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드 뭉크 Edvard Munch - 태양, The Sun, 1911년 작 (오슬로대학교, 저작권 없는 이미지)
왜 어떤 실망은 이다지도 아픈가
살면서 경험하는 여러 감정 중에 ‘실망'이라는 것은 참으로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사랑이나 미움처럼 강렬한 감정은 아니지만, 때로는 그 어떤 사건보다 사람을 더 괴롭게 만드는 것이 ‘실망’ 이다.
사랑이나 분노 같은 감정은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끌림이나 반발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실망이 일어나는 계기는 조금 다르다. 실망은 ‘기대가 깨질 때 오는 감정’이다. '당연히 어떠할 것'이라고 믿었던 상대방의 행동이나 상황이 나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때, 놀라움과 함께 실망이 발생한다.
특히 오랜 기간 쌓아온 신뢰와 함께 추구했던 가치가 무너졌다고 느낄 때의 실망은 존재론적인 혼란을 가져온다. 어떤 이들에게 그런 혼란은 우정이나 애정관계가 상실되는 것 이상의 충격을 준다. 실망은 자학과 짝을 지어 찾아오기도 한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특정 행위를 인지하고, 충격과 실망감을 어느정도 받아들인 후에는 자괴감이 밀려온다. 나에게 실망감을 준 대상을 탓하기 보다 나의 ‘섣부른 판단’ 을 탓하고 과거의 선택들을 후회하게 된다. '내가 잘못 믿었나?', '내 판단이 틀렸었나?', '그동안의 시간은 다 무엇이었나?'와 같은 질문들이 꼬리를 물면서 자존감까지 흔든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1.감정을 충분히 인정하자 - 지금 느끼는 '실망' 이라는 감정을 숨기거나 억누르려 하지 말자.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내 감정은 나의 것. 불편하고 노엽더라도 인정해야 극복할 수 있다. ‘나는 지금 실망했고 아프고 분노했다’ 는 것을 알고 인정해야 새로 시작할 수 있다.
2.모두가 변한다 - 어떤 기간 동안 공감과 지지로 묶여 있었다고 해서 그 관계가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도, 관계도, 결국은 다 변한다. 지금의 나도 그 때의 내가 아니듯, 상황은 변했고 우리는 모두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이해하자. 여기에서의 '이해' 는 나를 실망시킨 이의 사정을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모두가 그저 '인간'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3.나의 신념은 나에게 있다 - ‘정신적 지주’나 ‘이념적 리더’를 찾는 것은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다. 가치가 전도되고 언어가 오염되는 혼란한 세상 속에서, 리더를 통해 정체성과 소속감을 느끼고, 옳고 그름의 판단을 위임하면 안락하고 든든하다. 그러나 앞서 지적했듯 인간 관계의 그 무엇도 영원할 수 없고 리더의 자리나 팔로워의 관계도 변화할 수 밖에 없다. 변치 않는 것은 우리가 바라보는 가치들이다. ‘정의’, ‘공정’, ‘민주주의’, ‘고결함’, '유능함'과 ‘공적 의식’ 같은 것들은 특정한 관계 때문에 원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보편 타당한 가치이며 드물고 귀하기 때문에 위선자와 거짓말쟁이들까지도 그것들을 앞세운다.
플라톤은 <국가> 에서 ‘정의’를 '개인의 영혼과 사회의 이상적인 조화'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 조화가 바로 '가장 아름다운 상태'라고 주장했다. 세상이 변화하고 무수한 사람들이 달라져도, 그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는 여전히 나의 내면에 있으며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4.후회는 할 수 있지만 자책은 하지 말자 - 실망감에 너무 깊이 빠져들다 보면 지난 일들을 후회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지점을 후회하더라도 그 때에 충실했던 나 자신까지 탓하지는 말자. 돌아보면 아쉽게 여겨지는 일들도 당시에는 나에게 기쁨과 보람을 주지 않았던가. 죽고사는 문제가 아니라면 완전히 잘못된 판단도, 전적으로 헛된 일도 없다. 잘못된 만남은 반면교사로 기억하고, 헛수고는 인생의 경험으로 넘기자. 온전히 열심을 다하고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지 않았다면? 그렇다면 더더욱 후회할 일이 없을 것이다.
오랜 믿음이 흔들릴 때의 고통은 크다. 그러나 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금의 실망감과 상실감을 견디고 나면 내가 누구인지가 더 명확해질 것이다. 지난 일에는 감사하며 앞으로의 일을 이겨낼 힘을 키울 수 있기를 바랄 뿐. 만약, 당신보다 더 실망하고 낙심한 누군가가 '이제 무엇을 보고 누구를 따라 가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해주자. '우리는 우리 각자의 깃발이다. 모두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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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1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공감합니다.
김선 행정관님의 열정과 밝은 표정을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합니다.
위로 받습니다~ 건강한 정신이 아름다워요~
위로를 주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랜 믿음이 흔들릴 때의 고통은 크다. 그러나 모든 것은 지나간다.' 고통의 터널의 지난 지금은 오히려 더 명확하게 보는 눈이 생겨서 좋아요. '우리는 우리 각자의 깃발이다' 정말 공감됩니다. 하나의 깃발 아래 뭉치는것이 아닌 각자의 깃발을 들을때 완전한 나 자신이 되는거지요. 멋진 글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글이네요. 저도 그렇구요. 잘읽었습니다.
제게 위로와 격려가 되는 멋진 말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과거의 저에게 토닥토닥~
지금의 내 심정이네여~ 좋은 글 감사합니다
순간 순간마다 최선의 답을 찾으려 치열했던 분들. 절대 자책은 하지 마시길.
내가 믿은 상식과 가치가 부정당한 충격에 존재론적 혼란을 경험한 많은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글입니다. 너무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선님도 우리보다 훨씬 힘드셨을 테고 그래도 인정하고 싶은 것과 이젠 벗어나고 싶은 것이 있겠죠 우리가 잘 극복해 갔으면 합니다
위로가 되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