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대 총선에서 ‘검찰 개혁’과 ‘시대 혁신’을 기치로 12석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당선시킨 조국혁신당이 강미정 전 대변인의 탈당 기자회견과 당내 성범죄 폭로로 창당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 위기는 조국혁신당 창당 때 부터 내재된 것으로 팬덤 정치와 단일계파 정당의 한계, 그리고 뿌리깊은 운동권 악습이 누적된 필연이다.
1. 태생적 한계
조국혁신당은 조국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문재인정부 청와대(주로 민정수석실) 출신 인사들과 조국 대표의 지지자(팬덤)를 주축으로 창당되었다. 이들은 조국 전 대표에 대한 윤석열 검찰의 수사와 구속이 부당하다는 공감대 아래 민주당보다 더 강한 스탠스(‘3년은 너무 길다!’ 같은 윤석열 탄핵 캠페인)로 윤석열 정권과 검찰을 비판했다. 그러나 그런 활동의 기저에는 당의 ‘창업주’인 조국 전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도사리고 있었다.
조국은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때 부터, 아니, 당이 창당 되기 전 부터 실형 확정과 의원직 상실, 당대표직 사퇴가 예견되어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희망회로를 돌리며 무죄를 장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재판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는 법조인들은 대부분 실형 확정을 예상하고 있었다. 조국혁신당은 조국 1인의 ‘고난서사’를 명분으로 생겨났지만 그의 사법리스크를 피할 수 없는, 불안한 기반 위에서 민주당의 비례위성정당을 자임하며 출발한 기형적인 정당이었다.
2. 팬클럽식 당 운영
‘가족이 도륙’당하고 ‘억울한 옥살이’(조국혁신당 지지자 관점에서) 를 할 위기에 처한, 대표 1인을 바라보고 모인 당은 자연스럽게 '팬클럽'이 되었다. 정당 업무 경험이 있는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탓에 대부분의 당직과 지역위원장을 조국 대표의 측근들이 독점했고 조국 대표의 개인 팬덤이 그들을 지원하면서 당은 공적 형식을 가진 ‘팬클럽’으로 운영됐다. 모든 행사와 정책, 메시지의 중심은 ‘조국’이었고 당의 모든 홍보물과 명절 현수막에까지 조국의 얼굴 사진이 들어가야 했다. 의원들과 당원들도 '1인 지도자' 중심의 당 운영을 당연하게 여겼다.
조국혁신당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조국혁신당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조 대표가 옥살이를 할것이 뻔한 상황에서 당의 목표는 조국의 억울함을 알리고 그를 빨리 빼내는 것 뿐이었다. 정책토론은 검찰개혁 문제에 국한됐고 당의 시스템 정비나 지역 조직의 인사문제 같은 것들은 뒷전이 됐다. 홍보전략도 따로 없었다. ‘조국 얼굴이 들어가느냐 마느냐’만 문제였는데 항상 전자로 결정됐다. 당 운영에 의문을 갖고 이견을 말해도 ‘지금 조국이 감옥에 가게 생겼는데 그런게 뭐가 중요하냐’ 는 분위기였다.”
윤석열 퇴진, 탄핵을 암시했던 조국혁신당의 선거광고. (사진: 조국혁신당)
3. 철저한 '내식구' 감싸기
조국혁신당의 지도부는 대부분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신이다. 얄궂게도 이번에 가해자로 지목된 두 명도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다. 김보협 전 대변인은 문재인정부 당시 한겨레 기자로 청와대 춘추관(출입기자실) 간사역을 맡았었고 김어준 유튜브를 통해 얼굴을 알린 ‘셀럽’ 이자 대표적인 ‘친민주당 성향 진보지’ 기자였다. 다른 한 명으로 지목되는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국 수석 산하 민정수석실에서 대통령 가족을 담당하는 특감반 소속 행정관으로 근무하며 대통령 딸 문다혜 씨의 태국 이주와 관련해 여러번 검찰조사도 받았다.
조국과 당 지도부 입장에서 이들은 당의 출발을 함께 한 ‘식구’이고 여러모로 고마운 ‘동지’들이었다. 그렇기에, 이들의 비리가 드러났음에도 조치는 하릴없이 늘어졌다. 피해자들이 분리조치와 제대로 된 진상 조사, 처벌을 요구했지만 당은 조사기구의 문패만 세운 채 가해자들을 일단 휴직시키는 것으로 대응했다. 성폭력의 내용은 신우석 건이 더 심각한데도 김보협이 먼저 제명된 것 역시 이 맥락이다. 조국당 입장에선 언론사 출신인 김보협보다 민주당, 청와대 출신인 신우석이 더 ‘내식구’ 였기 때문이다.
4. 피해자에 대한 마녀사냥
가해자를 숨기고 피해자의 고통을 묵살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조국의 사면을 기다리며 긴장감이 높아진 당내에서 피해자들을 탓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한 국회 출입기자는 당시 조국당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성추행 사건 첫 보도 후 만난 조국당 인사들은 격앙되어 있었다. 대표가 수감됐고, 대선 등 당의 큰 일(사면) 을 기대하고 있는데 ‘노이즈’ 가 나오는게 불편했던 거다. 피해자들의 인상, 업무능력에 대한 부정적인 평판을 기자들에게 전하며 당에 대한 부정기사가 나가지 않도록 단도리하는 인사들도 있었다.”
애초 두 사람의 비행으로 시작됐던 사건은 수습되지 못하면서 연쇄적인 부조리를 낳았다. 피해자의 자리 뒷편에 거울을 설치해 감시하는 직장내 괴롭힘이 일어났고 당직자가 피해자를 조력한 인사를 폭행했으며,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지역위원장이 도리어 제명됐다(조국당은 그것과는 무관한 다른 '인사문제'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한 조국당 내부 인사는, "피해자들은 당내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당의 지도부가 아무렇지 않게 가해자들을 언급하는 안부를 전하는 모습을 봐야만 했다. 그러면서 조국 전 대표가 출소하면 합당한 조치를 할 것이라 믿었다." 고 회고한다.
당내에서 고립되던 피해자들은 사건 경과를 정리한 문서와 손편지를 조국 대표에게 보냈다. 적어도 조국만큼은, 자기들의 말을 들어줄 것이라 믿고 기다렸던 것이다.
5. 방종과 은폐의 역사
이전에도 여러 정당에서 당내 성범죄 사건들이 터졌다. 과거 최연희 전 의원,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성추행 사건과 심학봉 전 의원의 성폭행 사건은 보수정당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리며 당시 새누리당에 '성누리당' 이라는 모욕적인 별칭을 안겼다. 소위 ‘진보’를 표방하는 정당에서도 성비위는 예외없었다.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의 지자체장 성폭력 사건은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에 3연타를 날리며 정치적, 도덕적으로 큰 상처를 남겼다. 개혁국민정당의 당내 성추행 사건, 정의당 김종철 전 대표의 성추행 사건, 청년정의당 성추행 사건 또한 진보, 민주 진영의 도덕성을 의심케 만든 대표적인 사건이다. 구 통합진보당 핵심인사가 연루된 진보당 성폭력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권력형 성범죄는 정당과 이념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지만 그 ‘수습’ 양상은 사뭇 다르다. 보수정당들은 범죄를 ‘개인의 일탈’ 로 치부하고 단절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사건이 공론화 되면 당과 무관한 ‘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규정하며 당내 처분 보다는 사법처리로 넘기는 방식을 택한다. 이러한 방식은 진보 진영보다 상대적으로 '도덕성'이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보수정당의 특성과 관련이 있다.
반면, 진보정당은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은폐’ 나 ‘축소’ 를 주로 택한다. 이들은 기존에 ‘민주주의’, ‘인권’ 가치를 내세웠기 때문에 성범죄가 노출되면 위선과 이중성에 대한 비판을 더 가혹하게 받는다. 때문에 성비위 사건이 일어나면 최대한 감추려고 하며 은폐의 이유로 ‘대의명분’ 과 ‘조직의 단결’ 을 내세운다.
2002년 개혁당 성추행 사건 해결 요구에 유시민은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있다' 고 응수했다. (사진: 연합뉴스) 2002년에 개혁당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저 유시민은 '해일이 밀려오는데 조개나 줍고있다' 는 희대의 망언을 남겼다. 2025년인 지금은 그 때와 얼마나 다른가, 조국당 지도부가 피해자들을 조직적으로 따돌린 것, 최강욱 전 의원이 ‘죽고사는 일도 아니다’, ‘저 조국을 감옥에 넣어놓고 사소한 일로 싸운다’ 라고 말 한 것은 20여년 개혁당 시절의 유시민에 비해 한 치도 발전하지 못한 위선과 오만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대의를 외치면서 약자들의 눈물을 외면하는 이들의 반응은 또한 386(이제 686이 된) 운동권의 성적 방종과 은폐의 악습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 학생운동권 내부에서 성범죄 피해를 당한 이들 역시 ‘반독재 투쟁’ 이라는 대의에 걸림돌이 된다거나 '조직의 단합'을 위해 침묵하고 용서할 것을 무수히 강요당했다.
6. 무엇을 혁신할 것인가? 가망이 없는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의 탈당 기자회견 직후 까지만 해도 조국당은 수습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조국 전 대표가 겸허한 '사과'를 하고 뒤늦게라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했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사과는 없었다. 조국당 대변인이 밝힌 당의 공식입장과 김선민 당대표의 기자회견, 두 차례에 걸친 조국 전 대표의 페이스북 메시지는 희미한 수습의 가능성을 걷어차버렸다. 당 대변인은 사과 대신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다’ 며 강미정과 지엽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진실게임을 벌였다. 사무총장은 라디오에 출연해 '조국은 수감 중이라 당무에 관여 안 했다' 며 선을 그었다. 조국 마저도 ‘당시 제명된 상태라 평당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는 놀라운 변명을 내놓았다.
'영어의 몸' 이었기 때문에 몰랐다(김선민 당대표), '옥중정치 하지 않았다'(황현선 사무총장) 라던 조국이 옥중에서 당무를 챙긴 증거들.(사진: 최지원 페이스북)
참으로 말문이 막히는 비겁함이며 기가 막힌 견강부회(牽强附會) 다.
자기 이름이 들어간 ‘조국혁신당’ 의 창업자이자 오너나 마찬가지인 그가 제명이 되건 감옥에 가건, 그의 입지나 당내 자격에 무슨 변화가 있었단 말인가. 김선민 대표는 그의 당대표직을 임시로 위탁받은 입장이며, 사면 이후에 어떤 형식으로든 조국이 다시 당대표로 복귀하리라는 것은 여의도 바닥에 모르는 이가 없지 않았던가. 수감 중에도 수십차례의 특별접견을 하고, 자신의 수감생활과 사면을 기대하는 손편지 메시지를 냈던 그가, 어떻게 ‘비당원' 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라고 말 할 수 있단 말인가.
당내에서 왕따와 비난을 받던 피해자들은 조 전 대표에게 편지를 보내며 진보적 형법학자이자 '억울하게 수감된' 입장인 그가 자신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손을 내밀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아마도 조국혁신당에서 조국의 사면을 가장 애타게 기다린 것은 의원들도 지도부도 아닌 바로 성폭력 피해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된장찌개 사진과 피해자측 대리인의 에스엔에스를 통해 조국이 전달했다는 기약없는 만남 제안, 사실상의 외면 뿐이었다.
결국 조국혁신당도, 조국이라는 정치인의 여정도 이 사건을 기점으로 종영을 맞을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맞다. 정의와 인권, 혁신과 검찰개혁을 주장할 명분과 남은 기회들을 스스로 다 날려버렸다.
카타리나타 기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7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조국의 위선이 이제는 너무 일상화되어 거의 이재명의 위선처럼 사람들에게 무감각하게 받아들여지는 건 아닐까 두렵네요.
애시당초 국민과 민생은 안중에도 없던 벌레들 무리입니다. 조국당 폭망기원합니다.
그냥 이름 자체가 잘못됨
조국당의 존재의 이유가 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저런 무쓸모당에 의원 무려 12명이나 있다는 기막힌 현실. 참 답답하네요.
문제는 조빠들이 민주당 으로 돌아 가나요?
오만 이슈에 입 털던 인간들이 성범죄에만 유난히 입 닫는 현상, 특히 여성단체들
이러니 성범죄는 절대 근절되지 않는다
여성 본인은 물론 엄마 여동생 누나 배우자 등 주변에 여성 없는 사람 있나?
하긴 누나 여동생 심지어 엄마도 능욕 딥페 만드는 한국남성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