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 2026. 8. 15.
李는 북에 종전 논의, 통일부 러시아행 추진… 정작 북·러는 혈맹 과시

이재명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종전 논의를 제안했다. 정부는 북한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으로 부르는 것을 유력하게 검토한다고 밝혔고, 통일부는 북한에 대한 '주적' 표현을 폐기하겠다며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제 속 러시아 동방경제포럼에 참석해 북한과 대화를 이어가겠다고 발표했다. 국민의힘은 "안보 자해"라며 비판했지만, 민주노총은 "전시작전권 즉각 환수"로 호응했다.
이 대통령은 오늘(15일) 제81회 광복절 경축식에서 "지난해 저는 이 자리에서 북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으며, 일체의 적대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며 "1년이 지난 오늘 원칙을 넘어 실천으로 나아가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공동성장을 언급했다. "서로를 존중하는 포용적 평화 공존"이 필요하다며 "남과 북이 서로를 존중하고 불필요한 대결을 멈추어야 한다"며 "서로가 인식과 규범, 제도에서부터 적대성을 하나씩 줄여 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북이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을 위해, 함께 마주앉기를 바란다"고 했다.
북한의 핵 보유에 대한 미묘한 표현도 이어졌다. "한반도의 평화는 곧 동북아의 안정과 협력을 촉진하고, 핵 없는 세계를 향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며 "서로에 대한 상호 위협 의사를 내려놓고, 아주 오래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당사자들 간의 논의를 시작하자"면서도 "이를 통해 북의 핵 능력 고도화를 멈출 실효적 방안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핵 능력 고도화 중단'발언은 '비핵화'가 아닌 북한의 핵을 인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동안 정부는 정책 목표로 북한의 '비핵화'를 주장해왔다. 그러나 '핵을 인정하되 고도화하는 것을 막자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국정 기조는 큰 폭으로 바뀌게 된다.
종전 협상과 관련해 이 대통령의 다자논의 언급은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남북과 미국·중국 등 4자 대화를 통해 남북간 대화를 이어나가려 한다는 메시지를 표명한 것이다.
대통령의 경축사에 이어 기다렸다는 듯이 정부에서 앞장서서 북한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라는 북측 주장 명칭으로 부르자는 얘기도 나왔다. 헌법상 우리 국토 북부지방을 불법 점거중인 단체를 '국가'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미 통일부는 4일과 5일 북한에 대한 '주적' 표현을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연말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국방백서 발간을 앞두고 정동영 장관은 "진정한 상호존중을 위해서는 주적과 같은 표현은 멈출 필요가 있다"거나 "(북한과) 평화공존을 추구하면서 주적이라고 하는 건 옳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지난 25년간 한 축을 이뤘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구도는 이미 무너졌다"며 "현 시점에서 흘러간 선비핵화만 되뇌는 것은 현실을 바꾸는 데 힘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며 북핵 인정도 시사했다.
이 대통령 역시 오늘 "적대와 대결에 갇힌 대한민국의 모습은 우리 국민의 잠재력과 역동성을 실현하는데 결코 걸맞지 않다"면서 "적대와 대결의 에너지를 평화 공존과 공동 번영의 동력으로 바꿔내겠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오늘 이 대통령의 발언 직후 바로 '주적'을 대체할 단어를 찾는 작업에 착수하면서 곧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정착시키겠다고 했다.
정 장관은 북한에 대해 '주적'은 물론 '적'이란 표현을 청산해야 된다고 말하며 올 상반기 이미 '국제보건의료재단'을 통해 100억원 규모의 진단, 수술 및 치료장비 166종을 전달한 것을 성과로 꼽았다. 또 앞으로도 경원선 복원을 2029년까지 마치고, 북과 교류를 이어나가기 위해 오는 9월 러시아에서 열리는 동방경제포럼에 정부 차원으로 참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국제사회가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여전히 이어나가는 상황에 동방경제포럼에 우리 정부가 고위급 인사를 보내선 안 된다며 제동을 걸었다. 동방경제포럼은 2016년과 2017년 두 차례 당시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행사로, 2022년부터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우리 대표단이 참석하지 않고 있다. 외교부는 만약 우리 정부가 포럼에 참석한다면 유럽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입 제제를 가하거나, 방산 사업 계약을 취소할 것을 우려했다.
통일부는 최선희 북한 외무상이 7월 모스크바를 공식 방문했을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러 또는 포럼 참석을 논의했을 거란 추측을 바탕으로 올해 포럼에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참석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채널A에 "남북 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제행사"라며 "여러 우려가 있다고 해서 절호의 기회를 날릴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우리측 인사가 러시아에 방문하면 김정은 위원장은 물론 북한 고위급 대표단이 포럼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통일부는 9월 UN총회와 11월 중국APEC정상회의를 계기로도 대화 기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민의힘은 "'선제적 지속적 평화조치'는 결국 우리만 무장 해제하겠다는 소리"라고 주장하며 대통령의 경축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불과 며칠 전 북한이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하며 한반도 평화를 직접 위협하고 있음에도 경축사 어디에도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한 단호한 경고나 실효적인 억제책은 없었다"며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라는 일방적 환상에 사로잡혀 북한의 호응만을 구걸하는 모습은 지극히 안이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발상"이라고 맹비난했다.
장동혁 당대표 역시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한 뒤 페이스북을 통해 대통령의 "상호 위협" 발언을 지적했다. "북한 핵개발과 미사일 시험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면서 "우리가 언제 북한을 위협한 적이 있는가"라고 반문한 것이다. 이어 "국민이 원하는 건 '대체 불가 대한민국' 같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며 "청년과 안보, 민생과 미래를 포기한 '국민 포기 선언'"이라고 지적했다.
야당의 지적에 더불어민주당 전수미 대변인은 "국민이 원하는 것은 반대를 위한 '발목 잡기'가 아니라 국가적 과제 앞에서 함께 힘을 모으는 책임 정치"라며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성장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의 광복', 불평등을 넘어서는 '기회의 광복', 전국이 골고루 발전하는 '균형의 광복', 전쟁 위협을 거두는 '평화의 광복'을 완수하겠다"고 서면브리핑을 통해 옹호에 나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같은 날 오후 2시 종로구 안국동에서 노동자대회를 열고 미국 규탄과 전시작전권 회수, 평화공존을 위한 민족공동체 건설을 주장했다. 이 자리에선 국가보안법 폐지와 양심수 석방과 같은 구호도 제창되었다. 주최측은 일본의 반전평화단체 활동가와 동포들도 함께했다고 밝혔다. 진보당 역시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에서 광복절 기념 결의대회를 연 뒤 민주노총의 시위 및 행진에 참여했다.
김종훈 진보당 대표는 연단에 올라 "전 세계가 미국이 벌이는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있다"며 파병 반대, 전쟁훈련(한미합동훈련) 중단 및 전시작전권 환수, 미국의 내정간섭 중단 등을 요구했다.
이날 민주노총과 시위대는 주한미국대사관 앞까지 행진을 이어가길 원했지만 경찰이 제한하면서 무산되었다. 주최측은 법원에 집행정지를 신청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3일 이를 기각했다.

한편,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광복 81년을 맞아 1945년 한반도 북부에 진입한 소련군의 공적을 기념하는 '해방탑'에 헌화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김정은이 "조로(북러) 사이의 훌륭한 역사와 전통, 혈연의 유대는 오늘 양국 친선협조관계의 근본초석으로, 무진한 원동력으로 되고 있다"고 발언했다고 전했다.
'해방탑'은 소련을 상징하는 붉은 오각별을 달아 평양에 세운 30m 높이의 화강석 탑으로, 2024년 6월 푸틴의 방북 당시 공동 헌화 이후 북러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대한 조약'을 체결했다. 김정은은 군 파병은 물론 광복절 헌화를 3년째 이어가며 러시아와의 혈맹을 과시하고 있다.
강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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