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파주시 임진각 미국군참전비에 게양된 태극기와 성조기.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한미 무역 협상 과정에서 한국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지출을 대폭 늘리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공개 지지하라는 등의 안보 관련 요구를 검토했던 것으로 드러나 파장이 일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무역 이슈를 넘어 한국의 국방비 부담 증가와 외교적 선택에까지 영향을 미치려 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동맹국과의 관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 사례라는 점에서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의 내부 문건에는 한국의 국방 지출을 GDP 대비 2.6%에서 3.8%로 약 50% 가까이 증액할 것과,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에게 요구했던 'GDP 대비 5%'보다는 낮은 수치지만, 한국의 경제 상황과 안보 환경을 고려했을 때 결코 적지 않은 부담이다. 특히 목표 시한이 불투명해 언제까지 이 수치를 달성해야 하는지 명확하지 않은 점은 더욱 큰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개 지지 요구다. 전략적 유연성이란 주한미군의 작전 범위와 역할을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중국 견제 등 미국의 글로벌 전략에 따라 자유롭게 운용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는 한반도 안보를 넘어 동북아 지역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민감한 사안으로,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크게 좁힐 수 있다. 당시 정부는 무역 협상에서 방위비 문제는 다뤄지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이 같은 요구가 실제 오갔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 같은 '압박 외교'는 비단 한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WP는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무기로 삼아 대만, 인도, 인도네시아 등에도 국방 지출 증액이나 미국 군사 장비 구매 확대를 압박하려 했던 정황을 보도했다. 또한 캄보디아의 해군 기지 접근, 이스라엘 내 중국 기업의 항구 소유권 박탈 요구 등 중국 견제를 위한 다각도의 압박을 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동맹국과의 관계를 '안보'라는 명분하에 일방적인 '거래'로 인식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냉혹한 현실 인식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