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2026. 9. 30.

설강화 방영 중단 요구하더니… 北사과도 부정 '암살자(들)' 음모론엔 찬사

좌=설강화 포스터, 우=암살자(들) 포스터. © JTBC, JTBC 스튜디오, 하이브미디어코프
좌=설강화 포스터, 우=암살자(들) 포스터. © JTBC, JTBC 스튜디오, 하이브미디어코프

지난 2021년 방송된 JTBC 드라마 '설강화'는 방영 전후로 참혹한 몰매를 맞았다. 민주당과 친여(親與) 성향 커뮤니티는 "민주화 운동권 내에 간첩이 속한 것처럼 역사를 왜곡했다"며 방송 중단과 광고 협찬사 불매 운동을 벌였다.


급기야 주연 배우인 지수가 모델로 활동하던 명품 브랜드 '디올'마저 불매 타깃으로 삼았고, 이는 향후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논란 때 해당 브랜드를 향한 적대감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 밖에도 JTBC 주말 프로그램 광고주들에게 쏟아지는 항의 전화에 PPL이 중단되거나 재방송이 대거 취소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운동권 학생 여정민 역을 맡았던 배우 김미수 씨는 수만 개의 인격 모독성 악플에 시달리다 31세를 일기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5년이 지난 지금, 창작의 자유와 역사왜곡을 다루는 민주당과 친여 매체의 잣대는 정반대로 변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다루며 '남한 당국의 자작극' 및 '경호원 저격설'이라는 북한발 음모론을 확산시키는 영화 '암살자(들)'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문화계 인사들의 맹목적인 찬사가 이어진다.


드라마 '시그널', '킹덤'으로 대중성을 인정받은 김은희 작가는 "'진실.' 암살자(들)을 응원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고, '태양의 후예', '미스터 션샤인'의 김은숙 작가 역시 "'신념'을 믿는 우리 '암살자(들)'에 마음이 먹먹하다"라며 작품의 화두에 힘을 실었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 음모론 영화에 '진실'과 '신념'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힘을 실어준 것이다.


그밖에 경향신문은 "국힘은 속상할지 몰라도···영화 ‘암살자(들)’ 150만 돌파 ‘1위 질주’"등의 기사 제목으로 국민의힘을 조롱하는 것은 물론 국민의힘 외에는 영화 내용을 지적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경제는 오늘(1일)자 사설을 통해 "'암살자(들)', 창작 자유도 역사적 사실 위에 서야 한다"며 창작의 자유를 방패삼은 제작진 측의 태도를 꼬집었고, MBC 사장 출신인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박정희 정권을 배후로 의심하는 것에 대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암살자(들)' 영화가 주장하는 서사는 북한이 과거 체제 선전을 위해 제작했던 정권 홍보물과 판박이다. 북한은 1990년대 김정일의 지시로 70부작 안팎의 선전 영화 '민족과 운명'을 제작했다. 대단원을 여는 1부에서는 무대 뒤 커튼에 숨어 있던 대통령 경호원이 권총을 겨눠 육영수 여사를 저격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식장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1974년 사건 직후부터 육 여사 저격사건에 "박정희가 자기 처를 제물로 바쳤다"며 남한 자작극 설을 유포하던 북한의 대남 공작용 논리를 그대로 담아낸 것이다.


2014년 탈북해 최근 TV CHOSUN 유튜브 채널 '뉴스트라다무스'에 출연한 한 씨는 "북한에 있을 때 보기 싫어도 강제로 봐야 했던 '민족과 운명'과 이번 영화 '암살자(들)'의 내용이 너무나 똑같아 충격을 받았다"며 "대한민국 정부를 부정하기 위해 북한 주민 선전용으로 만들었던 영화의 논리가 한국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북한 당국조차 20여 년 전에 이 음모론을 공식적으로 철회하고 사과했다. 북한은 1970~80년대 내내 육영수 여사 피습이 자작극이라고 주장했으나, 2002년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가 방북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74년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기도 등은 아래 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른 일"이라며 사건의 배후를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이에 이채림 기자는 "김정일조차 사과하며 포기했던 허구의 음모론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버젓이 영화로 제작되어 유포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지적했고,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은 "김정일도 2002년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기도와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 바 있다"라고 강조했다.


사건 발생 30년 뒤인 2005년 공개된 외교 비밀문서와 한일 양국의 수사 기록이 자세히 남아있다.


당시 우리 외무부 문서에 따르면 "재일조총련의 사주를 받은 문세광의 집을 수색한 결과 공산당 관련 서적이 다수 발견됐으며, 조총련의 사주에 따라 사전 모의와 계획하에 범행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일 정부의 모든 외교·사법 공식 기록을 통틀어 문세광 외에 다른 저격범이나 경호원의 총격이 존재했다는 기록은 단 한 줄도 없다.


제작진은 지난 28일 "영화 어디에서도 특정 인물을 사건의 배후로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영화 속 가설과 극적 설정을 역사적 사실로 제시하고 있지도 않다"는 공식입장을 냈다.


한편, 1일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이 어제(30일) 하루 동안 12만 2293명의 관객을 기록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고, '암살자(들)'은 7만 1942명의 관객을 개록해 2위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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