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이 스스로 '내가 대체 뭘 그리 잘못했냐?'는 항변을 했다는 뉴스에 머리가 멍해졌다.
범죄자들에 대해서 종종 여러 종류의 성장 서사를 듣게 된다. 어려운 가정 형편, 불우한 어린 시절, 가난의 굴레. 이런 이야기들은 대체로 그들이 범죄를 저지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다. 그들이 어려운 환경을 이겨냈다는 스토리에는 박수를 칠 수 있지만, 그 환경은 범법의 핑계도, 욕설의 핑계도, 더러운 인성에 대한 핑계도 될 수 없다.
생각해보면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녹록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학창 시절에는 봉투를 받기위해 괴롭히던 선생님들을 만났고, 과연 선생이 맞나 싶을 만큼 분풀이성 구타가 일상처럼 자리 잡은 교실을 견뎌냈다. 군대에서는 겨우 한두 달 먼저 입대한 동년배들에게 새벽까지 맞으며 암기 과제를 외우기도 했다. 우리 세대의 대다수가 그랬듯이. 하지만 그 모든 불합리함 속에서도 법을 지키는 일을 어려워 한 기억은 없다. 지금까지 과속범칙금조차 내본 적이 없지만 이또한 자랑거리조차 안된다. 그저 법이 살아있는 나라의 시민으로서 당연한 생활 방식일 뿐이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를 석권하고,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역사를 새로 쓰고, 한국 드라마가 세계인의 눈물을 자아내는 시대가 왔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국민들이 금모으기 운동을 했던 그 나라가, 이제는 문화 강국으로 우뚝 선 것이다. 하지만 그 화려한 성취의 이면에서 우리는 또 다른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전과 5범이 대선 유력 주자로 거론되는 현실. 냉정하게 말해보자. 미국에서 오바마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건 흑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도덕성과 식견이 국민의 신임을 얻었기 때문이다. 범죄 전력이 있는 사람이 공직에 도전하는 건 법적으로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을 옹호하기 위해 타인에 대한 혐오 발언을 서슴지 않는 모습은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2찍은 아니겠지?"라는 말 한마디에 담긴 혐오의 깊이를 생각해보라.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이들을 한 단어로 타자화하는 순간, 우리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있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언어를 통제하여 사고를 통제했던 것처럼, 특정 집단을 지칭하는 혐오 단어는 결국 타인을 대하는 태도와 직결된다.
어린 시절 읽었던 '마틴 에덴'의 주인공처럼, 가난하고 험난한 환경에서도 자신을 갈고닦아 성공한 사람들은 많다. 잭 런던이 그랬고, 링컨이 그랬으며, 우리 주변의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자신의 배경을 핑계 삼지 않았다.
법을 어기지 않고 살아가는 것. 그것은 특별한 미덕이 아니라 시민의 기본적인 자세다. 난 때때로 한강변을 산책하며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가고 있는지를.
어제 밤 해외에서 곡을 의뢰했던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폭싹 속았수다가 정말 좋아. 너희 나라에 가보고 싶어." 그 순간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자랑스러운 내 나라의 모습과, 정치적 혐오 발언이 오가는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자격이 있다. BTS와 봉준호 감독이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은 것처럼, 우리의 정치 문화도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수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진정한 선진국의 모습이다. 법 앞에 평등하고, 과거의 잘못을 직시하며,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
우리의 자존심은 화려한 업적이 아니라 정의로운 일상에서 비롯된다. 그 평범한 진실을 기억해야 할 때다.
그리고 한가지만 부탁한다. 국민들의 수준을 너무 낮게 평가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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