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단순한 시간의 공백이 아니다. 그것은 또 하나의 세계다. 도시가 잠들었다고 믿는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 어둠 속에서 가장 치열한 시간을 보낸다.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지는 타이어 소리, 현관문 앞에 상자를 놓는 가벼운 마찰음. 이 시대의 편리함은 그 고요한 소리들 위에 축조된다.
그리고 그 편리함을 향해, 어떤 이들은 ‘비인간적’이라 말한다. ‘노동자의 건강권’이라는 무거운 명분을 앞세운다. 야간 노동이 국제암연구소(IARC) 지정 발암 추정 물질이라는 사실은, 물론,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가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의 심야배송을 금지하자고 나선 것은 그 명분에 기댄다.
쿠팡 배송트럭 (사진=연합뉴스)
그들의 주장은 종종 서재의 온기 속에서 나온다.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은 새벽배송의 가혹함에 대해 열변을 토한다. 그들의 글에는 노동의 신성함과 휴식의 존엄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존엄을 외치는 손가락이, 어젯밤 주말 신촌의 어느 클럽에서 여흥을 즐긴 뒤 심야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고 투덜대던 바로 그 손가락일 때, 우리는 잠시 혼란에 빠진다.
그들의 옛 포스팅을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12시에 끊기는 대중교통에 대한 불만이나,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심야 장애인 콜택시 배차를 늘려야 한다는 지극히 ‘진보적인’ 요구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들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인천공항을 통해 심야 비행기를 타고 기꺼이 외국으로 떠난다. 그들의 진보는 어째서인지 자신들이 향유하는 심야 노동(택시, 공항, 대중교통)에는 관대하고, 타인의 식탁에 오를 우유와 빵을 배달하는 심야 노동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그들의 ‘진보’는 때로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은 용인하지만, 24시간 배송되는 물류는 단죄하려 한다. 혹시 그것은 노동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포함되지 않는 특정 기업의 서비스를 향한 선택적 분노라고 무방하다. 모든 노동은 신성하고 모든 야간 노동이 유해하다면, 우리는 병원 응급실과 119 구급대와 반도체 공장의 문부터 닫아야 한다.
가장 심각한 모순은, 그 ‘보호’의 대상이라는 노동자들 자신이 그 보호를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장의 목소리는 탁상공론과는 전혀 다른 결을 지닌다. 쿠팡 위탁 택배기사(퀵플렉서) 약 1만 명이 소속된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가 야간 배송기사 2,4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는 이 ‘보호’가 얼마나 공허한지 드러낸다. 응답자의 93%가 ‘심야배송 제한’에 명백히 ‘반대’했다. 95%는 현재의 야간배송을 ‘지속’하겠다고 답했다.
육체는 정직하다. 민노총의 주장대로라면 이들은 ‘착취당하는 피해자’여야 마땅한데, 정작 그들의 몸은 야간 노동을 ‘합리적 선택’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 이유가 압권이다. 1위는 ‘수입’(29%)이 아니었다. ‘주간보다 교통혼잡이 적고 엘리베이터 사용이 편해서’(43%).
가령 내가 살고 있는 고양시 덕양구에서 서울 신촌까지 17km 거리를 새벽 3시에 이동하면 24분 남짓 걸린다. 오직 그 시간대에만 가능한 속도다. 다른 어떤 시간대에도 그 거리는 최소 1시간 이상을 각오해야 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식인들이 ‘암을 유발하는 어둠’이라고 부르는 그 시간이, 현장의 노동자에게는 ‘스트레스가 적은 고요’일 수 있다는 뜻이다. 지옥 같은 낮 시간의 교통 체증과, 출근 인파와 뒤엉켜 층마다 멈춰 서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버티는 시간이, 어쩌면 한적한 새벽 도로를 달리는 시간보다 더한 발암물질일지 모른다. 육체는 그 미묘한 노동 강도의 차이를 알고 있다. 심지어 쿠팡의 직고용 기사로 구성된 ‘쿠팡노조’조차 "심야배송이 금지되면 이들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며 민노총의 주장에 반기를 들었다.
이쯤 되면 민노총이 과연 누구의 목소리를 대변하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쿠팡노조는 이미 2023년, "조합원의 권익보다 상급 단체의 정치적 활동에 더 집중한다"는 이유로 조합원 95%의 압도적 찬성으로 민노총을 탈퇴한 바 있다. 현장 노동자 대다수의 의사에 반하는 주장을, 이미 현장의 신뢰를 잃은 상급 단체가 ‘노동자 보호’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는 이 기묘한 풍경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더 큰 문제는 이 규제안이 21세기 물류 산업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류는 24시간 365일 흘러야 하는 ‘혈관’이다. 특정 시간(0~5시)을 인위적으로 막는 것은 시스템 전체의 동맥경화를 유발한다. 피가 5시간 동안 멈춰도 괜찮은 생명체는 없다.
5시간의 ‘셧다운’은 노동 강도를 줄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전후 시간대로 모든 물량을 몰아넣어 ‘압축된 고강도 노동’을 강요할 뿐이다. 새벽 5시가 되는 순간, 5시간 동안 멈춰 있던 물량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온다. 그것은 휴식이 아니라, 더 가혹한 노동을 위한 강제적 대기일 뿐이다.
민노총이 대안으로 제시한 ‘오전 5시 출근조’는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주장이다. 현장 기사 89%가 이 대안에 반대했다. 이유는 자명하다. 하루 300만~700만 개의 물량을 실은 1만 5천 대 이상의 차량이 오전 5~9시, 이 나라에서 가장 혼잡한 출근길 지옥으로 쏟아져 나온다고 상상해 보라.
교통 마비는 물론, 출근·등교 인파와 뒤엉킨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사들이 겪을 스트레스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노동 강도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최악으로 높이는 개악이다. 이 과정에서 신선식품 판로가 막힐 중소상공인과 농어민들의 생존권, 그리고 소비자들의 선택권 침해는 그들의 고고한 명분 속에 계산되어 있지도 않은 듯하다.
규제의 ‘선택적 정의’ 또한 문제다. ‘밤에 일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라는 명제를 적용하려면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야간 노동자는 116만 명에 달한다. 준엄한 목소리로 심야노동을 꾸짖는 진보 조간신문 역시, 우리가 잠든 사이 인쇄기를 돌리고 골목을 누빈 초심야 배송 노동이 없었다면 불가능하다. 유독 ‘쿠팡’이라는 특정 기업의 서비스만 겨냥한 것은, 보편적 노동권 보호가 아닌 특정 산업을 겨냥한 ‘표적 규제’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진짜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건강 리스크’다. 운수창고업 종사자의 건강 이상 소견 비율이 71.6%에 달한다는 통계는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하지만 해법은 산업을 죽이는 원시적 ‘금지’가 아니다.
우리는 새벽 비행이 위험하다고 해서 야간 비행을 금지하지 않는다. 대신 ‘항공안전법’에 따라 조종사의 근무와 휴식 시간을 엄격히 관리하는 피로 관리 규정(FTL)을 운용한다. 21세기의 문제는 21세기의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 금지가 아니라 ‘관리’가 답이다.
민노총은 현장 노동자의 밥그릇을 걷어차는 낡은 투쟁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비판하는 ‘진보 지식인’들은, 자신이 누리는 24시간 사회의 혜택을 먼저 반납하는 용기를 보이든가, 아니면 적어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지성을 보여줘야 할 때다. 노동자의 건강과 산업의 지속가능성이 공존하는 실질적 대안을 고민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진짜 ‘진보’일 것이다.
김남훈@팩트파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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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6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이미 택배기사님들 조사가 그 전부터 나왔었고 저렇게 불화까지 있었는데도 현장의 목소리를 아예 무시하려고 했네요
꼭 다른 것도 아닌 새벽배송만을 금지시켜야 겠다는 이유가 노동자들을 위해서는 아닌 것 같아요
저 일 자리가 필요한 사람도 많을 것이고 저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도 많은데 웃기지도 많는 명분으로 저러니 민노총의 저의를 의심할 수 밖에요.
민노총에게 꼭 이 기사 읽어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내가 새벽배송 반대했던 입장이라면 설득 당할 거 같아요
장점이 많으니 소비자나 기사나 새벽배송 서로들 하려고 하겠죠
그걸 바득바득 안 된다고 하는 민노총을 순수하게 보는 사람들 없을 겁니다
좋은 기사 잘 보고 있습니다.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