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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태칼럼] 나는 문자폭탄이 양념이라는 말을 왜 말리지 못했을까?
  • 전용태
  • 등록 2025-04-27 23:49:04
  • 수정 2025-04-28 08: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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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태'님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게시물을 승인을 받아 게재합니다.

내가 정당에 가입한 이유는 ‘정당’이 아니었다
정당에 처음 가입할 때, 나는 그 정당의 역사나 방향보다
한 사람, 그 정치인의 스토리와 매력에 끌려서 가입했다.
그러다 보니 정당 안에서 나누는 대화는 정책이나 지향이 아니라
“누구는 어떻다”, “누구는 괜찮더라”
사람에 대한 평가, 인물 중심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문화를 ‘팬덤’이라고 부른다면, 그 팬덤의 한복판에 나도 있었다.


나는 한 정치인을 맹목적으로 지지했다
그 정치인을 지지했기에 그에 대한 비판은 나에게 공격처럼 느껴졌다.
비판을 듣지 않았고, 듣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심지어 그 비판을 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땐 몰랐다.
내가 ‘다수’라는 이름으로 행사한 말과 태도가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렇게 1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며, ‘다수의 폭력’은 더 강해지고, 더 공고해졌다.


지금의 정치 문화, 나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금 돌아보면 부끄럽다. 그리고 미안하다.
지금의 ‘문자폭탄’이, 지금의 ‘좌표찍기’가, 그저 다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작에 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무겁다.


망가진 민주당의 정당민주주의에는 모두가 책임이 있다 (그래픽=가피우스)

문제는 지지자만이 아니다. 정치인도 책임이 있다
그런 지지를 받던 정치인들은 “여러분,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라고 왜 그 한마디 못 해 줬을까?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이 끝난 후 내가 지지하던 문재인 후보는 문자폭탄을 “경쟁을 흥미롭게 만드는 양념”이라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땐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정도는 괜찮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묻고 싶다.
“그때 왜 ‘안 됩니다’라고 말해주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그 말 한마디가, 지금의 정치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기회였던 건 아닐까요?”
언론은 경고했고, 당내 비주류도 비판했다. 하지만 다수의 힘 앞에서 그 목소리는 묻혔다.


정치는 점점 더 ‘다른 의견’을 배척하는 구조가 되었다
이젠 문자폭탄은 정치인을 위축시키는 무기가 됐다.
이견은 틀림으로 낙인 찍히고, 지지자들은 좌표를 찍고, 공격을 퍼붓는다.
비판이 아니라 공격, 논쟁이 아니라 퇴출...
이게 지금 한국 정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 문화를 바꾸려면, 책임 있는 정당부터 달라져야 한다
정당은 더 이상 당원가입만 시키는 조직이 되어선 안 된다.
당원이 되면,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배워야 한다.
다수가 소수의 의견을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지, 체험해야 한다.
‘누구를 지지하느냐’보다 ‘어떤 원칙을 믿느냐’가 중요한 문화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다수의 폭력'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 정치를 팬심처럼 소비하는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 진짜 민주주의가 살아 있는 정당, 국민이 정치에 참여하면서도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나부터 바꾸고 싶다
이 글은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내가 외면했던 내 모습, 침묵했던 순간, 부끄러운 태도에 대한 고백이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정치와 정당, 시민과 민주주의가 조금은 달라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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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5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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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yul642025-04-28 13:42:14

    부끄럽네요. 저도 마찬가지고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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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ver2025-04-28 09:33:26

    당시엔 저도 그 중심에 있었던것을 부인하지 못하겠네요. 부당한 비난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지지층은 더 공고해지고, 정당성을 스스로 갖는다 착각. 지금의 개딸들의 모습. 이 과정을 지나오면서 민주주의라는게 얼마나 유리 그릇같은지. 사람들의 인식이란 것이 얼마나 맹목적일 수 있는지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지지하는 인물은 있으나, 그를 추앙하거나 무오류의 인간으로 보지 않으려는 경각심을 가지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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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4-28 06:57:07

    그분은 워낙 여기저기서 말도 안되는 생트집을 많이 잡혔었다...고 지금도 생각하긴 해요. 지금의 개딸들이 옹호하는 그 사람과는 상황이 다르다 라고 하고 싶지만 그래도 지금 개딸들 행태의 뿌리에 문파들의 모습이 있는 것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는 게 마음이 복잡하네요. 양념 발언도 두고두고 욕을 먹은 걸 생각하면 본인을 위해서도 안하는 게 좋았을 소리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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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04-28 06:36:33

    그들 중 나도 하나였네요. 본인만큼 많이 봤겠느냐..의 한마디에 정당화 시켰었죠. 그게 정당 당원으로 할수 있는 최선은 아니었을텐데 말이죠. 지금 되짚어보면 참 어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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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n6er2025-04-28 02:41:47

    그때 지지자가 아니었던 입장에서 양념 발언은 좀 별로였지만 그래도 지지층보다는 정치인의 문제가 더 크다고 생각함
    지지자는 정치인이 속이면 아무리 제대로 알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해도 알 수가 없음
    나같은 경우엔 초기엔 열렬 문파도 아니었고 무조건 지지란 말을 싫어했지만 그렇다고 행동이 달랐던 것 같지도 않음
    문자 보내고 항의하고 그게 정의라 믿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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