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처음 만났을 때 죽이지 않았을까." 체인소맨 레제편
* 이 리뷰에는 작품의 결말이 쓰여있습니다.
소년의 가슴에는 엔진 시동줄이 달려 있다. 잡아당기면 머리와 양팔이 기계톱으로 변하는, 끔찍하고도 매혹적인 변신. 나는 그 방아쇠를 당기는 행위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사춘기처럼 보였다. 예고 없이 찾아와 몸을 멋대로 바꾸고, 이성과 본능을 뒤죽박죽으로 섞어버리는 호르몬의 폭풍우. 통제 불능의 힘을 손에 넣었지만, 그 대가로 영원히 평범한 인간일 수 없는 저주. 소년 덴지는 그 끝나지 않는 사춘기를 온몸으로 앓고 있었다.
체인소맨 레제편 (사진=소니픽쳐스)
그렇기에 그의 꿈은 너무나도 소박해서 처연하다. 따뜻한 잠자리와 맛있는 식사, 그리고 여자친구와의 평범한 데이트. 괴물 같은 힘을 휘두르는 소년의 내면은, 그저 보통의 삶을 갈망하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비 오는 날, 낡은 전화 부스 안으로 운명처럼 한 소녀가 뛰어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녀의 이름은 레제. 덴지가 꿈에 그리던 모든 것을 이뤄줄 구원처럼 보였다.
함께 밤 수영장에서 물장구를 치고, 축제에서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장면들은 낡았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청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안다. 어떤 형태로도 해피엔딩으로 끝나기엔 처음부터 거대한 상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그녀는 사랑을 속삭이기 위해 온 것이 아니었다. 덴지의 심장을, 그가 가진 체인소맨의 힘을 빼앗기 위해 소련에서 보낸 인간 병기, '폭탄의 악마'였다.
비극은 정체가 탄로 나는 순간 폭발적으로 전개된다. 사랑의 밀어는 살의가 담긴 대사로, 감미로운 데이트는 도시를 파괴하는 잔혹한 전투로 변질된다. 여기서 이야기는 단순한 배신과 복수의 서사를 넘어선다. 레제는 완벽한 병기로 길러졌지만, 덴지라는 예측 불가능한 변수 앞에서 처음으로 고장 나기 시작한다. 그녀의 가슴속에서 명령이라는 차가운 기계 장치와 사랑이라는 뜨거운 감정이 충돌하며 불꽃을 일으킨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스스로에게, 혹은 이름 모를 신에게 묻는다.
"왜 처음 만났을 때 죽이지 않았을까."
그것은 임무의 실패를 자책하는 전사의 독백이 아니다. 차라리 생애 처음으로 느껴보는 낯선 감정에 당황하는 소녀의 고백에 가깝다. 죽여야 할 상대를 죽이지 못하게 만든 그 찰나의 망설임, 그 불가해한 끌림을 그녀는 어설프게 ‘사랑’이라고 이름 붙여보는 것이다. 그 질문 하나로 그녀는 완벽한 병기에서 불완전한 인간이 되기를 선택했다.
소녀는 소년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이 모든 지긋지긋한 싸움을 뒤로하고 멀리 떠나자고 제안한다. 배낭을 멘 덴지가 작은 카페에 앉아 꽃다발을 들고 레제를 기다리는 장면은, 이 잔혹한 이야기 전체를 통틀어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사실 그 도피는 애초에 불가능한 꿈이다. 그들은 ‘국가’와 ‘악마’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톱니바퀴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설령 레제가 목숨을 부지해 약속 장소에 도착해 함께 기차에 올랐다 한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평화가 아닌 또 다른 추격과 전투였을 것이다. ‘폭탄과 기계톱’이 어찌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평범한 연인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그들의 몸에 새겨진 변신의 트리거는, 그들이 세상과 불화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낙인이었다.
그렇다면 덴지는 그 모든 것을 몰라서 기다렸을까. 나는 그가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이 기다림이 헛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는 기다리는 쪽을 택했다. 그것은 순진함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알면서도 기꺼이 상처받기를 각오한 소년의 진심이었다.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 공이 울릴 때까지 펀치를 뻗는 복서처럼, 그는 자신의 사랑에 모든 것을 걸었다.
엔딩 타이트롤 위로 요네즈 켄시와 우타다 히카루의 노래가 흐른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멜론으로 노래를 찾아서 플레이 리스트에 넣어두었다. 고독과 상실을 노래하는 그들의 멜로디는,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덴지의 꽃 한 송이를 위한 진혼곡이다. 우타다 히카루가 숨을 들이키며 잠시 멈칫하는 호흡과 중반부부터 나오는 파열음이 이 노래의 백미다. 주저하고 부서지고. 그게 결국 사랑아니던가. 결국 레제는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못하고, 그들의 미숙한 사랑은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폭발과 배신으로 얼룩진 잿더미 속에서도, 그들이 서로를 향해 뻗었던 손길과 나누었던 온기는 분명 진짜였다. 트리거를 당겨야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었던 두 미완의 존재가, 처음으로 변신하지 않은 맨몸으로 서로를 마주하려 했던 그 찬란한 시도. 이 영화는 그 시도에 대한 100분짜리 기록이다.
[팩트파인더=김남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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