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부부, 영락보린원 원생들과 영화관람
국민 300여 명이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무더기로 구금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대통령 부부는 영화를 보며 파안대소했다. 이 기묘한 부조화는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지금 이 나라 리더십에서 결정적으로 실종된 것은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바로 ‘공감 능력’이다. 그리고 이 공감 능력의 부재야말로, 한 정권을 무너뜨렸던 바로 그 칼날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본질이 무엇이었나. 최순실이나 태블릿PC는 방아쇠였을 뿐, 핵심은 세월호 참사 앞에서 보여준 리더십의 공감 능력 부재였다. 국민들은 국가 최고 지도자가 슬픔에 함께 울고 고통에 함께 아파하리라 기대했지만, 돌아온 것은 보이지 않는 7시간과 유체이탈 화법이었다. 그것이 바로 ‘무능’의 다른 이름이었고, 국민들은 그 무능에 책임을 물었던 것이다.
이는 민주공화국 국민들이 지도자에게 보내는 준엄한 요구다. 우리는 대통령을 신(神)이나 슈퍼히어로로 착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가적 위기와 국민적 고통 앞에서는 최소한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공감과 책임감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덮쳤을 때, 비행기 안에서 유유히 피해 지역을 내려다본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어떻게 몰락했는지 역사는 똑똑히 기억한다. 국민의 고통과 유리된 리더십의 종말은 언제나 비참했다.
바로 그 ‘공감 부재’의 칼날로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렸던 세력이, 이제는 그 칼날을 스스로에게 겨누는 희대의 자가당착을 보여주고 있다. 철석같이 믿었던 한미동맹에 균열이 가고 그 대가로 국민이 곤욕을 치르는 바로 그날의 웃음.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과거 자신들이 그토록 비난했던 ‘공감 능력 부재’의 완벽한 재현 아닌가. 시중에선 “내 편의 무능은 착한 무능이냐”는 냉소가 나온다.
이것은 단순히 영화 한 편 본 것이 문제가 아니다. 국가의 핵심 이익과 국민의 안전이 흔들리는 바로 그 순간에, 리더십이 현실을 얼마나 안이하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 웃음 뒤에는 동맹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고, 그로 인해 국민이 치를 대가를 외면하는 위험한 현실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국민들은 묻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7시간은 그토록 문제 삼았던 이들이, 국민 300명의 구금 사태 앞에서의 웃음은 어떻게 변명할 것인가.
국민이 믿고 기댈 수 있는 어른스러움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보통의 상식을 가진 지도자라면, 자국민이 해외에서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에 잡힌 행사의 취소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저렇게 해맑은 웃음이 나올 수 있는가. 이 싸움은 진보와 보수의 낡은 이념 대결이 아니다. 국가와 국민을 대하는 ‘책임’과 ‘몰염치’의 싸움이며,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일 뿐이다. 국민의 분노에 공감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이 리더의 최소한의 도리 아닌가.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9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악마같은 부부가 지들을 맺어준 형수한테 쌍욕하고 조롱하며 쌍으로 웃는 싸이코패스의 모습이 오버랩됩니다.
역겹다
끔찍합니다.
시민들 불체자 범죄자로 만들어놓고 희희낙락 싸패가 또 한건 하네요
참나...
시간이 지날 수록 비참한 기분만 듭니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하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다가도 계속 망가지고 있는 나라를 지켜보고 있는게 고통스럽기만 합니다.
싸패처럼 웃고 있는 저 면상 공포영화 한 장면인가 싶네요
제정신인 건가요?
진짜 혐오스럽네요.
저 천박하고 사패 같은 것들 끌어내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