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박주현 갑을 위해 을의 출입을 막는 을지로위원회
5일, 국회에서 문이 닫혔다. ‘을(乙)’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만들어진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가, 정작 ‘초대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진짜 을을 문밖으로 내쫓는 순간이었다. 6천 비조합원을 대표하는 택배노동자가 그저 회의를 지켜보겠다는 절박함은, 육중한 나무 문 앞에서 가로막혔다. 왜였을까. 그 회의실의 진짜 주인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거대한 조직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무기로 새로운 ‘갑’이 되어버린 민주노총이다.
을지로위원회의 ‘사회적 대화’는 모두를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민주노총이라는 ‘기득권 노조’를 위한 독점적인 무대였다. 그들에게 비노조 택배노동자의 존재는, 자신들이 독점해온 ‘노동자 대표’라는 타이틀에 대한 정면 도전이자, 그들만의 잔치를 방해하는 성가신 소음일 뿐이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이 '갑'의 심기를 정확히 읽었다. 그들은 ‘을’을 위한 위원회가 아니라, 민주노총의 편의를 봐주는 ‘문지기’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약자 중에서도 더 약한 자의 입을 틀어막고, 힘 있는 조직의 독점적 지위를 공고히 해주는 대가는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연대’의 실체다. 현장에서 진짜 고통받는 비조직 노동자의 목소리는 배제하고, ‘조직된 힘’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갑과 손을 잡는 것. 통제되지 않는 진짜 현실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자신들의 정치적 파트너가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주는 것.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떠드는 ‘을을 위한 정치’의 역겨운 민낯이다.
분노해야 한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명의 노동자가 쫓겨난 일이 아니다. 이것은 힘없고 빽없는 모든 서민의 얼굴에 가래를 뱉은 것과 같다. 당신의 목소리, 나의 목소리가 언제든 ‘조직의 힘’에 밀려 ‘초대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부당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다. 그들은 우리를 위하는 척하지만, 실은 우리 위에 군림하며 누가 발언할 자격이 있는지 심사하고 있었을 뿐이다.
‘을지로위원회’라는 간판은 당장 내려야 한다. 그 이름은 현장에서 땀 흘리는 진짜 ‘을’들에 대한 기만이다. 그들은 한 명의 노동자를 쫓아낸 것이 아니다. 민주노총의 갑질에 동조하며, 그들이 외면하고 싶었던 불편한 현실과 자신들이 대변할 자격도 없는 진짜 민심을 쫓아낸 것이다.
그 닫힌 문 안에서 그들만의 ‘대화’는 성공적이었을지 모르겠다. 그들끼리 주고받는 위로와 공감은 얼마나 따뜻했을까. 하지만 기억하라. 그 문을 닫는 순간, 당신들은 ‘을’이라는 이름을 부를 자격을 영원히 박탈당했다.
박주현 칼럼니스트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6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민주노총 간첩당. 가장 역설적인 두 단어. 민주 노총. 민주도 없고 노동자도 없는 권력 그자체인 민주 노총. 드러운 건 알고 있었지만...
저기 어디에 "을"이 있다는거죠. 웃기네요 정말
좋은기사 잘읽었습니다
국회에서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요?
결국 민주당과 민노총은 쿠팡 대신 알리 태무를 위해 일한다는 음모론에 불을 더 지피는군요
을을 위하지 않는 위원회는 문을 닫아야 맞죠
개딸덩과 짝짜꿍 민노총. 기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