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디스크 속 잠자며 사라질뻔한 곡들의 부활, 프로듀서 박주현의 '낙원전파사'를 열다
2025년, K팝이 전 세계를 호령하는 풍요의 시대.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이돌 음악이라는 단일 장르에 편중된 '풍요 속의 빈곤'이 존재한다. 여기, 그 빈곤을 채우기 위해 낡은 전파사 문을 연 프로듀서가 있다. 바로 박주현이다. 그의 새 월간 컴필레이션 앨범 '낙원전파사'는 단순히 과거에 유행하던 쟝르의 노래를 다시 부르는 것을 넘어, 채택되지 못하고, 활동이 중단되고, 하드디스크 속에서 영원히 잠들 뻔했던 노래들의 영혼을 수리해 다시 세상에 내놓는 특별한 프로젝트다. 그와 나눈 대화를 통해 '낙원전파사'의 흥미로운 부품들을 하나씩 분해하고 조립해 보았다.
'낙원전파사'의 컨셉 이미지 (박주현 프로듀서 제공)
Q. '낙원전파사'라는 이름이 독특합니다. 어떤 프로젝트인지 직접 소개해주시죠.
A. "'월간 윤종신' 같은 월간 앨범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철저히 레트로를 지향합니다. '낙원'은 음악인의 성지인 낙원악기상가와 파라다이스, '전파사'는 어릴 적 라디오나 카세트를 고치거나 팔던 동네 전파사와 '널리 전파한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았죠. 즉, 빛을 보지 못할뻔한 곡들을 수리해서 다시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은 욕심을 담은 프로젝트입니다. 앞으로도 80, 90, 00년대에 활동했던 가수들을 객원 보컬로 계속 영입할 계획입니다. 계약 단계라 아직 밝힐 순 없지만, 깜짝 놀랄 만한 분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Q. 앨범 전체에서 90년대 감성이 느껴집니다. 특정 뮤지션에 대한 오마주처럼 들리는 곡들도 있던데요.
A. "그렇게 느끼셨다면, 아마 90% 이상 실제 그 가수에게 주기 위해 만들었던 곡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웃음) 여러 문제로 채택되지 못하고 하드디스크에서 사라질 뻔한 곡들이죠. 최소한의 편곡은 새로 했지만, 가사는 만들던 당시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자는 고집 때문에 전혀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가수를 생각하며 썼던 첫 감정 그대로를 박제한 셈입니다."
낙원전파사의 앨범 커버 (박주현 프로듀서 제공)
Q. 그야말로 엄청난 비하인드입니다. 어떤 사연이 있었나요?
A. "'집(MC.쿤)'은 사실 잊고 있던 곡입니다. 요즘 부동산 문제로 절망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불현듯 떠올랐죠. 사랑하고 늙어가는 과정을 집에 빗댄 노래인데, 집에 대한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잘 담아냈다고 생각해 치열한 고민 끝에 타이틀곡이 됐습니다. '미치겠어(홍지희)'는 2009년 '레이지(R-age)'라는 가수의 타이틀곡으로 꽤 반응이 좋았지만, 가수 개인 사정으로 활동을 접어야 했던 비운의 곡입니다. 유튜브에 당시 뮤직비디오도 있으니, 2025년 버전과 사운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겁니다. '너라는 폐허'는 2000년대 초반 꽤 인지도 높던 R&B 그룹을 겨냥해 만들었던 곡이고요. 그룹의 특징인 합창과 애드리브를 살리려니 여러 목소리가 필요했습니다."
가운데가 조용준 가수 (멀어져 가도). 오른쪽이 현준 가수(말하고 싶어)
Q. 앨범의 마지막 트랙 '건전가요 - 우리의 약속'은 진짜 건전가요인가요?
A. "개인적으로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 발매 요청이 많았던 곡입니다. 가사가 워낙 희망적이고 건전해서, 이왕 레트로 앨범을 만드는 김에 80년대 앨범에 꼭 하나씩 있던 '건전가요' 컨셉을 제대로 지향해보자고 생각했죠."
'건전가요', '별빛메아리'를 부른 가수 김별 (사진=박주현 프로듀서 제공)
'낙원전파사'의 뿌리는 프로듀서 박주현 자신의 서사와 깊이 맞닿아 있다. 그는 2000년대 후반 가수 김경현의 앨범으로 차트 최상위권을 휩쓸었지만, '천안함 피격사건'이라는 국가적 비극 속에 모든 활동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국민적인 사랑을 받던 한 유명 가수의 솔로 앨범 제작을 의뢰받아 작업하던 중, 가수의 개인적인 문제로 제작사와 소송전까지 벌어지며 프로젝트가 통째로 무산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그는 "한 사람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제어할 수 없는 외부 변수들에 큰 피로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결국 그는 변수가 난무하는 대중음악계를 잠시 떠나, 오롯이 음악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영화와 드라마 음악계에 6~7년간 몸을 담았다. 그리고 10여 년 만에 다시 돌아와 자신처럼, 혹은 자신의 곡처럼 '불운'했던 이들을 위한 판을 벌인 것이다.
그가 수리해서 내놓은 노래들은 누군가의 좌절된 꿈의 기록을 다시 이어가려는 희망의 노래들이다. '낙원전파사'의 스피커에서 앞으로 어떤 목소리들이 울려 퍼질지, 주파수를 고정하고 기다려보자.
윤갑희 기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8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이런 훌륭한 곡들이 잠들어 있었다니 왠지 남 모르는 보물을 발견한 느낌입니다
박주현님 축하합니다 칼럼도 쓰시고 음악도 제작하시고 다재다능하네요
기대되는군용
기대됩니다.
오 기대되네요
새로운 곡들이 너무 많이 쏟아져나와 그렇지 너무 쉽게 잊혀진 좋은 곡들이 많긴 해요
하느님은 어떤 이에게는 속이고 사기치고 꼬드기고 유인하고 토사구팽하는 사악함을 몰빵해줌으로써 벌하셨고,
어떤 이에게는 올곧고 세상 제대로 보고 바른 말을 하고 글 잘 쓰고 음악까지 잘 만드는 재능을 몰빵해주어 축복하셨다.
하느님 나빠요~
박주현 님 글을 워낙 잘 쓰셔서 본업이 글 쓰는 분인 줄 알았네요. 앨범 응원합니다!
재간둥이 박주현님의 '낙원전파사'
많이 궁금해지네요.
잘 되실 거라 확신하며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