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어제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 강진을 찾아 "정약용 선생의 18년 유배는 제가 당한 10년보다 길다"며 자신의 정치적 고난을 다산의 삶에 빗대었다. 역사적 위인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는 정치인들의 오래된 전술이지만, 때로는 그 선택이 의도치 않은 아이러니를 만들어낸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지방관이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지침서다. 그 핵심에는 '청렴'이라는 가치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청렴은 목민관 본연의 자세이고, 모든 선한 일의 근원이며, 모든 덕의 근본"이라고 다산은 단언했다. 그에게 공직자의 청렴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백성이 목민관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단호하게 답한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18세기 조선의 관리가 던진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 정치 현실에도 날카롭게 꽂힌다.
그런데 다산을 찬양한 정치인의 현실은 어떨까. 이재명 후보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부패방지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으로 성남도시개발공사에 4,895억원의 손해를 끼친 배임 혐의, 성남FC 후원금 관련 제3자 뇌물죄 등 여러 혐의가 그를 향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경계했던 바로 그 행위들-탐관오리의 횡포와 착취, 뇌물수수, 탐욕-이 현대적 형태로 변주되어 오늘날 정치인의 기소 내용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시대는 바뀌었지만 권력자들의 유혹은 변하지 않았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이재명 후보의 소속 정당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기소시 직무정지' 조항을 삭제하는 당헌 개정을 단행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당헌 개정을 넘어 당선시 재판중지법, 허위사실 유포의 개정을 통해 '행위'를 삭제하려 시도하는 장면은,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스스로 직위를 구하지 않는 것"을 덕목으로 꼽았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현대의 정치 현실에서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제도마저 변형시키는 모습이 연출된다.
이재명의 측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을 때, 재판부는 이를 "뿌리 깊은 부패 고리"라고 표현했다. 다산이 "청렴하지 않고서 목민을 할 수 있었던 자는 일찌기 없었다"고 단언했던 것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정약용이 강진에서 18년간의 유배 생활을 하며 『목민심서』를 집필할 때, 그가 상상했을 미래의 정치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마 다산은 자신의 글이 20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관련성을 가질 것이라는 사실에 씁쓸한 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더 씁쓸한 것은 자신의 이름을 들어 자신이 그토록 비판했던 행태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목격했을 때의 표정일 것이다.
이재명 후보가 "정약용 선생은 편을 가르지 않고 소속한 집단을 넘어서 끊임없이 소통했다"고 칭송했지만, 정작 그가 간과한 것은 다산이 목민심서에서 강요한 내용중에 불행히도 소통은 없다. 가장 중요시했던 가치-청렴과 백성을 위한 봉사-였다. 그와 함께 애민, 근면, 애졸(부하 사랑), 예산(돈이 아니라 손님을 잘 다루는 법 지금으로 따지면 외교로 보면 될것이다.), 식견, 수신, 공정, 인재등용등이 주요골자인데, 목민심서만 한정해서 보면 이재명 후보의 전력에 비춰 하나도 도움이 안 될 내용들 뿐이다.
다산이 권력자들에게 가장 강조했던 메시지는 뜬금없는 21세기형 '소통과 통합'이 아니라, 모든 권력은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는 근본적인 통찰이었다. 오늘날 강진을 찾는 정치인들이 다산의 유적지를 둘러보며 진정 배워야 할 것은, 정치적 위기 때 자신을 합리화하는 수사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가 지켜야 할 근본적인 도리다. 다산이 "목민관이 탐학질을 하면 탐관이고, 아전들이 부정한 행위를 하면 오리"라고 했던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실을 말이다.
만약 다산이 오늘날의 정치 현실을 본다면, 아마 그는 『목민심서』의 원고지를 한 장 더 꺼내 이렇게 덧붙이지 않았을까. "정치인이여, 나의 이름을 빌리기 전에 나의 책을 먼저 읽으라."
역사는 단지 끌어다 쓰는 전시품이 아니라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거울을 바꾸려 하지 말고, 자신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현명한 정치인의 자세일 것이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빛을 찾았다면, 오늘날의 정치인들은 그 빛에 비추어 자신의 그림자와 마주해야 할 시간이다.
청렴은 시대를 초월한 공직자의 기본 윤리이며, 목민심서는 그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이다. 이재명 후보가 자신을 정약용에 빗대며 정치적 동지애를 구하려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비유는 가장 뼈아픈 대조를 드러내고 말았다. 다산의 청렴함과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의 혐의를 받는 정치인의 모습 사이에 놓인 깊은 계곡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