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의 신규 수수료를 10만 달러로 100배 인상한 것은 단순한 이민 정책의 조정이 아니다. 이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관세 전쟁'을 연상시키는 정교하게 계산된 압박 전술이다. 이 정책의 조준경은 명확하게 두 나라, 첫 번째는 인도, 그리고 두 번째는 중국을 향하고 있다.
미국 이민당국에 의해 조지아주에 구금됐던 한국인 근로자들이 12일 영종도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입국장을 나서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2024 회계연도 기준, H-1B 비자 승인자의 71%는 인도 출신이었고, 중국이 약 12%로 그 뒤를 이었다. 이 두 나라가 전체 비자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구조 속에서, H-1B 시스템에 가해지는 어떤 충격도 필연적으로 이 두 국가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는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가장 큰 고통을 줄 수 있는 지점을 타격하는 트럼프식 협상술의 전형이다.
이러한 과감한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협상에서 구사했던 '관세 폭탄' 전략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 그는 예고 없이 극단적인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상대국을 충격에 빠뜨리고, 협상 테이블의 판을 흔든 뒤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이번 H-1B 수수료 인상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인 일자리 보호'와 '비자 시스템 남용 방지'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 그 이면에는 훨씬 더 큰 지정학적 계산이 깔려 있다.
특히 인도를 향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최근 미국과 인도 사이에는 시크교 분리주의자 암살 시도 의혹과 러시아산 원유 수입 문제 등으로 불편한 기류가 흘렀다. 이런 상황에서 H-1B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인도의 가장 민감한 경제적 아킬레스건을 건드려 미국의 요구에 순응하도록 압박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인재 수출에 크게 의존하는 인도의 IT 산업과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함으로써, 다른 외교 및 안보 현안에서 양보를 얻어내려는 고도의 전략인 셈이다.
중국 역시 이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비록 인도만큼의 비중은 아니지만, H-1B 비자 수혜국 2위라는 점에서 이번 조치의 영향권에 있다. 이는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의 핵심 인재들이 미국 기술 생태계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고 견제하려는 다목적 포석으로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H-1B 비자 수수료의 파격적인 인상은 이민 시스템의 개혁이라는 표면적 이유를 넘어선다. 이는 트럼프 특유의 대담하고 예측 불가능한 협상 스타일이 이민 정책이라는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된 것이다. 관세가 무역 전쟁의 무기였듯, 이제 비자 수수료는 인재와 기술을 둘러싼 지정학적 힘겨루기의 강력한 레버리지로 사용되고 있다. 이 한 수가 인도와 중국, 나아가 전 세계 기술 지형에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김남훈 기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3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외교를 ㄱㅍ으로 해도 지지율만 잘 나오면
트럼프는 미친 척은 해도 계산이 항상 있음 트럼프를 상대로 어설프게 반격 시도하다 큰일 날 것 같아요 이 정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