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전경 [연합뉴스]
정부가 올해 들어 한국은행으로부터 빌린 자금이 114조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는 재정 건전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과거 정부의 한은 차입을 '재정 파탄'이라고 맹비난했던 현 집권 세력이 스스로 더 많은 빚을 내고 있다는 점에서 '내로남불'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이 한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정부가 한은에서 빌린 누적 대출액은 총 113조9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종전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같은 기간 105조1000억원보다 8.4%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던 2020년 90조5000억원, '세수 펑크' 논란이 거셌던 2023년 100조8000억원 등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정부의 한은 일시 차입은 세입과 세출 간의 시차로 발생하는 일시적인 자금 부족을 메우기 위한 제도다. 이는 개인이 시중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하는 것과 유사하다. 정부가 이른바 '한은 마이너스 통장'을 많이 사용할수록 세금(세입)은 부족한데 쓸 곳(세출)은 많아 재정을 임시방편으로 충당하는 일이 잦다는 의미다. 문제는 단순히 자금을 빌리는 횟수가 잦아지는 것을 넘어, 그 규모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올해 1월 5조7000억원을 시작으로, 3월에는 40조5000억원, 4월에는 23조원 등 매달 대규모 자금을 차입해왔다. 특히 7월 한 달에만 25조3000억원을 빌렸다. 물론 정부는 7월 중에 43조원을 상환하며 7월 말 잔액은 2000억원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언제든 다시 대규모 자금을 빌릴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채 수치상으로만 잔액을 줄여놓았을 뿐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적극적인 재정 확대를 예고한 만큼, 앞으로도 한은 대출 의존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거세다. 박성훈 의원은 "한은 일시 차입을 두고 '재정 파탄'이라던 민주당이 정권을 잡자마자 빚더미 재정을 쌓는 내로남불을 반복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이는 과거 윤석열 정부 시절, 민주당이 정부의 한은 차입을 두고 재정 건전성 악화를 맹공격했던 태도와 상반된 현재의 모습을 꼬집은 것이다. 당시 민주당은 "국가 부도 사태에 버금가는 재정 파탄"이라며 연일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이제는 집권당이 되어 그 누구보다 많은 빚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이재명 대표가 취임 후 "국가 부채가 늘어나도 적극적인 재정 확대는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며 과거와 달라진 태도를 보인 것과도 무관치 않다. 이 같은 이중적 태도는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재정 악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세수 부족과 지출 확대의 동시 발생에 있다. 경기 둔화로 인해 세수가 목표치에 미달하고 있는 반면, 정부는 재정 지출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무디스 면담에서 "과감한 재정 투입으로 생산성 높은 투자 효과를 창출해 성장을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재정 확대가 자칫 미래 세대에 막대한 빚을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비판을 뒤로하고 스스로 '빚더미 재정'을 쌓고 있는 현 정권의 행태는 국민들의 불신을 키우고 있으며,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한국은행 대정부 일시대출금 현황 [박성훈 의원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