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4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을 비롯한 연방 수사기관들이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을 급습했습니다. 이 작전으로 현장 근로자 약 450명이 불법 체류 및 고용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이 중에는 한국에서 파견된 기술인력 40여 명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국은 이번 압수수색이 단순 불법체류자 단속을 넘어 "불법 고용 관행 및 기타 중대한 연방 범죄"에 대한 수사의 일환이라고 밝혔으며, 이로 인해 공장 건설은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미국, 현대차-LG엔솔 공장서 불체자 단속 (서울=연합뉴스)
우리 기업, 대체 뭘 잘못했나?
가장 큰 문제는 '비자 편법' 사용입니다. 쉽게 말해, '회의 참석'이나 '계약' 목적으로 받는 단기 상용 비자(B-1)나 무비자 프로그램(ESTA)으로 입국한 한국인 기술자들이 현장에서 사실상 '노동'을 했다는 혐의입니다.
미국 법은 이런 비자로 입국한 사람이 건설 현장에서 장비를 설치하거나 직접 기술을 적용하는 등 '손으로 하는 일(hands-on)'을 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합니다. 관리·감독이나 교육은 일부 허용되지만, 그 경계가 매우 모호합니다. 미 수사당국은 우리 기술자들이 이 선을 넘어 사실상 취업 비자(H-1B 등)가 필요한 업무를 수행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빨리빨리' 공장을 지어야 하는 상황에서 복잡한 취업 비자 대신 손쉬운 단기 비자를 활용한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이런 일이 처음인가, 아니면 '관행'이었나?
안타깝게도 업계의 오랜 '관행'에 가깝습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20년에도 조지아주에 있는 SK 배터리 공장에서 비슷한 이유로 한국인 근로자들이 체포된 전례가 있습니다.
대규모 프로젝트의 빠듯한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정식 취업 비자 대신 단기 비자로 기술인력을 급파하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자 '감수해야 할 위험'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관행을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며, 이는 단순한 관행을 넘어 명백한 '중대 연방 범죄'로 취급될 수 있는 사안입니다.
미국과 우리 경제에 미칠 파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조치는 미국 경제에도 자충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공장은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자국 내 전기차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의 핵심 시설입니다. 공장 건설이 중단되고 2025년 말 양산 목표에 차질이 생기면, IRA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배터리 공급이 늦어져 결국 현대차뿐만 아니라 미국 소비자들과 정부의 친환경차 정책에도 타격을 주게 됩니다.
국내에는 단기적으로는 공장 건설 중단에 따른 직접적인 손실과 구금된 직원들에 대한 법률 지원 등 막대한 비용이 발생합니다. LG에너지솔루션 주가는 보도 직후 2.3% 하락하는 등 시장의 충격도 즉각 나타났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현대차·기아의 미국 내 전기차 생산 계획에 차질이 생겨 IRA 보조금 혜택을 놓치고, 이는 곧 가격 경쟁력 하락과 판매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조치, 유독 한국 기업에만 가혹했나?
외신들은 이번 사태의 배경으로 다음 세 가지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이번 압수수색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공약인 '불법 이민과의 전쟁'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또한, 해당 공사 현장에서는 지난 16개월간 최소 3명의 근로자가 사망하고 20건이 넘는 심각한 부상 사고가 발생하는 등 안전 문제가 매우 심각했습니다. 반복되는 사망 사고는 단순한 노동부 조사를 넘어 FBI 등 연방 수사기관이 개입하는 계기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 과정에서 조직적인 비자 문제와 불법 고용 정황이 포착되었을 것입니다.
이번 압수수색에 이민세관단속국(ICE)뿐만 아니라 연방수사국(FBI), 마약단속국(DEA) 등 여러 기관이 총동원된 것은 단순 불법체류자 단속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당국이 "불법 고용 관행 및 기타 중대 연방 범죄"를 언급한 만큼, 비자 사기를 조직적으로 공모하고 값싼 노동력을 착취한 범죄 조직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 사태를 정확히 평가하려면 다른 외국 기업 사례와 비교가 필요합니다.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사업장 단속은 트럼프 행정부의 확립된 이민 단속 방식입니다. 과거에도 미시시피의 가금류 공장(680명 체포), 텍사스의 전자제품 수리업체(280명 체포) 등 주로 농업, 식품 가공, 저기술 제조업 분야에서 대규모 단속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미국의 핵심 산업 정책과 직결된, 76억 달러 규모의 최첨단 자동차 배터리 공장을 대상으로 한 것은 사상 처음입니다. 이는 HSI(국토안보수사국) 역사상 단일 사업장 최대 규모의 단속 작전으로 기록될 만큼 그 강도와 상징성이 남다릅니다.
미국에 진출한 일본의 도요타나 독일의 폭스바겐, BMW 등 경쟁 자동차 업체들이 이와 유사한 대규모 이민 단속을 받은 사례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물론 이들 기업도 비자 문제로 조사를 받은 적은 있습니다. 2017년, 독일 자동차 업체들의 하청업체들이 단기 비자(B1/B2)를 악용해 유럽 노동자들을 불법적으로 고용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국 정부의 대응은 공장을 급습하는 대신, 하청업체에 대한 조사와 서류 제출을 요구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처벌보다는 규정 준수를 유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외신에서는 이번 조치가 한국 특검의 교회 압수수색이나 오산 미 공군기지 압수수색에 대한 보복이라는 분석이나 보도를 찾아볼 수는 없지만, 정책적 일벌백계 의지와 더불어 정치적 보복에 '미완의 관세협정'의 지렛대로 볼 여지도 충분히 있습니다.

윤갑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11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고 그 댓가를 치루는 과정의 대한민국 망할까요? 중국 러시아 북한이 뭉쳐서 미국을 대항할 이미지를 만들고 있는데 자국민 체포되고 있는 상황에서 영화나 보러다니는 모지리가 나라의 수장이라니
앞으로가 더 걱정이네요..이걸 빌미로 얼마나 또 퍼줘야될지..
귀에는 귀! 이에는 이!
트럼프의 복수!
잘못된 선택이 낳은 우리의 자충수!
우려되고 의미심장한 상홍이네요.
대대적인 결박 연행에다 영상 공개까지 한 건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싶네요. ㅠ
둘이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현대차 급습이라니 뭐 말 다 했죠
관행이라도 사실 불법은 맞고 어느나라나 없어져야할 불법 관행입니다
트럼프 정부 입장에서는 약간의 손실을 감수한 꿩먹고 알먹고 작전인 듯
제가 트럼프라도 이렇게 했을 거 같습니다
비공개회의에서 이재명 개인 범죄를 들고 흔들었다는 소식도 들리는데 이재명은 지금 가슴이 콩닥콩닥 할 듯
개인 범죄 리스크가 국가 리스크가 되는 초입에 들어선 듯해요
결국은 이텅 정부의 뻘짓에 대한 응징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기사 감사합니다.
기사 잘 읽었습니다. 교회 압수수색에 대한 트럼프의 경고를 무시한 결과이자 다시 한번 더 한국의 목줄을 죄겠다는 경고가 맞다고 생각해요
앗 그러네요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