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기업 총수들과 라운딩 마치고 나오는 트럼프 대통령 차량 행렬 (웨스트팜비치[플로리다]=연합뉴스)
지난 18일, 플로리다 웨스트팜비치의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 클럽.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투자 행사의 일환으로, 대한민국의 동맥을 쥐고 있는 이름들이 그곳에 집결했다. 이재용, 최태원, 정의선, 구광모, 김동관. 5대 그룹 총수들이 그곳에 선 이유는 투자 유치라는 얄팍한 명분이었지만, 그들의 어깨 위에는 교착에 빠진 한미 관세 협상이라는, 기업의 차원을 넘어선 국가적 과제의 무게가 얹혀 있었다. 국가의 공식 외교 라인이 증발해버린 자리에 기업인들이 대리인으로 나선 이 기괴한 촌극. 이것이야말로 정치의 실종이자, 주권의 외주화다.
그리고 이 추락은 일회성 사고가 아니라, 이미 익숙한 패턴이라는 데 이 정권의 깊은 병폐가 있다. 정부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김없이 비어 있고, 그 폐허를 민간이 사투로 메우는 풍경. 그것이 이 정권의 상징이 되었다.
캄보디아의 정글에 버려졌던 청년들을 기억하는가. 정부가 요란하게 홍보한 성과란 고작 피의자들의 신병이었을 뿐,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200여 명의 실종자들은 통계 밖에서 방치되었다. 정작 자신의 집을 담보로 4억 원을 쏟아부어 그들을 구출해낸 것은 한캄상공회의소의 박현옥 회장이었다. 국가가 제 국민 하나 지켜내지 못하는 사이, 이름 없는 개인이 피 같은 사재를 털어 그 책무를 대신했다.
책임 방기는 국경을 넘어 이 땅의 심장부에서도 똑같이 벌어졌다. 대한민국의 디지털 신경망이 마비되었던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당시, 대통령은 어디에 있었나. 행정 서비스가 멈추고 국민이 혼란에 빠졌던 바로 그 시각, 그는 재난 현장이 아닌, 유명인들과 웃고 떠드는 예능 프로그램의 화려한 조명 아래 서 있었다. 국가 시스템 붕괴라는 초유의 사태 앞에서 책임자들은 전 정권 탓으로 이전투구에 몰두했고, 대통령의 안일한 현실 인식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재난이었다.
통상 협상에 이르면 이 촌극은 완벽한 부조리극이 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보도에 따르면, 불과 얼마 전 현대차가 관세 폭탄을 피하려 미국 투자 계획을 논의했을 때 "정부의 협상력을 떨어뜨린다"며 질책했던 것이 바로 이 정부다. '팀워크'를 해친다며 기업의 자구책을 막아서던 그들이, 이제 와서는 그 기업 총수들을 문제 해결의 최전선으로 등 떠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이 만남을 주선한 것이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라는 사실은 이 희극의 정점이다. 대한민국의 운명이 걸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자국의 기업을 넘어 이제 일본계 거대 자본가의 네트워크에까지 손을 빌려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 재벌을 향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그러나 현재 그의 정부는 플로리다 회동에 참여한 재계 총수들과 같은 경제 주체들의 협력을 통해 외교 현안을 풀어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러한 상황은 과거 그의 발언과 현재의 정책적 행보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를 보여준다.
이것이 누누히 강조하던 실용의 실체인가?
손정의 회장과 韓기업 총수들이 묵은 것으로 추정되는 숙소 (팜비치[미 플로리다주]=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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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4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재벌해체 주장했지 않았나요? 재벌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네
저러다 잘 안 되면 재계탓 잘 되면 자신의 전략이 통했다며 호들갑
이럴거면 정경일치 하던가~
저렇게 편하게 힘든 일은 딴사람 시키고, 정작대텅은 쇼만 해도 되니 이텅은 얼마나 편하고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