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미국은 자국의 무역 적자를 해소하고 중국을 견제하겠다며, 동맹국인 한국을 향해서도 '관세 폭탄'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한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물리겠다는 위협이 현실이 되면서, 한미 관계는 새로운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이 벼랑 끝 상황에서 '관세 인하'와 '대규모 대미 투자'를 맞바꾸는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현금 투자 5%'라더니…말 바뀐 정부 설명
7월 큰 틀의 합의가 발표되었을 당시, 정부는 3,500억 달러 투자의 대부분이 보증 형태이며 실제 현금 투자는 5%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설명하며 국민을 안심시켰습니다. 그러나 10월 최종 합의 결과, 3,500억 달러 중 2,000억 달러가 명백한 '현금 투자'로 확정되었습니다. 이는 당초 설명과는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야당은 "정부가 투자 구조를 축소·왜곡해 국민을 기만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번 협상의 가장 뼈아픈 대목은 단연 자동차 관세입니다. 지난 수년간 한미 FTA 덕분에 한국 자동차는 관세 0%라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미국 시장을 공략할 수 있었습니다. FTA가 없던 일본이나 유럽 차들이 2.5%의 통행료를 낼 때, 우리는 무관세 혜택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고속도로는 사라졌습니다. 협상 결과,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에는 15%라는 새로운 관세가 붙게 되었습니다. 정부는 "25% 관세 폭탄을 15%로 막아냈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사실상 없었던 세금이 새로 생긴 것과 같습니다. FTA 파트너라는 특별한 지위를 잃고, 이제 일본, 유럽과 똑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한국의 미래를 책임질 반도체와 바이오 신약 분야는 어떨까요? 협정에는 이들 품목에 대해 '최혜국 대우'를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긴 듯 보입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슬아슬한 줄타기에 가깝습니다.
한국 정부는 반도체 관세가 "경쟁국인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수준"일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7월의 미국 정부 보고서는 최혜국 대우 보장 여부가 "불분명하다"고 명시('Other aspects of the deal that remain unclear include whether South Korea is guaranteed MFN status for tariffs semiconductors and pharmaceuticals (i.e., tariffs imposed on those South Korean products will not be higher than other countries)' )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보장'이 아닌 '고려'에 가까운 표현으로, 언제든 미국이 자국의 필요에 따라 한국 반도체에만 불리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셈입니다. 이는 한국의 핵심 기술 산업에 예측 불가능한 위험을 안겨준 것과 같습니다.
이번 협상의 또 다른 축은 3,500억 달러(약 490조 원)에 달하는 대미 투자 약속입니다. 이 거대한 '투자 보따리'의 주도권을 사실상 미국이 가져가는 구조라는 점에서 큰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투자를 심의하고 결정하는 위원회의 위원장을 미국 상무장관이 맡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투자 분야 역시 반도체, 원자력, 조선 등 미국의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산업에 집중되어 있어, 한국의 국익보다는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자금이 사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수익 분배 구조입니다. 정부는 투자 원금을 회수하기 전까지는 수익을 미국과 50대 50으로 나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원금 회수 후'의 수익 분배 비율에 대해서는 명확한 언급이 없습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신호입니다. 먼저 협상을 맺은 일본의 경우, 원금 회수 후 수익의 90%는 미국이, 단 10%만 일본이 가져가는 독소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만약 이 조건이 한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면, 우리는 위험 부담은 다 지고 막상 이익이 발생하면 대부분을 미국에 넘겨주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계약서에 명시되지 않은 이 부분이 가장 큰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이미지 생성 = 가피우스
연간 최대 200억 달러에 달하는 현금 투자는 국내 외환시장에 큰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와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았습니다. 통화 스와프는 비상시에 달러를 즉시 공급받을 수 있는 일종의 '금융 안전망'입니다.
하지만 미국은 "환율 변동성" 등을 이유로 한국의 통화 스와프 요청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는 동맹국의 경제 안정을 돕기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한국이 금융 리스크를 감수하라는 일방적인 태도로 비칠 수 있습니다.
정부는 투자 손실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로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사업에만 투자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즉, 사업성이 있고 원금 회수가 가능한 프로젝트만 골라서 투자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공식적인 조약이 아닌 양해각서(MOU)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큽니다. 법적 구속력이 없는 '말로 하는 약속'에 가깝다는 뜻입니다. 만약 사업성 판단을 두고 양국 간 의견이 다를 경우, 이를 중재할 명확한 장치가 없습니다. 결국 주도권을 쥔 미국 측의 해석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습니다.
이번 합의는 놀랍게도 양국 정상이 서명한 단일 합의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도자료와 구두 합의, 개별 양해각서(MOU)만 있을 뿐입니다. 이는 미국에게 매우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줍니다. 공식 문서가 없기 때문에 언제든 합의 내용을 자국에 유리하게 재해석하거나,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처럼 이번 협상에서 빠졌던 사안들을 다시 꺼내 들며 한국을 압박할 '만능 카드'를 손에 쥐고 있는 셈입니다.
이번 협정은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한국을 미중 패권 경쟁의 한복판으로 더 깊이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전략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3,500억 달러의 투자가 향하는 곳이 대부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핵심 전략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실상 '한국의 지갑'을 열어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자금을 지원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최대 교역 상대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이는 매우 어려운 외교적 숙제를 안겨줍니다.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과 긴밀한 한국의 입장에서, 이번 합의는 경제와 안보 모두수렁에 빠질 위험이 존재합니다.
윤갑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7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자세히 알면 알수록 걱정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협상 잘 했다며 국뽕 타령을 하지 않나 연임해야 된다는 소리를 하는 인간들 보면서 갑갑해 죽겠네요.
귝민들이 개고생하면서 투자금 매년 200억달러씯 보내면서 다시는 정당성없는 자에게 정권 주면 안된다는 교훈이라도 얻었으면 좋겠다
협상은 개떡같이 해 놓고 잘했다고 사기치는 이똥 정부.
동네이장만도 못한..앞으로가 더 걱정이네요..
이번에도 역시 합의문은 없는 건가요? 자격도 없는 전과자가 대통렁이 되서 셰셰하다 나라가 이 지경이..
실질적 두려움이 몰려오네요
6천억 달러 얘긴 뭘까요? 그동안 그런 얘기가 나온적이 없는데
기업투자에 이것저것 끼워 넣어서 부풀렸다 해도 너무 큰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