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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영동 1985, 카지노, 그리고 이재명의 위증교사
  • 윤갑희 기자
  • 등록 2024-10-01 14:59:18
  • 수정 2024-10-11 08:36:28


여기는 남영동 대공분실. 

한 명의 발가벗기워진 대학생이 노련한 공안 형사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불안하게 떨고 있다. 학생의 몸은 상처투성이다. 의자에 앉은 형사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말한다.


"기억을 되살려! 네가 했던 모든 걸 1초 단위로 다 살려내란 말야!"


학생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며 울먹이지만 형사의 압박은 더욱 강해진다. 더 이상 버티지 못한 학생은 마침내 거짓으로 "그때 학생회장 김**을 만났습니다."라며 무너진다.


영화 남영동 1985의 한 장면 (유튜브 캡쳐) 


형사 : 그날 김**만 만난게 아닐텐데?

학생 : 그, 그럼 제가 누굴 또 만났죠?

형사 : (구둣발로 학생의 무릎을 짓밟으며) 야, 이 새끼야! 네가 누굴 만났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기억을 살려내란 말야!! 

학생 : (절규하며) 정말 기억이 안납니다! 

형사 : 너 같은과에 김** 이라는 여학생 좋아하냐?

학생 : …. 

형사 : 걔를 여기 좀 불러야겠네. 걔 아직 휴학중이던데. 

학생 : (비명을 지르며) 그, 그날! 홍**? 홍**를 만났습니다.

형사 : 이 새끼 정신을 아직 못 차렸네. 

학생 : (바닥을 뒹굴며) 안**를 만났습니다!!

형사 : 그렇지. 처음부터 그렇게 기억을 잘 해냈으면 얼마나 좋아? 홍**는 그때 순천에 내려가 있었는데 니가 어떻게 용산에서 만나? 긴장 안 할래?

학생 : (울먹이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형사 : 그렇지. 여기에 써. 1986년 10월 27일 용산에서 안**를 만나 누구의 서신을 전달했지? 

학생 : 김대중 선생의 서신을 전달하고 공작금 1만불 전달…

형사 : 야, 이 새끼야. 앞서 나가지 말고, 여기 너랑 같은 동아리 선배가 먼저 써 놓은 자술서가 있으니까 그거 달달 외워놔. 한 시간 준다.


위 가상의 시나리오는 학생 운동권과 공안 경찰들을 다룬 고문실의 클리셰 같은 장면이다. 

노련한 형사는 절대 자신의 말로 허위진술을 강요하지 않는다. 모든 진술은 자발적(?)으로 보이도록 유도하는데 그 과정에서 폭력과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형사가 가장 즐겨 쓰는 말은 '사실대로 말해'다. '허위로 자백해!' '내가 시키는대로 말해!' 같은 대사는 아무리 싸구려 영화라 해도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자술서야 어떻게든 강요해 쓰게 만든다 해도, 법정에 나갔을 때 막힘없이 진술하려면 형사가 만든 허위진술의 내용을 학생에게 내재화시켜야 하고, 실제 자신의 기억인 것처럼 완전히 머리 속에 심어줘야 하기 때문에 학생의 입에서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 까지 소위 '조지는' 것이다. 


이재명 위증교사 결심공판에서 이재명은 김진성에게 12번이나 '사실대로 말해'라고 했다며 위증을 교사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주장을 하고 있다. 아무렴, 법조인 출신인 이재명이 대놓고 '위증교사 해줘'라는 대사를 사용하겠는가? 

30분 분량의 녹취를 들어보면 이재명은 위증교사로 보이지 않게, 노골적이지 않게 살살 말을 돌려가며 김진성을 설득하고 이재명 자신이 만든 진실을 김진성에게 계속 주입한다. 그러나 계속된 회유와 설득에도 김진성이 완강하게 '기억에 없다' 고 답한다. 그러자 그제서야 이재명은 이렇게 말했다.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 뭐' 


남영동 대공분실의 형사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만들어놓은 수많은 허위사실을 학생이 스스로 '기억해내게' 할 수 없으니 '레퍼런스'를 툭 던져준다. 이미 깔끔하게 작업이 끝난 동료의 자술서다. 이재명의 경우에는 김진성에게 전달한 자기 재판의 '변론요지서' 가 그것이다. 


대공분실의 형사는 또한 학생의 약점을 잡아 겁박한다. 학생이 짝사랑하는 여학생을 언급하며 여차하면 불러서 조질 수 있다는 공포감을 심어준다. 이 장면은 이재명도 아주 능숙하게 해내는데, 위증교사 녹취록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위증교사 녹취파일 (사진=더불어민주당 박균택 의원 유튜브 캡쳐)

2000년 1월 26일에 김건식이라는 인물이 '전국임대아파트연합위원회'라는 단체를 결성해 당시 성남에서 변호사를 하던 이재명을 비난하는 시위를 한 바 있다. 

이재명은 그때 일을 언급하며 '당시 김진성 당신이 (김건식에게 나를 비난하는 시위를 한 댓가로) 3천여 만원을 주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당황하고 부인하는 김진성을 코너로 몰아간다. 

한국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협박으로 느껴질 수 있는 장면이다. 

'내가 너의 약점을 잡고 있으니 시키는대로 해', 

'내가 시키는대로 증언 안 하면 네 약점을 잡아 괴롭히겠어' 

이런 무시무시한 저의가 느껴지지 않는가? 


만약, 검찰이 이 일을 협박죄로 기소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재명은 "협박죄의 필수 구성요건인 '해악의 고지'가 없지 않습니까?"라고 거세게 항변할 것이다.

맞다. 요새는 아무리 삼류 조폭이라 해도 쌍팔년도 조폭영화처럼 직접 '해악의 고지'를 하지 않는다.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카지노'에서도 그랬다. 

차무식은 필리핀 영사를 협박하지만 '해악의 고지' 대신 이렇게 말한다. 


'제가 관심이 있으면 다 알 수 있는겁니다.'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카지노'의 한 장면 (유튜브 '지무비' 캡쳐) 

9월 30일 이재명의 위증교사 결심공판에서 징역 3년이 구형된 후,  민주당 의원들과 종편 패널들, 지지자들과 유튜버들 모두가 판에 박힌 듯 '이재명은 김진성에게 '사실대로 말하라'고 12번이나 말했다. 그러니 위증교사가 아니다' 라고 말한다. 

그 분들은 아마 드라마 '카지노'를 보며 차무식이 '필리핀 영사의 삶에 관심이 참 많구나'라고 느끼셨을까? '얼마나 관심이 많으면 영사의 딸이 다니는 유치원을 다 알겠나' 하며 말이다. 


이래도 영 이해가 안 된다면 김진성의 입장이 되어보자. 

당시 백현동 사업에 관여하고 있던 김진성 입장에서, 백현동 사업을 꽉 잡고 있는 김인섭의 뒷배인 이재명의 갑작스런 전화를 어떻게 받아들였겠는가. 정진상 등 이재명의 수하들의 설득을 거부하자 이재명이 직접 전화를 걸어온 것인데 말이다. 

모든 면에서 슈퍼갑이며 차기 대권주자인 현직 경기도지사, 자신의 상사였던 김병량의 정적이었던 그가 자신의 재판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들었다고 해 주면 되지 뭐' 라고 말하는 것이 위증교사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남영동 대공분실의 형사와 '기억이 없는' 억울한 학생의 관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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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me26782024-10-04 01:59:10

    “제가 단 1원이라도 받았다면 이명박근혜 정부 10년간 살아남을 수 있었겠느냐”
    선거 때 저 말 듣고 당연히 직접 안 받겠지? 싶었는데 법망을 피해 죄 짓는 방법들을 너무도 잘 아는  것으로 보이는 전과 4범. 

    김진성 약점을 말하는 대목 무섭네요.
    "그때 3,340 몇만원인가 뭐 줬다고."

    모 배우의 거듭되는 폭로에 “이 분이 대마 좋아하지. 요즘도 많이 하시나?” 했다더니
    저런 수법이 먹힌다는 걸 체감하고 무기로 써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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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4-10-03 11:56:24

    배경을 알고들으니 저 녹취록이 얼마나 옥죄는 협박인지 이해가 가네요.설명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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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4-10-02 13:16:41

    정치신세계 듣고 기사 읽으니 머리에 쏙쏙 들어오네요. 방송하랴, 기사 쓰랴 열일하시는 갑희님, 남훈님 그리고 천군만마 같은 선 논설위원님 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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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4-10-02 10:56:24

    돈 준것 안다는 저 발언 별 생각없이 들었는데 진짜 소름 끼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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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4-10-02 00:00:49

    윤갑희 기자님 참 잘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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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4-10-01 21:03:51

    무시무시한 범죄를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고
    전혀 위기감 느끼지 않는 저 멘탈 강철 멘탈
    이재명 법정 구속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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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4-10-01 19:31:15

    막산이에 관해 범죄영화화 할 소재가 차고 넘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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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4-10-01 18:08:34

    위증교사 무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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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4-10-01 18:04:25

    본인 계좌로 받은 돈이 없으니 청렴한거고 본인 목소리로 범죄를 계획한 녹음파일이 없으니 증거도 없는거고 이젠 녹음파일까지 나오니 위증해달라 말을 안하니 위증교사가 아니다라며 오로지 이재명 무죄만 외치는 사람들
    순진한 척을 어디까지 할건지
    이런 사람들이 오늘의 민주당에게 거짓말 할 용기를 주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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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4-10-01 17:12:09

    예리한 시각과 심도 있는 분석,
    프레임메이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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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squf242024-10-01 15:14:37

    가상 시나리오가 어마무시 하네요. 가상만은 아닐 것 같아서 소름이 끼치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이재명은 없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어디에 대입해도 다 맞아 떨어지는,.. 악의 완결판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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