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2026. 6. 8.
‘대진연 딱지 붙이기'는 어떻게 잠실개표소를 덮쳤나
잠실 개표소 ‘대진연’ 낙인: 증거 없는 이름이 시위를 어떻게 잠식했나
2026년 6월 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 한 60대 남성이 30대 남성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주변에서 “대진연!”이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경찰이 출동한 뒤에도 60대 남성은 피해자를 가리키며 계속 소리쳤다.
“대진연!”
이 장면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에서 벌어진 수많은 내부 갈등 중 하나였다. 피해를 입은 30대 남성은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나도 우파다. 대진연이 뭔지도 모른다. 억울하다”고 말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시위의 출발
6월 3일 지방선거 당일, 투표용지 부족사태는 즉각적인 항의로 이어졌다. 6월 4~5일 잠실7동 투표소 앞에서 보수 성향 시민과 유튜버 등이 투표함 반출을 저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약 35시간 동안 봉쇄가 이어지자 경찰 기동대가 투입됐다. 6월 5일 오전, 경찰은 시위대를 뚫고 투표함 2개를 강제 반출해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개표소)으로 이송했다.
그 순간부터 시위의 중심은 개표소로 이동했다.
새로운 주권자들의 새로운 시위문화
6월 5일부터 시민들은 개표소 8개 출입구를 막아섰다. “재선거”를 외쳤다. 태극기를 들었다. 밤이 되면 수천 명에서 3만 명 가까이 몰리는 날도 있었다.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 6월 6일 밤 최고조에 달했다.
특히 2030 청년층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서울시 실시간 데이터상 41%에 달하는 날도 있었다.
초기 참여자들, 특히 젊은 층은 비교적 명확한 태도를 보였다. “재선거만 하자.” “성조기는 자제하자.” “여기는 광화문이 아니다.”
이들은 헌법적 가치인 참정권 회복에 집중했고, 증거 없는 음모론이나 극단적 이념 투쟁으로 변질되는 것을 경계했다. 일부는 성조기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거나, 과격 피켓을 문제 삼기도 했다. 광장을 찾은 정치인들은 쫒겨났다.
잠실 개표소 집회 시민들은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순수성을 추구했다. 자원봉사자들은 후원금 조차 받지 않았으며 참여자들의 동선을 안내하는가 하면, 완벽한 쓰레기 처리로 평소보다 더 깨끗한 현장을 만들어냈다. 구호도 가장 공통분모가 큰 '재선거'로 통일해냈었다. 확성기 사용을 막고 시위대로 불리우는 것마저 거부했다. 국민의힘의 청와대행에 대해서도 단호히 선을 그었다. 그것이 '잠실'의 히트요인이었다.
3일차부터 달라진 풍경
6월 7일 오후 7시경, 분위기가 급변했다. 성조기를 든 무리가 경기장 주변을 행진하며 “부정선거라고 말하면 왜 안 되냐”, “이재명을 빨갱이라고 말하면 왜 안 되냐”고 외쳤다. ‘이재명·선관위 사형’ 같은 과격 문구가 적힌 피켓도 등장했다.
이때부터 내부 갈등이 본격화됐다. “재선거만 하자”고 말하거나 과격 피켓·구호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는 사람들을 향해 “대진연”이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했다.
한 유튜버는 현장에서 청년들에게 “앞에 대진연이 있으니 끌어내리라”, “대진연 빨갱이들을 끌어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지시했다.
같은 날 오후, 과격 피켓을 들고 있던 60대 남성과 “재선거만 하라”고 말하던 30대 남성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60대 남성이 30대 남성의 얼굴을 가격한 뒤 “대진연!”이라고 외쳤다. 경찰이 출동했다. 피해를 입은 30대 남성은 언론에 “나도 우파인데 대진연이 뭔지도 모른다. 억울하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 퍼진 ‘지령문’이 서로를 의심하게 해
현장 갈등과 동시에 온라인에서는 익명의 ‘지령문’이 빠르게 퍼졌다.
X의 한 사용자는 “잠실 쁘락치 톡방 지령문 유출”이라고 소개하며 10개 항목을 나열했다.

① 부정선거 → 부실선거 → 재선거 순으로 의제를 축소하라. ② 선관위 해체, 특검, 책임규명 이야기가 나오면 “정치색 빼라”를 반복하라. ③ 국민들이 선거 투명성을 말하면 재선거로 화제를 돌려라. ④ “성급하다, 기다려라, 중도층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기. ⑤ 재선거 프레임 안에 가둘 것. ⑥ 민주당, 정당책임론 이야기가 나오면 슬쩍 의제에서 빼기. ⑦ 모든 문제를 선관위·행정 문제로 축소하기. ⑧ 국민들이 지치도록 기다리기. ⑨ 재선거가 성사되면 “원하는 것 해줬잖아”로 마무리. ⑩ 선거 투명성, 제도 개선, 책임규명 논의는 뒤로 미루기.
스레드와 인스타그램에서도 “대진연 지령”, “카톡유출 지령”이라는 제목으로 동일한 문구가 퍼졌다. 펜앤마이크는 이 문건이 “익명 커뮤니티 발(發)로 출처와 진위가 확인되지 않았다”고 보도했으며 본지도 전수조사에 가깝게 조사했으나 전혀 근거가 없어 역공작으로 의심이 된다.
대진연 몰이에 동원된 구체적 수법들
이들은 과격 피켓이나 구호를 문제 삼는 사람을 즉시 “대진연”으로 지목하고 공격했다. 확성기를 들고, 현장에서 “앞에 대진연이 있으니 끌어내리라”, “대진연 빨갱이들을 끌어내야 한다”고 외치면 현장이나 온라인 상에서는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수도 없이 펼쳐졌다.
일반 참가자의 얼굴 사진을 올리고 “대진연”으로 지목하는 행위도 벌어졌다. 펜앤마이크는 “근거도 증거도 없이 일반 시민 얼굴을 그대로 박제해 대진연이라고 몰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편 집회 순수성을 위해 후원을 받지 않는다는 주최측 시민들의 입장마저 훼손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후원중단 요청 웹자보를 반박하며 다시 후원을 요구하고 있어 결국 구호와 집회 성격 뿐 아니라 물적토대까지 빼앗으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상황이다.

피해와 반발
이러한 낙인 수법은 시위 내부에 큰 피해를 입혔다. 일부 2030 참여자들은 “상처 받고 시위를 떠난다”는 증언을 남겼다. X에서는 “경찰과 시민 마찰을 막으려 뛰어다닌 여학생”, “다른 사람이 쓰라고 해서 확성기를 든 학생”이 대진연으로 몰려 시위를 떠나려 한다는 구체적 사례가 공유됐다.
일부 온건파는 “대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좌우 안 가리고 같은 마음으로 시위하자”고 말했으나, 오히려 공격의 대상이 됐다.

대진연은 없었다
X와 커뮤니티를 광범위하게 검색한 결과, 대진연 소속 학생이 조직적으로 또는 다수 참여했다는 검증 가능한 증거는 단 하나도 확인되지 않았다. 회원증이나 공식 소속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문서, 경찰이나 시위 주최 측의 공식 확인은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
대진연 활동 사진과 낙인찍고자 하는 대상의 일치하지도 않는 얼굴대조가 유일하다.
일부 X 게시물에서는 “아무런 팩트체크 없이 몰아가서 진짜 참여자를 쫓아내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이 낙인찍기가 성공한 이유 : 누구도 근거를 요구하지 않았다
참정권 박탈이라는 반헌법적 상황 앞에서 모인 시민 시위는, ‘대진연’이라는 딱지 하나로 내부에서 부터 흔들리고 있다. 물론 이 사태의 가해자는 딱지붙이기를 반복하는 세력일 것이다. 그러나 자극적인 주장들 앞에서 '근거'를 묻지 않고 수용하는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들에게도 그 책임은 있다.
지금부터라도 혼란스러운 주장을 하는 사람에게 묻자.
"근거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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