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2025. 9. 9.
'위대한 협상'은 없었다, ‘협상 교착’이라는 또다른 거짓말
감당 못 할 약속으로 국제적 조롱거리 자초
실패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현실을 성공으로 둔갑시킨 정부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한국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한미 관세협상이 ‘교착 상태’라며 현실의 편린이라도 드러낸 것은, ‘합의문도 필요 없는 완벽한 성공’이라던 완전한 거짓에 비하면 일보 전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 ‘교착’이라는 단어마저 본질을 가리는 또다른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것은 협상이 막힌 게 아니다. 애초에 ‘협상’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판이었다. 지갑에 300만 원밖에 없는 사람이 3억 5천만 원짜리 집을 사겠다며 계약서 쓰자고 하는 격이다. 집주인이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하지, ‘협상이 교착됐다’고 말하겠는가.
정책실장 스스로 우리가 1년에 조달 가능한 금액이 200억~300억 달러를 넘기 어렵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런 나라가 어떻게 35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돈을 약속할 수 있단 말인가. 초등학생에게 산수를 가르쳐도 이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현실 감각이 제로에 가까운 ‘허풍’으로 시작했으니, 협상의 진행은 꿈도 못 꾸는 것은 필연적 결과다.
미국 측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화와 협상의 상대를 만난 것이 아니라, 현실 감각 없는 유령과 마주 앉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무슨 대화가 오가고 무슨 협상이 진전되나. 시작부터 끝까지 ‘협상 불능’ 상태였던 것을, 이제 와 ‘교착’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있다.
이것은 외교가 아니다. 정치 쇼다. 어떻게든 미국 대통령과 만나 사진 한 장 찍고, 귀국해서는 ‘역사적 성과’라며 지지층을 향해 환호하는 것. 그 목적을 위해 나라의 미래를 담보로 위험천만한 도박을 벌인 것이다. 국익을 위한 냉철한 계산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오직 정권의 이익을 위한 조급함과 과시욕만 번뜩일 뿐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대통령은 직접 국민 앞에 서야 한다. ‘교착’이라는 기만적 단어를 거두고, 애초에 왜 말이 안 되는 약속으로 나라를 망신시켰는지 해명해야 한다. 텅 빈 협상장을 ‘위대한 성공’으로 둔갑시킨 이 위험한 외교 도박의 대가를 왜 애먼 국민이 미국 땅에서 쇠사슬에 묶이고 추방당하는 수모로 치러야 하는가?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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