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해, 재난 현장에 가장 먼저 투입되는 소방관들, 그들의 정신건강은 항상 재난상태다.
국민을 지키는 소방관의 안전, 국가의 책임
최근 이태원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박 모 소방관(30)이 실종된지 열흘 만에 숨진 채 발견되었다. 참사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던 박 소방관은 소방청의 ‘찾아가는 심리삼당실’에 8회 방문했고 외부 정신과 상담도 받았다. 박 소방관의 사망이 알려진 직후, 경남 고성소방서의 A소방관(44) 또한 지난달 29일에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박 소방관과 마찬가지로 이태원 참사 구조현장에 투입되었던 A소방관은 ‘트라우마’를 이유로 공무상 요양신청을 했지만 인사혁신처로부터 ‘불승인’ 통보를 받았다. 그는 이의신청 기간 중 사망했다.
크고 작은 화재 현장, 참혹한 교통사고, 극단적 선택이 일어난 구급 현장 등, 소방관들은 매년 평균 6회, 많은 경우 1년에 15회 이상 충격적인 현장을 경험하고 있다.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을 구조하고 시신을 수습하지만 소방관도, 구조대원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이러한 반복적인 외상 노출은 ‘정신적 화상’이라 불리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유발한다. 소방청의 공식 통계에 따르면, 소방관 10명 중 4명 이상이 PTSD, 우울증, 수면장애 등 정신질환 위험군에 속하며, 그 유병률은 일반인보다 10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최근 7년간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보다 자살로 삶을 마감한 소방관이 더 많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이들의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정부는 소방관의 정신 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찾아가는 상담실’, ‘스트레스 회복력 강화 프로그램’ 등을 도입하고, ‘동료상담사’ 제도를 운영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정책의 효과는 여전히 의문스러운 상황이다. 소방관들의 바쁜 출동 일정 때문에 근무 중에 상담을 위한 시간을 내는 것이 어렵고, 정신적 어려움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조직 내의 부정적인 인식도 여전히 존재한다. 소방 업무의 특수성을 잘 모르는 외부 상담사와 소통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동료상담사 제도는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원활히 소통하고 심리적 장벽을 낮출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인력과 시스템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 현장의 평가다.
미국의 통합적, 선제적 소방관 트라우마 관리
소방관 정신 건강 관리에 있어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은 소방관을 “사회 안전의 총책임자"로 여기고 존경심을 담아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 대중매체에서는 소방관을 국가적 영웅으로 그리고 지역사회에서도 각별히 예우한다. 무엇보다, 법적·제도적 장치를 통해 소방관들의 건강과 안전을 체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미국은 1935년 펜실베이니아주를 시작으로, 현재 대부분의 주에서 '공상 추정법(Presumption Law)'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소방관이 특정 질병(암, 심혈관계 질환, 일부 정신질환 등)을 앓을 경우, 그 질병이 직무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치료와 보상을 책임지는 것이다. 소방관 본인이 질병과 직무의 인과관계를 일일이 입증해야 하는 한국과 정반대의 시스템이다. 이러한 제도는 소방관들이 질병이나 보상 문제로 이중, 삼중의 고통을 겪지 않도록 보호하고 업무에 더 충실할 수 있게 한다.
소방관과 의료진, 구조대원의 외상후스트레스, 심리지원을 위한 CISM 홍보 이미지. (사진: CISM홈페이지)
미국 소방관들은 '위기상황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CISM: Critical Incident Stress Management) 라는 전문적, 통합적인 심리 지원을 받는다. 이 프로그램은 외상적 사건 직후 동료 상담을 통해 충격을 완화하고, 필요한 경우 심층 상담으로 연계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또한, 소방관의 심리적 건강을 육체적 건강과 동등하게 다루며, 익명성을 보장하는 등 심리적 지원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대부분의 지역 소방국과 응급의료센터에 있으며 소방관은 물론, 경찰과 의료진까지 재난, 재해 현장을 대응하는 인력 전반에게 제공되고 있다.
우리의 소방관들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소방 현장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인력 충원과 근무 체계 개선이다. 과도한 업무량이 스트레스와 과로, 현장 업무 과중의 원인인 만큼, 충분한 인력 확보를 통해 소방관들이 충분히 휴식하고 상담하며 정신적 회복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공상 처리 시스템의 혁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현행 시스템은 소방관들이 PTSD나 암과 같은 직업병을 겪었을 때 이를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는 과정을 지나치게 복잡하게 하고 있다. 상담 받는 것을 ‘나약함’ 으로 여기는 보수적 관념 탓에 심리적 고통을 겪으면서도 무조건 숨기고 참다가 문제를 키우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미국의 사례처럼, ‘공상 추정법’ 을 도입하는 등 제도를 과감하게 개선하여 소방관들이 헌신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해야 한다. 업무상 받은 스트레스의 원인을, 복잡한 절차를 통해 소방관들이 입증하게 해서는 안된다.
2022년 10월에 발생한 이태원참사로 159명이 세상을 떠났다. 현장의 최근 모습. 추모의 메시지가 벽에 가득하다. (사진: 연합뉴스)
무엇보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전문적인 심리 지원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소방청 내에 정신 건강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소방 업무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춘 전문가들을 양성해 소방관들이 원할 때 만나서 상담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소방관들이 심리 상담을 받는 것이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며 업무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인식을 확산하는 것도 중요하다. 심리적 어려움을 드러내고 도움을 받는 것은 나약한 것이 아니며 불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신뢰를 심어주어야 한다. 이러한 입법이야말로 민생을 위한 것이며 정파와 정쟁의 수단이 될 수 없다. 국회의 입법과 소방조직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소방관들은 우리의 영웅이다. 하지만 그들은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높은 공적의식과 희생정신으로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그들에게 헌신만을 요구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의 인간적 한계와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세금이 올바르게 쓰일 수 있도록 국민들이 앞장서서 정부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소방관들을 지키는 것은 우리를 지키고 우리 사회의 안전망을 굳건히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두 소방관의 명복을 빌며, 더이상은 트라우마와 정신적 아픔으로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소방관들이 없기를 바란다.

김선 논설위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7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너무 당연하게 지나친 그분들의 노고에 고개가 숙여지네요. 잘 읽었어요.
마음이 아프네요... 세금으오 뻘짓하지 말고 저런 분들 처우개선 좀 하면 좋겠네요
공감합니다.. 그 순간 잠시 개선해보자 그러고는 금방 또 지나가고. 이번에는 꼭 실질적으로 개선이 되길 바랍니다.
구구절절 공감이 갑니다
소방관 증원과 처우개선, 심리상담등이 법제화되서 이런 비극이 다시 없으면 좋겠어요
공감합니다 고맙습니다.
소방공무원에 대한 처우 개선방안을 확대해야 합니다.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참, 해맑은 미소를 가진 청년이던데.....
공감합니다
그러네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