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2024. 11. 13.
이재명의 불필요한 거짓말, 역시 마성(魔性) 때문일까

십 수명의 아버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아버지가 십 수가지 버전이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왔었다. 정치인이 공적인 자리에서 상황에 맞게 부친을 설명해 본인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려는 시도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데 각각의 주장이 상충되는 것이 첫 번째 문제요, 그 버전이 너무 많아 상식의 범위를 벗어난다는 것이 두 번째 문제다.
본인의 성취를 드라마틱하게 설명하고자 '법대 나온 아버지'의 원을 풀었다고 말하거나, 강원도 유세에서 유권자들에게 친밀감을 드러내고자 '삼척에서 광부노동자로 일한 아버지'가 등장하거나, 개천에서 용 난 본인의 출세를 강조하려 아버지가 초등학교 졸업의 화전민 출신이 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전문대학을 나오시고 했고, 한 여배우에게는 서울대 출신이라 자랑을 하기도 한다. 그의 아버지는 때로 교사가 되기도 하지만 그의 동생에 의하면 경찰 공무원 출신이 되기도 한다.
도박중독자가 되기도 하지만 가정교육 잘 받은 인성을 강조하기 위해 아버지는 '평생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성실하게 사셨던 분'이 되기도 한다. (도박은 남의 것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베풀기 위한 것인가보다). 고생 많이 한 아버지는 환경미화원이 되셨다가 공군하사관이 되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허언을 하려는 욕망이 있다면 그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치밀함도 있을텐데, 전자가 후자를 늘 이기는 모양이다.
양립불가능한 두가지 생일

심지어는 한 자서전에서는 본인의 생일이 '아버지의 임종 시점과 같다'더니('이재명은 합니다. 위즈덤하우스), 다른 자서전에서는 '어머니가 점을 쳐서 알아냈다'('이재명의 굽은 팔, 김영사)고 한다. 이런 거짓말이 혹시 정치적인 실익이 있을까? 딱히 있을게 뭔가! 이쯤 되면 거짓말 자체에 탐닉한다 봐도 되지 않을까?
만주 집사 이재명
12일 동아일보에는 이재명 대표와 같은 교회(분당 우리교회)를 다닌 송평인 논설위원의 칼럼 '판사, 비겁하지만 않으면 판례대로 선고할 수 있다'이 실렸다. 그는 이 대표의 거짓말에 대한 개인적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가 다녔다는 교회에 2010년부터 다녔지만 그를 본 적이 없다. 성남시장에 출마하기 전 교회에 등록하고 몇 번 나왔다고는 하지만 이후 10년 넘게 나오지 않아 제적 상태라는 목사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는 간간이 나왔다는 주장을 계속했다. 바쁜 정치인에게 교회 출석이 무슨 대수라고 그냥 인정해 버리고 말면 될 것을 굳이 거짓말을 하면서도 거짓말로 여겨지는 게 싫다고 또 다른 거짓말을 지어내는 심리는 자기 스스로도 어찌하지 못하는 마성(魔性) 같은 것일 수 있다."
송 논설위원은 스스로 제어 못하는 거짓말에 대한 내적 충동을 '마성(魔性)'으로 규정했다.
이쯤 되면 '집사 버전의 이재명'도 호출될 만 하다. 이 대표는 2021년 12월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지난해 돌아가신 제 어머니도 권사님이셨고, 아내도 아주 오래 전부터 교회 반주를 했던 독실한 성도여서, 저도 분당우리교회에서 열심히 우리 주님 모시고 있다”라는 축사를 한 일이 있다. 기독교 매체인 '크리스천 투데이'는 반가웠는지 이 대표에게 직접 취재에 나섰다.

언론이 취재차 분당 우리교회에 다니는가, 집사가 맞느냐 첫 질문을 받았을 때 보통은 긴장을 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교회에는 다녔었지만 잠시 쉬고 있고, 주변에서 집사라 부를만큼 만큼 신앙과 신망이 있지만 정식 집사는 아니다'라고 답하는 것이 정석일 것이다. 그렇게 솔직히(물론 이 정도 답변도 솔직보다는 미화에 가깝다) 답해도 정치적인 타격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송 논설위원이 앞서 지적한 마성(魔性)때문일까?
이 대표는 순간 '맞습니다^^'라고 뻔뻔한 거짓말을 해버린다. '집사 임명을 어디서 받았냐'는 질문에는 '정식 집사는 아니라'고 어쩔 수 없이 부인한다. 만일 질문자가 기자가 아니었다면 답이 어떻게 바뀌었을지는 모른다.
'정식집사는 아니지만 집사인 집사'는 대체 뭘까? 변호사 자격증은 없지만 법조에 해박한 사람을 '만주 변호사'라 부르듯 '만주 집사'같은 호칭이 따로 있는 것일까?
누가 내 거짓말을 알건 말건
민주당 보좌관들이나 당직자들은 이 대표가 행사장이나 연설에서 사소하지만 명백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모습을 처음 볼 때 충격을 받은 경험을 토로하곤 한다. 정치인들에게 거짓말은 흔한 일이라 새삼 순진하게 거짓말 자체에 놀라는 것은 아니라 한다. 다만, 그게 거짓말임을 뻔히 아는 당사자들이 배석한 자리에서 하는 거짓말에 놀라는 것이다. '이 자리엔 내가 지금 하는 거짓말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하는 태도가 신기하기도, 기괴하기도 하다는 것이다.
사소하지 않은 거짓말
위에서 열거한 거짓말들은 어찌 보면 모두 사소한 거짓말들에 속할 수도 있다. 물론 저렇게 양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드물고, 저렇게 양립불가한 거짓말들을 하는 부주의한 사람도 찾기 어렵다. 그러나 법조인으로는 정말 드물게 무고혐의로 유죄를 받았고, 현재 1심 선고를 앞둔 혐의들도 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와 위증교사이다. 드물게도 법이 강하게 처벌하는 '법적인 거짓말'들이라는 점은 이 대표의 거짓말을 사소한 거짓말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다.
흔히 '사회전체의 신뢰를 저하시킨다는 추상적인 표현'이 있는데, 이는 더 이상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다. 그의 수많은 지지자들이 그의 거짓말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실체적 현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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