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표의 환상과 법복의 정치
민주주의의 이면에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아이러니가 있다. '1인 1표의 평등'이라는 환상과, 그 환상을 조용히 뒤집어엎는 법복 입은 이들의 권력 사이의 괴리다. 투표소에서 평등하게 주어지는 한 표의 권리가 있다고 믿지만, 실상은 소수의 판사들이 내리는 판결이 수백만 표의 무게를 뛰어 넘거나 아예 판을 뒤집기도 한다는 현실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숫자의 게임이다. 더 많은 표를 얻는 쪽이 승리한다는 단순한 규칙. 하지만 이 게임의 규칙을 해석하고, 때로는 새로 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판사들이다. 법정에서 내려지는 판결은 단순한 분쟁 해결을 넘어 정치적 지형도를 바꾸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지난 총선을 생각해보자. 민주당과 야권이 190석을 얻었던 결과가 과연 이재명의 탁월한 리더십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오로지 윤석열과 여당의 실책 때문만이었을까? 그 이면에는 우리가 주목하지 않았던 사법부의 결정적인 개입이 있었다.
재작년 9월, 유창훈 부장판사는 이재명 대표의 영장 실질 심사에서 다소 의아한 논리로 영장을 기각했다. 법리적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국회가 어렵사리 뜻을 모아 체포동의안 표결을 이끌었지만 그에겐 민의의 전당인 의회의 표결도 중요치 않았다. 그 타이밍도 흥미로웠다. 영장 기각 직후 강서구청장 선거가 있었고, 여당은 참패했다. 그 순간부터 여당은 균형을 잃고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야당에게는 훗날 비명횡사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한 판사의 판결이 한 선거의 결과를 바꾸고, 그 선거 결과가 다시 정치 지형도를 바꾸는 연쇄 반응. 19세기 영국의 과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말했던 '나비효과'가 한국 정치에서도 그대로 재현된 셈이다. 브라질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갯짓을 하면 텍사스에 토네이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론처럼, 법정의 판결 하나가 정치의 태풍을 일으킨다.
작년 2월, 또 하나의 중요한 판결이 있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항소심 판결이다. 징역 2년 실형이 선고되었지만, 법정 구속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판결은 정치권에 또 다른 변수를 만들어냈다. '조국 혁신당'이라는, 한국 정치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인물 중심의 정당이 탄생한 것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정치적 면죄부라고 비난했고, 또 다른 이들은 사법부의 양심적 판단이라고 옹호했다. 어느 쪽이든,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판결이 야권 진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비조'와 '지민'의 연대라는 새로운 정치 구도가 형성되었고, 이는 총선의 결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 결과는 거대야당의 등장으로 윤석열이 계엄사유중 하나라 밝힌 ‘의회 폭거’의 밑바탕이 되었고, 어찌됐건 그 여파는 탄핵과 조기대선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20세기의 유명한 역사학자 에드워드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정치 역시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로 이루어지지만, 한국에서만큼은 그 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이 때때로 판사들이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21대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국민이 한 표씩 행사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민주적 절차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현실이 숨어있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한 이재명의 선거법 3심의 판결이 앞으로의 정치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우리가 어떤 후보에게 투표를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어쩌면 진짜 선거는 이미 법정에서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스갯소리로 21대 대통령 선거는 평범한 서민들이 뽑는 선거가 아니라, '위대하신' 조희대 대법원장의 뜻에 따라 지명하는 선거는 아닐까 라는 고민이 든다. 이런 글을 쓰는 순간에도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는 이유는, 그 속에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의 조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독재 정권에서도 선거는 있었다. 다만 그 선거의 결과가 미리 결정되어 있었을 뿐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선거 결과를 직접적으로 조작하지는 않지만,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을 조작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결과를 유도할 수 있다. 특히 사법부의 판결은 그런 변수 중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다.
누군가는 이런 현실을 보고 절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시민의식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투표권이 있다는 것만으로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않는다. 시민들은 선거일 하루만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눈에 띄는 의회나 행정부를 넘어 사법부까지 포함한 권력기관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프랑스 철학자 푸코는 "권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 권력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에 부합하게 행사되도록 감시해야 한다. 특히 판사들의 판결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을 인식하고, 그들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하는지 주시해야 한다.
이 전례 없이 빠르게 진행되는 심리가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여러 차례 이해할 수 없는 판결문과 재판결과를 받아들고 누더기마냥 생채기가 난 마음으로 지금은 어떤 예상조차 불가능한 게 사실이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사법부가 망쳐온 민주주의와 국내 정치상황을 본 궤도로 돌려놓겠다는 법관으로서의 자존심과 정의감이 살아있길, 미련한 미련일줄 알면서도 또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