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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민] 이순재라는 사람
  • 김성민 칼럼니스트
  • 등록 2025-11-27 09:32:17
  • 수정 2025-11-27 09:56:18

이순재 선생의 추모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민정당 참여가 지울 수 없는 과오라나. 정말 비판할 잘못이었다면 오늘까지 참지 말고, 이순재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작년에 했으면 됐다. 지금까지 참을 수 있는 문제라면 발인까지는 참을 수 있지 않나. 그걸 하루를 못참고 비난을 퍼붓는다. '나의 드높은 정의감'은 생물 고등어같이 펄떡펄떡 뛰는 것이라 하루 묵히면 회를 못치기 때문이다. 상대를 악마로 만들어 신나게 까대며 정의감을 불태워야 한다. 한시가 급해 엉덩이가 들썩들썩거린다.


고 이순재 배우 (연합뉴스 자료사진)

선생은 면목동에서 경쟁하던 민주당 이상수 장관의 후원회장을 했다. 정치는 한때 그런 것이었다. 이순재 선생은 정치참여에 대한 사정을 20년전 인터뷰에서 충분히 말했다. 2005년 8월 26일, 한겨레의 씨네21 인터뷰다. 


-(씨네21 김혜리 기자)기꺼이 대답하실 질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민정당 창당 발기인이었고 1992년 민자당 중랑갑 지역구 의원으로 14대 국회에 등원하셨습니다. 그리고 15대 선거 때는 불출마하셨죠.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와 떠날 때의 심경을 들려주실 수 있나요?


=1980년 탤런트 협회장을 이낙훈씨가 했는데 비례대표를 배정받았어요. 전두환 정권이었지만 대중예술가들에게 집권여당에서 비례대표를 줬다는 것은 굉장한 사실이었어요. 우리로선 정권의 정체성은 차치하고 고마웠어요. 정치적으로 해결하고 법률적으로 보완하고 사회인식상 재고해야 할 우리 문제가 너무 많았거든. 이 나라는 늘 문화정책을 말단에 두고 문화를 생활의 액세서리로나 생각하지 문화의 부가가치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이 없었으니까. 특히 딴따라라 불리는 탤런트들은 방송이라는 절대적 조건 때문에 코가 꿰어 “너희가 국민 정서를 무시하는 거냐?”식의 대답만 듣고 고생이 컸지. 1년에 몇 만원 보수를 올리기 위해 투쟁했다고. 전두환 정권을 접촉해서 허락받고 1980년에 스트라이크를 했어.


-파업을 전두환 정권에 비공식적인 절차로 허락받았다는 말씀인가요?


=그것이 그쪽에 참여하며 끌어낸 조건이야. 일주일 파업해서 그때 한 20% 올린 것이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우리의 대표가 국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달라질 것 같았고 친한 이낙훈에게, 가서 열심히 하면 도와주겠다 했더니, 돕는 조건의 하나가 입당이래. 정치 생각은 없었지만 핵심에 들어가면 뭔가 바꿀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일단 들어가면 탤런트 나부랭이인데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냐? 그랬더니 자꾸 자리가 올라가더라고.


-지나치게 제대로 하셨군요. (웃음) 13대 선거에 750표 차이로 낙선하고 14대에 당선됐을 때 당시 방영 중이던 <사랑이 뭐길래>의 대발이 아버지 이미지가 보수표를 결집했다는 비난도 있었는데요.


=난 이렇게 대꾸했어요. 그 드라마는 내가 입후보할지 정하기 전인 전년도 10월부터 시작했고 뜰 줄도 몰랐고 연기는 내 생업이다. 아내를 패는 짓 따위 하지 않는 <가족>이라는 더 좋은 드라마도 동시에 했는데 그 드라마 얘기는 왜 안 하냐.


-15대 불출마 선언은 대중예술인을 대변한다는 동기가 충분히 충족됐다고 보셨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환멸도 있었습니까?


=4년 동안 상임위 바꾸지 않고 문공위에만 있었어요. 방송국에 일임하는 것으로 돼 있는 저작권법 개정안에 “동의가 있을 시에는”이라는 문구를 넣었고 사전제작의 중요성을 강조했죠. 환멸도 있었지. 난 정치는 신의와 신조라고 생각해요. 선진국의 정당은 이념과 신념의 집합체야. 그런데 여기는 평생동지라더니 4년 지나니까 다 변하는 거야. JP는 안 된다던 사람이 JP가 당을 나가니 “현실이 그렁께” 하면서 따라나가기에 막 욕해줬지. 내가 울분을 느끼고 엎는다고 되는 건 아니지만, 이게 보통 헷갈리는 상황이 아닌 거지. (좌중 폭소) 또 내가 이미 60대인데 동료나 후배에게 폐를 안 끼치고 일할 수 있는 저력이 남아 있을 때 본업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당이 알기 전에 <조선일보> 기자에게 미리 공언해버리고 그만뒀지.



정리하면 이렇다. 대중예술인은 딴따라로 취급받으며 무시받던 직업이었다. 탤런트는 슈퍼 갑 방송국에 소속된 을이었다. 이순재는 대중예술인 직능을 대표하는 입장으로 정치에 투신해 활동했고, 그 결과 탤런트의 입지가 실제로 올라갔다. 문공위 활동만 하면서 저작권 개정과 사전제작에 기여했다. 신의 없는 정치에 환멸을 느껴 정치를 그만두었다. 일할 수 있는 나이에 본업으로 돌아가 활동하려 애썼다. 


나는 납득이 가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대중예술인이 선택할 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뽀빠이 이상용은 민자당의 영입요구를 거부한 후 공금횡령 누명을 쓰고 사회적으로 매장되어 죽는 날까지 복권되지 못했다. 대중예술인인 만큼, 대중의 뜻에 어긋난 행동을 할 경우 그만한 대가를 치루어야 했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김병조의 경우 사전에 쓰인 대본대로 '민정당, 우리 민족에게 정을 주는 당'이라 했다가 하루 아침에 몰락했다. 정치에 발 담근 이순재를 대중은 버리지 않았고, 이순재도 대중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순재는 대중에게 사랑받는 아버지상을 계속 연기했고 많은 존경을 받았다. 386, 486, 586 운동권의 아버지도 민정당, 민자당을 찍었다. 아버지의 투표가 마음에 안 들어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자식은 아버지의 당적을 보고 슬퍼하지 않는다. 이순재처럼 치열하게 살아간 아버지의 장례식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추모하는 방법을 잃은 정치는 폭력일 뿐이다. 어떻게 웃고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 모르면서 어떻게 정의감을 불태우려 하나. 대중을 웃고 울리는 연기법을 한평생 고민한 이순재 선생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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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dongong2025-11-27 14:41:26

    칼럼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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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est2025-11-27 10:28:11

    지금의 정보통신 IT강국을 만든 기초를 김대중이 아닌 전두환이 만들었다는 기록을 보고 깜짝 놀란 경험이 있습니다
    과연 그동안 난 뭘 보고 민주당만을 지지하고 눈을 가리고 있었던 걸까 라고
    고 이순재 배우님을 잠깐 왜곡된 시선으로 보았던 제 자신 반성하며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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