 사법부를 체계적으로 장악하며 독재의 기반을 닦는 한편, 경제적으로는 기이한 호황을 연출했다.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경제 정책 실패에도 불구하고, 카라카스 증시(IBC)는 2006년에만 129% 상승했고, 2012년에는 약 300% 폭등하는 등 명목상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는 화폐가치 붕괴를 피해 자산시장으로 몰려든 자금과 강력한 외환 통제가 만들어낸 착시 현상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이 모델의 복제를 시도하는 것은 구조적 한계로 인해 명백한 실패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환상을 뒷받침할 재원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베네수엘라에게는 ‘석유’라는 막대한 실물 자원이 있었다. 국영 석유 기업이 벌어들이는 외화는 정권이 경제 현실을 왜곡하고 포퓰리즘 정책을 장기간 유지할 수 있게 만든 실질적인 동력이었다. 이는 외부에서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새로운 가치였다. 반면, 한국이 동원할 수 있는 재원은 국민연금뿐이다. 이는 외부 수혈이 아닌, 미래 세대가 써야 할 자산을 현재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소진하는 ‘내부 자산의 이전’에 불과하다.
둘째, 경제 구조의 개방성이라는 결정적 차이가 존재한다. 베네수엘라는 강력한 자본 통제가 가능한 폐쇄적 경제 구조를 통해 자본의 해외 유출을 막고, 국내에서 자산 버블을 강제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대외 의존도가 절대적인 개방형 경제다. 이러한 구조에서 사법 시스템의 훼손과 같은 비합리적인 통치 행위는 가장 민감한 투자 리스크로 작용한다.
시장은 이미 이 리스크에 냉정하게 반응하고 있다. 11월 첫째 주에만 외국인 투자자들은 역대 최대 규모인 7조 2,640억 원을 순매도하며 한국 시장을 이탈했다. 이는 정권의 인위적 부양 의지에 대한 시장의 명백한 불신임 표시다. 외국인 자금 이탈은 원화 가치 하락으로 직결되어, 원·달러 환율은 1,460원 선을 위협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베네수엘라 모델의 복제 시도는 한국의 구조적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혀 실패하고 있다. 실물 자원의 부재와 경제의 개방성이라는 두 가지 핵심 요인 때문에, 사법 시스템을 파괴하는 동시에 경제적 호황을 연출하는 이중적 전략은 불가능하다.
어쩌면 우리는 석유가 없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모른다. 환상을 길게 유지할 연료가 없으니, 마술은 조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 오른손의 현란한 쇼가 관객을 사로잡는 데 실패하자,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의 왼손이 무대 뒤에서 무슨 일을 벌이는지로 향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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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기사 잘 읽었습니다.
자원이 없음을 감사해야 한다니 씁쓸하네요.
공감가는 기사네요. 잘읽었습니다.
개떡 같은 이재명정부의 마술쇼가 조기에 실패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앞으로 어찌될까요..
베네수엘라에서 탈출한 지인이 있어서 남일 같지가 않습니다. 진짜 무서워요.
와 무섭다
사법리스크 큰 범죄자가 정권 잡을 때 어떤 일이 생길 건지 대충 짐작은 했지만 설마 이 정도까지 막 나갈 줄을 상상도 못 했는데 이재명은 그걸 한다
제발 이 기사대로 베네수엘라처럼 망하는 일만은 없기를
불리한 여건이 오히려 약이되네요ㅜ
불리한 여건이 오히려 약이되네요ㅜ
정말 명문입니다
한국은행은 1580원까지 갈 수 있다 경고했는데 독재자의 압력으로 국민연금이 영끌한 기형적 주식 시장
탈출은 지능순?
기사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