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밝히는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서울=연합뉴스) 이재명 정부의 첫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로 주병기 서울대 교수가 지명됐다. 그는 한국 경제의 고질병으로 '경제적 강자의 갑질'을 지목하며 '징벌적 처벌'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누누이 밝혀왔다. 이로써 윤석열 정부의 '규제 혁파' 기조는 공식 폐기되고, 문재인 정부 시절보다 더 매서운 '재벌 개혁'으로의 회귀가 예고됐다.
세계는 지금 자국 대표 기업을 국가대표 선수로 키워 총성 없는 경제 전쟁에 나서고 있다. 미국은 빅테크를 압박하면서도 반도체와 AI 기업에는 천문학적 보조금을 쏟아붓고, 중국은 '중국제조 2025' 기치 아래 국가 역량을 총동원해 자국 기업을 밀어준다. 그런데 우리만 '대기업=악'이라는 30년 전 낡은 이념에 사로잡혀 스스로의 팔다리를 묶으려 하고 있다.
주병기 후보자의 등장은 대한민국 경제를 '미래'가 아닌 '과거'로 되돌리겠다는 선언이다. 그의 언어는 온통 '재벌', '갑질', '개혁' 같은 운동권의 낡은 단어들로 채워져 있다. '징벌적 처벌'로 기업의 위법 행위를 포기시키겠다는 발상은, 기업을 국익 창출의 동반자가 아닌 통제하고 길들여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시중에서는 벌써 "김상조 시절보다 더한 '매운맛' 규제가 닥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우리는 이미 '기업 옥죄기'가 국익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값비싼 대가를 치른 경험이 있다. 불과 10년 전,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엔비디아의 10배에 육박했다. 그러나 총수인 이재용 회장이 10년 가까이 사법 리스크에 발이 묶여 골든타임을 놓치는 사이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그 사이 엔비디아는 AI 반도체로 세상을 제패하며 시가총액 2조 달러를 넘보는 거인이 됐고, 대만의 TSMC마저 삼성을 가볍게 추월했다. 지금 삼성의 시총은 엔비디아의 4분의 1 토막에도 미치지 못한다. 총수가 재판에 끌려다니는 동안 경쟁자들은 미래를 향해 질주했다. 이것이 바로 정치 논리가 경제의 발목을 잡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냉혹한 현실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전경 [연합뉴스TV 제공]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내세웠던 리나 칸 FTC 위원장의 실패를 보라. 그녀는 빅테크를 향해 이념에 기반한 전방위적 소송을 벌였지만, 시장의 불확실성만 키우고 조직의 동력마저 잃었다는 혹평만 남았다. 과도한 이념이 현실 경제에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 똑똑히 보여준 사례 아닌가. 지금 한국이 가려는 길이 바로 그 길이다.
진정한 공정은 기업 옥죄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예측 가능한 법 집행과, 기업이 마음껏 뛰며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운동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리더십의 본질은 과거의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먹거리를 만드는 데 있다. 지금은 우리 기업을 '개혁 대상'으로 몰아붙이며 안에서 싸울 때가 아니라, '원팀'이 되어 밖으로 나가 싸워야 할 때다. 이번 인사가 대한민국을 세계의 흐름에 역행하는 '갈라파고스'로 만들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기업이 없으면 일은 어디서 하라는건가요. 기업을 무슨 악의 끝인 것 처럼 저러니..
진심 미래세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