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 박주현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배우이자 감독, 선댄스 영화제의 창립자인 로버트 레드포드가 2025년 9월 16일, 89세의 나이로 유타 자택에서 별세했다. 그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선댄스 키드부터 '스팅', '위대한 개츠비' 등 수많은 작품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감독으로서 '보통 사람들'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기도 했다. 그의 죽음은 단순히 한 명의 영화인이 사라졌음을 넘어, 한 시대의 종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로버트 레드포드의 부고 앞에서, 나는 그의 영화가 아니라 유타의 황야를 떠올렸다. 바람이 깎아낸 붉은 사암, 끝없이 펼쳐진 땅 위로 쏟아지는 거친 햇살. 그의 얼굴은 풍경이었다. 할리우드의 인공 조명이 아닌, 유타의 태양 아래서만 완성될 수 있는 깊은 협곡과도 같은 주름을 가진 풍경.
할리우드는 그를 완벽한 신화로 빚어냈고, 그는 그 신화를 기꺼이 버렸다. 그의 신화 뒤에는 언제나 운명 같은 선율이 흘렀다. "Memories, light the corners of my mind..."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듯, 영화 '추억'의 주제가는 이념의 벽 앞에서 부서지는 낭만의 파편을 위한 진혼곡이었다. 그는 할리우드라는 제국의 가장 높은 성벽 위를 거닐던 왕자였다.
그런데 그는 왜 떠나야만 했을까. 왜 모두가 선망하는 성벽에서 뛰어내려 황야로 향했던 것일까. 그는 알았던 것이다. 성벽 안의 삶이 얼마나 안락하고 예측 가능한지를. 그리고 그 안에서는 결코 새로운 씨앗이 싹틀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자신의 가장 유명한 배역, '선댄스 키드'의 운명을 스스로 체화하기로 결심했다. 시스템의 총아에서 시스템 밖의 무법자로, 그는 유타의 황무지를 사들여 그곳에 씨앗을 심기 시작했다.
그것이 '선댄스'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메마른 땅이었다. 할리우드의 기준으로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버려진 이야기들이 모여드는 곳. 하지만 레드포드는 그 메마른 땅에 파고든 뿌리의 힘을 믿었다. 그는 물을 대고 땅을 갈았다. 할리우드가 외면한 독립적인 목소리들, 기이하고 불편하지만 살아있는 이야기들이 그 황무지에서 하나둘 싹을 틔웠다. 타란티노의 수다스러운 총잡이들도, 코엔 형제의 기괴한 악당들도 모두 그가 일군 땅에서 자라난 야생의 열매들이었다.
그의 필모그래피라는 플레이리스트를 다시 재생한다. 존 배리가 작곡한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제곡, 그 장엄한 현악기 선율은 이제 아프리카의 대지가 아닌, 그가 평생을 바쳐 일군 유타의 황야를 비추는 하늘의 소리처럼 들린다. 모든 것을 잃고 홀로 바다에 남았던 '올 이즈 로스트'의 침묵은, 화려한 미소 뒤에 가려져 있던 한 인간의 고독한 결단과 맞닿아 있다. 그는 가장 시끄러운 세상의 중심에서 가장 고요한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했다.
이제 그는 그토록 사랑했던 유타의 땅으로 돌아갔다. 그의 육신은 소멸했지만, 그의 정신은 황무지에 뿌리내린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영원히 숨 쉴 것이다. 그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차가운 별을 새기는 대신, 유타의 황야에 따뜻한 별들을 심었다. 그리고 그 별들은 지금도 밤하늘을 수놓으며, 길 잃은 이야기꾼들의 새로운 지표가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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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2개의 댓글이 달려 있습니다.
어릴 적 티브이에서 해주던 영화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노래를 좋아하기 시작했던 계기였는데 이렇게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잘생긴 금발 남자가 왜 저렇게 생긴 여자를 좋아할까(ㅋㅋㅋ) 했는데
최근에 다시 그 영화를 봤는데 여전히 이해 안 가는...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영화 제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앉아서 여주인공 신발끈을 묶어주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참 멋있었던 사람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